9월 3일 화요일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눈부신 파란 하늘이 비추고 살랑살랑 가을바람 부는 날 식사를 하고 아들과 함께 US 오픈 8강전을 보러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 갔다. 세계적인 스포츠 팬들이 찾아오는 경기라 입구는 상당히 복잡하고 오래 기다려 검문을 받고 안으로 입장했다.
정오 무렵 열리는 두 명의 여자 테니스 선수들 이름조차 모른 채 경기를 보고 여자 단식경기가 끝나고 2016년 유에스 오픈 테니스 챔피언 바브링카와 내게는 이름도 낯선 러시아 테니스 선수 다닐 메드베데프(Daniil Medvedev) 경기가 시작되었다. 관중들은 열띤 응원을 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테니스 선수는 키가 크니 상당히 유리했다. 상당히 흥분되는 경기라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심장이 두근두근했는데 안타깝게 바브링카가 지고 말았다. 영화배우 같은 외모를 가진 러시아 테니스 선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상당히 궁금하다.
저녁 8시가 지나 로저 페더러와 불가리아 테니스 선수 그리고르 디미트로프(Grigor Dimitrov) 경기가 시작되었다. 1라운드 로저 페더러가 승리를 했지만 2라운드는 불가리아 선수가 이기고 점점 불꽃 튀는 경기가 시작되니 팬들의 가슴은 흥분되었다. 밤 12시 가까운 시각 막이 내렸는데 로저 페더러가 지고 말았다. 엄청 많은 실수를 했던 테니스 황제 페더러는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5라운드까지 가는 경기라 상당히 힘들었겠지. 집에서 가만히 앉아 테니스 경기를 보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검은색 운동복을 입은 페더러는 빨간색 가방을 들고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누가 올해 유에스 오픈 챔피언이 될지 점점 흥분이 된다. 2019년 본선에 오른 테니스 선수들 가운데 라파엘 나달을 제외하고 전 유에스 오픈 챔피언들(로저 페더러, 노박 조코비치, 스타니슬라스 바브링카)은 지고 말았다. 챔피언이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울까.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
화요일 나의 모든 에너지는 식사 준비와 세탁하기와 전화받기를 제외하고 유에스 오픈 테니스 경기 관람하는데 썼다. 정오 무렵 경기장에 가기 전 브런치 식사 준비를 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테니스 경기를 보러 갔다. 유에스 여자 단식과 남자 단식경기는 오후 5시경 무렵 막이 내려 집에 돌아오니 저녁 식사 준비할 시간이었다. 식사 준비 전 밀린 빨래를 하려고 아파트 지하에 갔다. 세탁을 하면서 식사 준비를 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테니스 경기를 보았다.
9월 초 개강을 하니 학생들과 교수들은 모두 바쁜 시기. 매일 수업을 들으며 숨 막히던 세월을 보낸 게 언제였던가. 유학 준비도 없이 뉴욕에 와서 수험생 두 자녀 키우면서 전공 서적을 읽으며 오랜 시간 동안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이 수년 동안 세월이 흘러가고 말았다.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적힌 전공 서적을 읽으며 에세이와 시험 준비를 하던 무렵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 물어볼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질 거 같은데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몇 번이나 반복을 해서 읽고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는 어려워 눈물 같은 세월을 보냈다. 암흑처럼 어두운 시절을 통과하고 나서 서서히 뉴욕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뉴욕에 왔으니 내겐 더 특별하다. 장님처럼 살다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보니 얼마나 기쁜가.
대학원 시절 만난 유대인 교수님도 생각난다. 매주 월요일 수업 시간에 교수님은 주말 무얼 했냐고 학생들에게 물어보셨는데 학생들 대답은 한결같았다. "무슨 일을 해요? 교수님이 내준 숙제 하느라 힘들었지요." 그 교수님은 매주 숙제를 주셨는데 통계 분석이라 상당히 힘들었다. 컴퓨터는 에러 하나도 용납치 않아서 더 힘들었다. 대학 시절 전공 기초 수업을 받은 20대 학생들도 힘들다고 했다. 교수님은 뉴욕처럼 멋진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대학원생들의 말을 듣고 놀라셨다. 그때는 잘 몰랐다. 뉴욕이 얼마나 특별한 도시인가를. 미국은 스스로 학비와 렌트비를 벌어야 하니 학생들은 상당히 바쁘고 대학원 공부도 쉽지 않아서 준비할 것도 많다. 미국도 상류층 자녀들과 아닌 경우는 확연히 구분이 된다. 보통 클래스에 속하는 학생들은 여행은 꿈도 꾸지 않은 듯. 오로지 일하고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서부 오리건 주(Oregon)로 떠나셨던 유대인 교수님은 어떻게 지내실까. 오리건 주에 유대인들이 많이 산다는 말을 들었다.
미국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가 어린 시절 오리건 주에 살았다. 러시아에서 출생한 그도 미국에 이민을 와서 지독히 힘든 이민 생활을 했고 성적이 우수해 예일대에 입학했지만 상류층 학생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글을 읽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이민자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고통의 바다에서 수영하고 지낸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신분 문제와 언어 장벽을 쉽게 극복한다면 보통 이민자들과 다른 삶을 열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