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금요일
감기 몸살로 시름시름 아픈데 저녁 무렵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Bohemian National Hall에서 열리는 체코 록음악 Garage Band(GARAGE & Tony Ducháček) 공연을 보러 갔다. 다양한 이벤트와 전시회가 열려서 참 좋은데 요즘 자주 안 가고 있다. 오래전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악보 원본 전시회도 보았던 곳이고 매년 시월 말 할로윈 댄스파티(유료)도 열리고 매년 11월 The American Art Fair(무료)도 열린다. 일부 행사는 유료 일부는 무료로 나뉜다. 프라하의 전설적인 록 음악 공연도 미리 예약하고 방문했다. 요즘 맨해튼에서 열리는 이벤트가 예약제로 변해서 좀 불편하다. 저녁 7시경 시작한다고 했는데 난 얼른 보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7시 20분 즈음 시작했다.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 낯선 체코어도 들었지. 한 남자의 상의 뒷면에 "Enjoy the Hard Work"라고 적혀 웃었다. 그가 쓴 모자 뒤에는 "악마들"이라 적혀 다시 웃었다.
잠시 후 조명이 비추고 록 밴드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의자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와인과 맥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많았다. 뉴욕 록음악 공연장 매디슨 스퀘어 가든도 그리웠다. 평소 공연 티켓이 무척 비싸 이용하기 어려운데 운이 좋아 저렴한 티켓을 구입해 아들과 함께 해리 스타일스 공연을 보러 갔는데 소녀팬들의 함성에 놀라고 말았다. 반면 백발 할머니도 혼자 오셔 공연을 보더라.
프라하 하면 영화 <프라하의 봄>도 기억난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원작 소설이 바탕이 된 영화인데 영화배우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대학 시절 작가 밀란 쿤데라 작품을 즐겨 읽었다. 체코에서 탄생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시민권을 받은 작가의 대표작에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농담> <무의미의 축제> 등이 있다. 그의 작품에는 정치와 바람둥이 이야기가 자주 언급된다.
대학 시절 난 세상을 너무나 몰랐다. 대학시절 바람둥이는 소설 속 상상 인물인 줄 착각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세상에 바람둥이가 얼마나 많은지. 오래전 뉴욕주지사 스피처의 섹스 스캔들로 매일 뉴욕타임스는 장식했다. 하버드 대학 로스쿨에서 만난 커플은 결혼했는데 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주지사 스피처. 우아하고 지적이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부인 몰래 바람을 피워 파문이 아주 컸다. 우아하고 멋진 스피처 부인은 변호사도 그만두고 남편 뒷바라지했는데 배신을 당했다. 그가 검찰 총장으로 재직할 적 월스트리트 최고 경영진에게 공포의 대상 스피처의 위선이 드러나 세상은 경악했다. 세상에는 위선적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늦게 늦게 깨달았다. 오페라에도 바람둥이 이야기가 나온다.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리골레토> 등. 뉴욕에서 오래전 인기 많은 드라마 <프렌즈>에서 레이첼이 말했던가. 그녀의 엄마가 "한 번 바람피우는 남자는 평생 바람 피더라"라고 하면서 남자 조심하라고.
뉴욕에 온 후로 가끔씩 뉴욕 타임스에 정치인들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다. 영화 < 터미네이터> 주인공으로 나온 할리우드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사건도 터졌다. 심지어 가정부랑 혼외정사로 사생아가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프라하 하면 또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아주 오래전 프라하로 여행을 갔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프라하! 프라하의 시계탑과 카를교는 얼마나 예쁘던지! 프라하에서 프란츠 카프카가 살던 집도 가이드 안내로 방문했다.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카프카를 기억할 사람은 없겠지. 카프카의 유품을 태워 달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막스 브로트가 읽은 후 친구의 부탁을 거절했다. 사후에 알려진 프란츠 카프카도 프라하에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릴 적 잘 몰랐는데 뉴욕에 와서 알게 된 작가들의 삶. 참 어렵고 힘들게 산 작가들이 많아서 놀란다. 고등학교 시절 에드가 앨런 포 <에너밸 리>를 읽으며 감히 시인이 그리 가난하게 불행하게 산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마크 트웨인, 허먼 멜빌, 존 스탸인벡 등 모두 어렵게 살았다. 존 스탸인벡은 록 음악과 프로야구와 하키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 빌딩을 지을 때 공사현장에서 막노동꾼으로 일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워. 그래서 예술가는 위대할까. 어렵고 힘든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위대한 창작 작품 활동을 하니까.
프라하의 야경이 무척 아름답다. 가이드가 야경 구경 가자고 했는데 미국인 보잉사 직원과 결혼한 중년 여행객은 시민권을 분실하고 말았다. 그때 처음으로 미국 시민권이 1천-1천500만 원에 몰래 거래된다는 것을 들었다. 그 무렵 훗날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올 거라 상상도 못 했다. 프라하에서 연극을 전공하던 학생은 아주 바쁜데 여행객이 시민권을 분실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보잉사에 근무한 남자분 이름이 해밀턴이었다. 그때 어린 두 자녀는 헤밀턴 아저씨를 '해물탕'이라 별명을 지어 웃었다. 그래서 잊히지 않는다.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가이드가 프라하 게이 레스토랑에 안내를 했다. 여기는 "게이들이 사랑하는 레스토랑"입니다, 는 말이 무시무시하게 들렸는데 뉴욕에 와서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어려운 토론 수업이었는데 왜 게이들이 나쁜지 의견을 주고받는 수업을 듣다 보니 나의 편견이었음을 느꼈다. 비정상적인 결혼이 얼마나 많은데 왜 게이들을 편견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그 후 매년 6월 말이면 게이 프라이드 축제도 보러 가곤 했다. 뉴요커의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이 폭발하는 축제. 수 백만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축제를 바라본다. 하늘에서는 무지갯빛 색종이가 쏟아지고 무지개 깃발 휘날리고 세상은 온통 무지갯빛.
프라하의 전설적인 록 음악 공연 일부만 감상하고 지하철역에 도착 아파트 슈퍼가 집에 도착했냐고 아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저녁 7시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저녁 8시가 되어도 연락이 없고 아들은 슈퍼를 기다리며 식사도 안 했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다시 슈퍼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금방 온다고 말했다. 늦은 밤 슈퍼는 우리 집에 와서 화장실 세면대 막힌 것을 뚫어보려고 했는데 실패로 돌아가 다음날 미드데이에 온다고 약속하고 떠났다. 감기로 아픈데 맨해튼에 가서 록음악 공연을 보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