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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토요일 오후

by 김지수

10월 12일 토요일


토요일 오후를 도난당하다니 너무 슬퍼. 할렘, 콜럼비아 대학과 첼시에 가려고 미리 예약도 했는데 물거품으로 변했다.


오래전부터 아파트 화장실 세면기가 이상해 슈퍼를 불러야 하나 하면서 자꾸 미뤘는데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금요일 슈퍼에게 전화를 했는데 금요일 저녁 7시 무렵 집에 온다고 말했다.


아들이 집에서 슈퍼를 기다리면서 그가 다녀간 뒤 저녁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슈퍼는 오지 않았다. 8시가 훨씬 지나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슈퍼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고 해서 슈퍼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금방 우리 집에 온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슈퍼가 와서 세면대에 하수구 막힐 때 뚫는 액체를 붓고 돌아가 30분 후 다시 와서 확인했지만 뚫리지 않아 토요일 미드데이에 온다는 말을 하고 떠났고 그제서 아들은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난 금요일 밤 맨해튼에 특별 이벤트를 보러 가서 늦게 돌아왔다.


토요일 아들은 친구를 만나러 가고 난 종일 슈퍼를 기다렸다. 몸이 불덩이 같아서 힘내려고 닭죽을 끓여 먹었다. 정오 무렵에는 슈퍼가 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자주 슈퍼에게 전화하기 미안해 그냥 기다렸는데 오후 4시 반 경 전화가 왔다. 곧 우리 집에 온다고 하니 철석같이 믿었다.


4시 반 전화가 걸려올 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다. 첼시와 할렘 이벤트는 놓칠지라도 슈퍼가 수선을 하면 어쩌면 맨해튼 콜럼비아 대학에서 열리는 첼로 연주는 감상할 수 있을 거라 착각을 했다.


슈퍼가 말한 '곧'은 나의 '곧' 개념과 달랐다. 바로 올 줄 알았는데 30분 후에 도착했다. 슈퍼가 화장실 세면대 수선을 하다 날 불러 말랬다. "이것 좀 보세요. 머리카락이 많아요." 세면대에서 세수만 하는데 머리카락이 왜 들어갔을까. 슈퍼는 내게 머리를 감냐고 물었다. 아주 작은 세면기에서 어찌 머리를 감아. 참 미안했다. 슈퍼가 떠날 때 팁을 조금 드렸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떠났다.


토요일 특별한 이벤트를 꼭 보려고 했는데 그만 집에서 슈퍼를 기다리면서 시간이 흐르고 말았고 슈퍼가 일이 끝난 시각은 오후 5시 반이 지났다. 맨해튼에서 살지 않은 내가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봤자 이미 공연과 이벤트가 막이 내린 뒤라서 할 수 없이 포기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화장실 세면대를 수선했으니 마음 가볍게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슈퍼가 연장으로 수선을 하듯 난 집에서 두 권의 브런치북을 발간했다. <뉴요커 인생 2막 이야기>와 <뉴욕에서 만난 뉴요커들과 여행객들>.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뉴욕에 살면서 인생 2막을 열어가니 그야말로 눈물바다다. 조금만 알고 왔더라면 더 편하고 좋았을 텐데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무에서 시작해 아름다운 뉴욕 문화에 눈을 뜬 것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무도 내게 뉴욕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감기 몸살로 몸은 불덩이 같다. 냉장고는 다시 텅텅 비어 가고. 과일과 식품이 다 어디로 갔지. 어디긴 어디야. 내 배속으로 들어갔겠지. 아, 장도 보러 가야 하고 몸은 불덩이 같고 바쁘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라 자꾸 여행사에서 연락이 온다. 나도 멀리멀리 떠나고 싶은데 현실에 굴복하고 산다.

레스토랑에서는 식사하러 오라고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레스토랑 위크도 부담스러운데 평소 어찌 가겠니. 레스토랑에서 매일 식사하면 얼마나 좋겠어. 멋진 드레스 입고 사랑하는 가족과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좋겠지. 맨해튼 펜트 하우스에 살고 매일매일 오페라 관람하러 가고. 그만 꿈꾸자. 현실로 돌아와야지.


이 아름다운 시월에 왜 아프담. 힘내자. 열심히 살자. 행복하게 씩씩하게 살아야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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