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토요일 오후
10월 5일 토요일
토요일 생에 처음으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을 봤지만 종일 몇 차례 유령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플러싱 메인스트리트까지 시내버스는 엄청 정체되어 평소보다 3배 이상의 시간이 걸려 속상하고, 시내버스와 지하철은 만원이고,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작동하지 않고, 지하철 노선은 변경되고, 뉴욕 시티 센터에서 폴 포 댄스 축제 보고 플러싱에 도착했는데 한 밤중 시내버스는 어디로 사라져 한 시간 동안 기다렸다. 시간처럼 소중한 게 없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데 시간을 뿌리고 다녔다.
매년 가을 뉴욕 시티 센터에서 열리는 폴 포 댄스 페스티벌 공연은 인기가 많아서 박스 오피스 오픈한 날 이미 매진되기도 한다. 첫날 박스 오피스 오픈 한 날 찾아갔는데 내가 도착한 시각 이미 내가 꼭 보고 싶은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 티켓은 매진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다른 공연 티켓을 구입했고 카네기 홀 갈라 공연이 열린 10월 3일 공연 티켓을 구입했다. 세계적인 댄스 컴퍼니가 참가하는데 모두 보고 싶지만 다 볼 수 없으니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은 꼭 보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내 의도와 다른 댄스 컴퍼니 공연을 봤지만 아들과 함께 본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뉴욕 시립 발레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공연도 좋은데 댄스 공연은 러시 티켓도 판매하지 않고 저렴하지 않아서 한 시즌 몇 번 보고 싶은데 그냥 보지도 못하고 세월만 흘러갔다. 그런데 뉴욕 시티 센터에서 열리는 축제는 1인 15불+수수료라 저렴하니 인기도 많고 볼만 하다. 가격 대비 만족을 주는 댄스 축제!
토요일 저녁 8시 꼭 보고 싶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을 생에 처음으로 관람했는데 나의 기대와 달리 시든 장미꽃 같았다. 피아노 라이브 반주에 맞춰 무용수들이 춤을 추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댄스 컴퍼니라 당연 나의 눈높이는 높았지.
안나 파블로바, 바츨라 니진스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이 활동했던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 뉴욕에 온 댄스 컴퍼니는 준비가 덜 되었을까. 물론 댄스 공연은 순간 예술이라서 어렵기만 하다. 그날 무용수들의 컨디션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나와 달리 객석에 앉은 관람객들은 세계적인 댄스 컴퍼니 공연이라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토요일 저녁도 4개의 댄스 컴퍼니 공연을 봤는데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영국 국립 발레단 공연은 아주 좋았다. 두 명의 무용가들의 예술혼이 느껴져 감명 깊었다. 하지만 러시아 발레단도 스웨덴 발레단도 그다지 나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명성이 전부는 아닌데 명성이 전부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다. 카네기 홀 공연도 마찬가지다. 작년 봄 열린 비엔나 필하모닉 공연은 솔직히 실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엔나 필하모닉 공연을 봤다고 기분 좋은 청중들이 많아서 놀랐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 달라서 만족도도 다르겠지. 음악을 전공한 청년은 내가 비엔나 필하모닉 공연이 별로라 하니 웃었다. 뉴욕은 재즈 음악가들이 아주 많아서 금관악기 연주가 아주 좋은데 빈 필하모닉은 그렇지 않았다.
원래 토요일 난 조용히 보낼 예정이었다. 이틀 연속 밤늦게 집에 돌아오니 몸에 불이 났다. 너무 피곤해 종일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맨해튼에 갔다. 토요일도 다양한 축제가 많이도 열리지만 몸이 녹초라서 다 포기하고 줄리아드 예비학교 학생 공연과 교수님들 공연만 보고 집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카네기 홀에서 열린 음악가들 공연도 좋지만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도 신선하고 참 좋다.
그런데 지하철과 시내버스와 에스컬레이터 등 피곤한 일만 연거푸 일어나고 나의 목적지가 아닌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역에 내려 미드타운을 걷다 카푸치노 커피를 마시러 갔다. 향기 좋은 카푸치노 커피도 원래 마실 계획도 아니었다. 맨해튼 커피값이 싸다면 내가 먹고 싶은 커피를 마시겠지만 커피값이 비싸다. 부자들이야 커피 한 잔 값에 동요되겠냐만.
북 카페에 가는 길 우연히 오후 2-6시 사이 세일한다는 광고를 보고 북 카페보다 커피 가격이 더 저렴하니 계획을 변경했다. 내 가방에 책도 있으니 꼭 북 카페에 갈 필요도 없었다. 대신 손님들이 문을 열 때마다 출입문 근처에 앉아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상당히 추웠다. 며칠 전 여름 같더니 벌써 겨울처럼 춥다. 커피 가는 소리,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 소음과 사람들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카푸치노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맨해튼 거리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 볼래요?
-표가 있다면 당연 봐야지요.
-그럼 다시 연락할게요.
일본 모자 디자이너가 전화를 했다. 전날 카네기 홀에서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말러 교향곡 5번을 감상하러 가서 휴식 시간 동안 뉴욕 시티 센터에서 열리는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을 꼭 보고 싶었는데 티켓을 구입하지 못했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표를 구입했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토요일 오후 5시부터 브루클린 뮤지엄 무료입장이 되고 특별 공연도 열리는데 난 거기에 갈 힘도 없었는데 특별 패션전도 열려서 그녀는 뮤지엄에 간다고 했지만 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래전에는 무료입장 시간에 특별 전시회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특별 전시회는 입장료를 내야 볼 수 있다. 20불 -25불 정도의 뮤지엄 입장료는 저렴하지 않다. 그래서 난 안 간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댄스 공연이 열리기 전 뉴욕 시티 센터에서 만나 댄스 티켓을 받아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티켓값은 그녀에게 주었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집 근처에 시내버스가 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오래 걷다 장미꽃향기를 맡았다. 시월인데 이제 갓 피어난 장미꽃도 보아서 신기했다. 장미의 계절은 6월인데 늦게 피는 꽃도 있구나. 장미꽃향기는 달콤했다. 맨해튼 미드타운을 걷다가도 꽃향기를 맡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