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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첼시 High Line Open Studios

첼시 작가들과의 만남

by 김지수

10월 13일 일요일


며칠 감기로 불덩이 같은 몸인데 맨해튼에 외출을 했다. 토끼가 달 속에 산 줄 알았는데 내 눈 속에도 토끼가 살고 있나. 붉은 체리처럼 눈이 충혈될 정도로 아팠다. 맨해튼 첼시에서 열리는 특별 행사를 꼭 보고 싶어서 외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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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과 일요일 첼시에서 작업하는 화가들의 스튜디오 행사가 열렸는데 토요일 주말 아파트 슈퍼를 기다린다고 첼시에 방문하지 못했다. 이틀 동안 행사가 열리지만 어떤 화가는 토요일만 오픈하고 일요일은 닫아버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토요일 방문하고 싶었는데 어디 뜻대로 되니.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참 많다. 결국 만날 수 없던 화가들도 있었다. 그뿐 만이 아니다. 스튜디오 문을 노크했는데 "나가"라고 고함치니 놀랐다. 그러려면 문을 닫으면 될 텐데 왜 문을 열어두고 방문자를 혼동스럽게 하는지. 뭐 항상 이런저런 일도 생기니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를 해야 좋다. 작가들의 작업 공간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물감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전망 좋은 허드슨 강 비치는 스튜디오도 있어서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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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열리는 행사라서 내가 기억하는 화가도 있다. 전에도 만난 할머니 화가도 만났다. 재즈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 그분이 만든 작품을 보노라면 행복이 밀려오지. 조각품과 유화 작품이 꽤 많았다. 그분 부모님 웨딩 사진과 편지도 전시된 '미망인'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어머니 생신에 쓴 작가의 아버지가 쓴 축하 편지에는 "당신의 생일은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 당신의 헌신적인 노예 Joe"라고 적혀있었다. 부인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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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혼한 화가도 만났다. 이혼의 아픔이 너무 특별하고 커서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보여주었다. 난 그 작품은 그냥 보기만 했다. 기쁜 이야기는 항상 좋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 듣는 것도 힘들다. 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주의 화가 생각나게 하는 화가도 만나고 수학과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나중 화가로 커리어를 바꾼 젊은 작가도 만나 즐거웠다. 작품 느낌이 아주 특별해 무얼 전공했냐고 물으니 수학과 건축학.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어디서 영감을 받냐고 하니 머릿속에 있다고 하니 웃었다. 고등학교 시절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했고 대학 시절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 화가가 적성에 맞는 거 같아 변신한 젊은이는 마치 뮤지컬 배우처럼 외모도 근사했다. 그의 옷에 유화 물감이 묻어 있었다. 내게도 전공이 뭐냐고 물어서 말을 했지. 나도 오래전 한국에서 수학 교육을 전공했는데 하며 웃었다. 그 외도 중문학, 불문학, 행정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고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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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사랑하는 작가도 만나서 메트에 오페라 보러 자주 가냐고 물으니 음악 CD만 듣고 자주 안 간다고. 낡고 오래된 내 스카프를 보고 예쁘다고 하니 인사말이라고 생각했다. 4년 전인가 처음 살 때는 색이 무척 예뻤다. 연구실에서 만난 나이 든 멋쟁이 여자 교수님이 내 스카프 예쁘다고 어디서 구입했냐고 물으셔 웃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니 퇴색하니 예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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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 출신 화가도 만났다. 악센트가 뉴요커와 많이 달랐다. 뉴욕에 온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러갔는데도 억양이 쉽게 변하지는 않나 보다. 혼자서 작업하고 계셔서 잠깐 이야기를 했다. 그분도 뉴욕이 뉴잉글랜드 보다 더 좋다고. 뉴잉글랜드도 분명 아름답다. 그런데 뉴욕 문화가 특별하다. 깨끗하고 조용한 뉴잉글랜드와 보스턴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도 보스턴보다는 뉴욕이 더 좋다. 보스턴은 문화생활하기 겁난 도시다. 하버드대학과 MIT 대학 등 미국 최고 명문 대학이 있는 교육 도시이지만 뉴욕처럼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하기도 어렵고 대개 공연 예술 티켓이 너무 비싸서 서민들에게는 부담스럽다.


뉴잉글랜드 출신 화가는 뉴욕에 70년대 와서 작품 활동을 하니 꽤 연세든 할아버지다. 일주일에 이틀은 다른 일을 하고 대개 작업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항상 작업하는 것은 아니고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내킬 때 하신다고. 처음 트라이베카 지역 아주 좁은 공간에서 일했는데 당시 렌트비가 150불이라고 하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렌트비가 궁금해 미안한 마음으로 내가 물어서 답변을 하셨다. 지금 사용 중인 첼시 스튜디오는 트라이베카 보다 훨씬 더 넓고 매달 렌트비가 2400불이라고. 지금 맨해튼 첼시 렌트비에 비하면 너무너무 저렴하다. 처음 그 빌딩 주인이 화가들에게는 저렴하게 렌트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들인가. 비밀로 하려다 슬쩍 공개한다. 맨해튼 문화가 참 특별하다. 또 한 가지 놀란 점은 직접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 틀도 제작하신다고. 그럼 비용이 훨씬 더 줄어들겠다. 오래전 소호 드로잉 센터와 롱아일랜드 시티 MOMA PS1에서 전시회도 열었다고 하셨다. 낯선 할아버지 화가도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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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뉴욕 출신이 아닌데 늦게 뉴욕에 와서 작품 활동을 하는 할머니 화가도 만났다. 몇몇 젊은 방문자들도 만났는데 할머니 화가가 갑자기 미국 교육비가 비싸다고 화제를 돌렸다. 자녀가 세명이면 비싼 아이비리그 대학에 어찌 보내 하면서 할머니 시절 학비가 3천 불이었다고. 대학 교육비 인상폭이 너무너무 크다고. 미국 귀족들은 비싼 학비가 아무렇지 않지만 서민들에게는 하늘처럼 높다. 아들과 함께 방문했던 뉴욕 해양 항공 우주 박물관(Intrepid Sea, Air & Space Museum)에서도 미국 교육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가니 얼른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장을 보러 갔다. 저녁 무렵이라 손님이 얼마나 많던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 불편하고 사고 싶은 두부와 고등어도 떨어졌더라. 약간 가격이 비싼데 싱싱하게 보여 조기 한 마리도 사고 싱싱한 연어도 구입하고 가을이라 제철인 단감 1박스도 구입했다. 조기와 연어를 구입할지 말지 괜히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불덩이 같은 몸으로 외출해 화가들도 만나고 장도 보고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하고 <뉴욕 문화 나들이> 브런치 북을 발간하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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