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젖다.
10월 7일 월요일
흐린 가을날 늦잠을 자고 말았다. 한 시간 늦게 일어나니 아침은 부산하기만 했다. 글쓰기를 하고 아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브런치 식사 준비를 하면서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 세탁을 했다. 그런데 실수로 욕실에 있는 수건을 빠뜨려 다시 지하에 내려가야만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
월요일 오후 4시 줄리아드 스쿨에 비올라 마스터 클래스를 보려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는 중 마음이 변했다. 피곤했는지 졸음이 쏟아졌다. 음악 전공한 것도 아니고 꼭 비올라 마스터 클래스를 봐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주에도 맨해튼 음대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를 보지 못했다.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단원이 하는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음악 대신 커피. 콜럼비아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했다. 20대 직장 생활할 때 새벽에 일어나곤 했다. 무척 바빴던 시절 하루도 늦게 일어난 적이 없다. 늦으면 직장에 갈 수가 없으니. 직장 생활이 그런다. 멀리서 보면 좋기도 하는데 매일 출근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특히 멀리 통근까지 하게 되면. 매일 버스를 타고 통근을 했다. 왕복 4시간 이상 걸렸다. 결혼초 소형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를 구입할 때 계약금을 제외한 돈은 내가 힘들게 모은 돈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이니 운전하면 안 된다는 하늘 같은 명을 받들며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직장에 갔다. 연애와 결혼은 달랐다. 남녀평등은 어디로 사라지고 책임과 의무만 가득했던 시절. 아무것도 모른 주위 사람들은 내가 호강한 줄 아는데 그야말로 고생의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학교에 가서도 종일 수업을 했다. 빈 시간에는 수업과 상관없는 일을 처리했다. 그때도 여유로운 교사들도 있었다. 나랑은 너무나 거리가 멀고도 먼 일.
젊을 적 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뉴욕에 와서 힘든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겠지. 두 자녀 교육을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에서 지낼 적도 늘 바빴다. 자녀 교육도 쉽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두 자녀랑 호흡을 맞추고 살던 시절. 사직서 제출하니 함께 쇼핑도 하자고 연락이 왔지만 늘 거절을 했다. 쇼핑할 형편도 아니고 늘 바쁘고 내 목표가 있었으니. 어쩌다 늦잠을 자면 아들도 깜짝 놀란다. 엄마가 늦잠을 자, 하면서.
아름다운 시월 맨해튼은 국화꽃 향기 가득하다. 록 펠러 센터를 걷다 예쁜 국화꽃을 보며 행복했다. 벌써 록펠러 센터는 하얀 빙상을 만드는 중.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5번가 거리에 홈리스가 겨울 옷이 필요하다는 글도 보았다. 홈리스에게는 더운 여름이 추운 겨울보다 더 낫겠지.
뉴욕의 추위 정말 무섭다. 대학 시절 전혜린이 독일 뮌헨이 춥다고 했을 때 추위가 뭔지 한국에서 느끼지 않아 잘 몰랐다. 뉴욕에 와서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 살 때 추위에 벌벌 떨었다. 프린트기에서 나오는 종이가 따뜻했다. 책에서 추위에 죽는다는 말을 들었어도 내가 느끼지 않아 잘 몰랐다. 직접 경험하니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결국 난방 문제로 이사를 하고 말았다.
아, 힘든 이사! 얼마나 힘들었던가. 공부를 하면서 두 자녀 학교에 픽업을 하면서 살림을 하면서 빈 시간을 이용해 빈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어디에 빈 집이 있는지도 모르고 결국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할 형편. 롱아일랜드는 아파트도 귀하다. 더구나 학군 좋은 곳에 구해야 하는데... 짐 싸는 것도 얼마나 힘들던지. 포장 이사를 했더라면 좀 더 편했을 텐테 서비스 비용이 비싸니 스스로 해야 하는 형편. 빈 박스도 너무 비싸니 마트에 가서 빈 박스를 달라고 부탁해 하나씩 차에 담아 집으로 옮기고. 개미처럼 살던 추억도 아득하구나.
뉴욕에 온 지 6개월 만에 딕스 힐(Dix Hills)에서 제리코(Jericho)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 정리도 채 안 된 상황에 줄리아드 스쿨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갔다.
바이올린 레슨 선생님 연락처도 한인 마트에서 구한 무료 정보지에서 찾았다. 그분에게 전화를 하고 롱아일랜드 힉스빌(Hicksville)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맨해튼 펜 스테이션 역에 내려 줄리아드 스쿨을 찾아가는데 맨해튼 지리도 낯선 우린 어디서 지하철을 타야 하는지 로컬인지 익스프레스 인지도 모른 상황에 그냥 탔는데 줄리아드 학교에서 떨어진 곳에 내려 말하자면 익스프레스에 탑승해 72가에 내려 지리를 잘 모르니 헤매다 선생님에게 연락을 했다. 전화를 하니 줄리아드 스쿨이 가깝다고 하면서 찾아오라고. 그때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맨해튼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맨해튼 지리를 안다면 아주 쉽게 찾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니 장님이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도 멀게 느껴졌다.
어렵게 어렵게 찾은 줄리아드 스쿨에 도착하니 학교 수위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놀랐다. 한국과 다른 뉴욕 문화였다. 많이들 유학과 이민을 오면 문화적인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바이올린 선생님을 만난 후 사인을 하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바이올린 연습실에 들어가니 검은색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얼마나 많던지. 연습실마다 검은색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이올린 선생님을 만나고 롱아일랜드 제리코로 돌아오는 길 펜 스테이션에서 기차를 타고 롱아일랜드에 가는데 실수로 미네올라(Mineola) 지역에서 내려버렸다. 물론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택시비가 비싸니 특별한 경우 아니면 이용하지 않고 장 보고 무거운 짐을 들기 어려울 때는 할 수 없이 이용한다. 롱아일랜드 기차 스케줄은 드문드문. 힉스 빌 역에 도착해도 다시 30분 정도 걸어야 제리코 집에 도착하는데 미네올라 기차역에서 힉스빌 가는 기차를 오래오래 기다렸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어쩌다 실수로 미네올라에서 내렸는지. 결국 첫 번째 줄리아드 스쿨 나들이는 특별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맨해튼 5번가를 거닐다 아름다운 종소리도 들었다. 어디에서든 종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도 맨해튼에 갔는데 그냥 집에 돌아오기 섭섭해 북 카페에 갔다. 잠시 책의 향기를 느끼다 집에 돌아와 아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계획과 다른 엉뚱한 월요일을 보냈다. 비올라 마스터 클래스는 어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