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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듣는 베토벤과 쇼팽 첼로 소나타_줄리아드 학교

by 김지수

10월 9일 수요일


수요일 아침 가을비가 뚝뚝 떨어졌다. 창가에 흐르는 빗방울 소리도 예뻤다. 가을비 내려서 조깅을 가지 못했다. 늦은 오후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에 가려고 시내버스에 탑승했는데 할머니가 올라오셔 자리를 양보했다. 잠시 후 할머니가 한국어로 말씀을 하셨다.


-누구 한국인 없어요?

-제가 한국인입니다.

-어머, 반갑습니다. 플러싱 한인 은행에 가려고 하는데 이 버스 가나요?

-예, 맞아요. 종점역에 내리면 근처에 한인 은행이 있어요.

-고맙습니다.


얼굴이 무척 고운 할머니랑 헤어지고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여러 명의 홈리스들을 만났다. 추운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는데 홈리스가 동전 몇 개 든 깡통을 흔드니 가슴이 아팠다. 누가 인생을 알겠는가. 어쩌다 홈리스 신세로 변했겠지. 뉴욕시에서 갈수록 더 많은 홈리스들을 만나니 참 슬픈 세상이다.


맨해튼에 도착해 나의 아지트에 도착해 커피 한 잔 마시려는데 약간 식은 커피라서 기분이 언짢았는데 할 수 없지. 셀프서비스라 커피값이 약간 더 저렴하지만 커피 맛이 괜찮아서 자주 이용하고 로컬도 애용하는 곳이다. 식은 커피 마시며 <언어의 온도>를 조금 읽다 자리에서 일어서 줄리아드 학교에 가는 길 콜럼버스 서클 근처 메종 카이저에 들려 아들이 좋아하는 빵을 샀다. 이기주 작가 <언어의 온도>는 이미 한 번 읽었는데 다시 조금씩 읽고 있다.


저녁 6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는데 오랜만에 쉐릴 할머니를 만나서 기뻤다. 할머니는 이번 가을 처음으로 공연을 보러 오셨다고 하셨다. 한동안 뵐 수 없어서 어찌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했는데 건강이 안 좋아서 자주 닥터 오피스에 방문하셨다고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건강처럼 소중한 것도 없다는 것을 늦게 깨닫는다. 특히 뉴욕은 닥터 오피스 방문하기 겁나는 도시. 의료비가 하늘 같아서 무서운 곳으로 변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맨해튼 음대와 콜럼비아 대학 박스 오피스에서 받는 유료와 무료 티켓을 보여주었다. 난 아직 이번 가을에 맨해튼 음대에서 공연을 보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있다. 할머니는 맨해튼 음대 재즈 공연 티켓을 받으라서 해서 학교 웹사이트에 접속하니 이미 매진이었다. 뉴욕에 음악팬들이 많고 맨해튼 음대 재즈 공연은 정말 좋고 그래서 일찍 매진되었나 봐.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일본 모자 디자이너가 폴 홀로 들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1988년도에 뉴욕에 와서 공부하기 시작한 디자이너는 줄리아드 학교에 처음으로 공연을 보러 온 눈치. 내가 지난주 그녀에게 공연 티켓을 주었다. 줄리아드 학교와 그녀 집은 도보로 10분도 채 안 걸리는데 자전거를 타고 와서 놀랐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1년 약 700회 이상 공연이 열리고 일부는 유료 공연이고 일부는 티켓을 요구하지만 티켓 요구하지 않은 무료 공연이 더 많다.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줄리아드 학교가 아지트로 변한다. 나랑 비슷한 연령으로 보이나 그녀의 생일은 묻지 않아서 모른다. 쉐릴 할머니에게 디자이너를 소개했다.




오랜만에 듣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와 쇼팽 첼로 소나타가 정말 좋았다. 가을이라서 첼로의 저음이 더 가슴에 와 닿은지도 몰라. 오래전 첼로 레슨을 받지 않았다면 나도 첼로 음악을 즐기지 못했을 텐데. 참 오래전 첼로 레슨을 받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면 내가 천국에 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았다. 왕족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데 삶이 어찌 쉬워. 누가 날 도와주니. 당시도 돈이 없어서 중고 악기점에 찾아가 중고 첼로를 구입했다. 학교에 재직하던 무렵 왕복 4시간 이상 통근하면서 1주일에 한 번씩 바이올린 레슨을 받다 나중 딸아이를 임신으로 만삭이 되자 레슨을 중지하게 되었다. 바이올린 선생님이 여자가 출산을 하게 되면 자녀가 초등학교에 갈 때까지 바쁠 거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되었는데 재능이 많다고 레슨을 옮겨야 한다고 하셔 어려운 형편인데 개인 레슨을 받게 되었다. 그때 어린 아들은 누나가 바이올린 연습하는 것을 보고 배운다고 성화를 부려서 난감했다. 솔직히 아들이 어려서 나중 시키고 싶었는데 기어코 배우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아 엄마가 졌다.


내게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강요할 때는 평생 돈 걱정 안 하게 해 줄 테니 제발 사직서만 제출하고 집에서 지내라고 했는데 삶이 그렇게 되어야지. 두 사람의 수입으로 살다 혼자만의 수입으로 사니 어렵기만 하고 아이 아빠는 매달 급여를 받다 갑자기 선후배들과 함께 사업을 한다고 하니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다. 물론 그 빚을 내는 것도 다 내 몫. 어렵고 힘든 몫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얼마나 많은 은행장들을 만나 대출을 받았는지.


그런데 IMF가 찾아와 매달 지출하는 은행 이자는 눈덩이처럼 부풀어 가고 몇 달 동안은 아예 1원도 집에 가져오지 않은 상황에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러니 삶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그런데 개인 레슨으로 옮기라고 하니 그럴 형편이 아니라고 했는데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지고 말았다.


어렵고 특별한 상황에 두 명의 어린 자녀를 바이올린 레슨 시키니 다 내 몫이었다. 가난한 시절이라고 하니 보통 1주일에 2회 레슨을 받는데 우리 집은 1주일에 1회를 받고 1시간을 반으로 나워 딸이 30분 아들이 30분 받자고. 그 레슨 준비를 위해 엄마는 얼마나 분주했던가.


그렇게 레슨을 시켰는데 난 갈수록 더 바빠져 가는데 나도 중단했던 악기 레슨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중단했던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까 하다 나이가 드니 첼로의 저음도 매력적이라서 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 저렴한 중고 악기 구입해 백화점에서 레슨 받다 나중 개인 레슨으로 옮겼다.


대학 시절 사랑하던 바흐 무반주 조곡을 레슨 받게 되리라 언제 상상이나 했겠어. 어느 날 난 바흐 무반주 조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삶은 항상 뜻대로 되지 않고 어렵고 힘들 때가 많다. 지난 세월을 돌아봐도 힘든 때가 더 많았지. 지금은 레슨은 받지 않지만 뉴욕에 오니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내가 음악을 모르면 음악이 들리지 않을 텐데. 음악 없는 삶 상상도 못 해. 음악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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