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콜럼버스 데이 휴일 맨해튼 에이스 호텔에서 오페라 감상

에콰도르에서 온 거리 음악가 만남

by 김지수

10월 14일 월요일


콜럼버스 데이 휴일(10월 둘째 월요일) 두 편의 글쓰기를 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을까. 스페인 이사벨 여왕으로부터 얼마를 받았을까.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쁨이지. 고통 없는 영광이 어디 있을까. 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보물섬을 발견해 <뉴요커의 보물지도>를 완성했다. 내가 뉴욕에 간다고 하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모두가 불가능한 꿈이라고 했다. 함께 영어 회화수업을 받은 지인은 뉴욕에 가서 바로 이민 가방 싸서 한국에 돌아올 줄 알았다고 해서 웃었다. 물론 남들이 말한 대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수반했다. 황무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이민 올 때 알았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지인에게 맨해튼에서 공부했던 음악가를 소개받으려 했지만 너무너무 바빠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맨해튼은 엄청 비싸고 더러워 살기 힘든 도시란 말만 들었다. 비싼 렌트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한국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도 적응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눈물로 눈물로 공부하고 눈물로 눈물로 맨해튼 거리를 걸으며 오랜 세월 걸려 만든 보물지도!


뉴욕에 아는 친구 한 명만 있었다면, 뉴욕에 시댁이든 친정이든 살고 있었다면, 날 도와줄 단 한 명의 사람만 있었다면 그래도 조금 덜 힘들었을 텐데 단 한 명도 없었다. 친구 한 명 없이 고독한 세월을 오래오래 보냈다.


휴일 늦은 오후 맨해튼에 가려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역에서 7호선에 탑승했는데 텅텅 빈자리가 있을 정도로 승객들이 많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낯선 승객이 날 보고 피곤한 표정을 짓더니 "정말 피곤해요!"라고 했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 피곤하다고 하니 웃으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지친듯한 표정으로 잠을 자려고 하다 내가 웃으며 물으니 그도 웃으며 대답했다. 1988년 에콰도르에서 이민을 왔다고. 작년까지 신발 수선공을 하다 올해부터 7호선, 1호선, R 트레인, F 트레인을 타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무슨 노래를 부르냐고 하니 낭만적인 노래를 부른다고. 아침 11시경 시작해 저녁 8시경 막을 내린다고. 하루 수입이 얼마냐고 물으니 그날그날 다르다고. 그도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한국이라고 하자 중국인과 한국인이 스패니시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고 말하며 웃었다. 20불 지폐를 받으면 그날은 신의 축복이 함께 한 날이라고 했다. 에콰도르 출신 부인과 이혼했고 멕시코 여자랑 동거했는데 그녀는 식품비만 내고 렌트비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나중 서로 맞지 않아서 헤어지고 혼자 산다고. 딸 3명이 있는데 2명은 결혼하고 막내딸만 남았다고. 에콰도르에서 19세 결혼하고 뉴욕에 왔다고 하니 놀랐다.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짓자 에콰도르에서는 여자들 결혼이 15-16세 하기도 한다고. 노래 부르는 직업이 어떠냐고 묻자 참 힘들다고 했다. 큰 방 하나가 800불, 작은 방 하나가 600불인데 렌트비 벌기도 힘들다고. 신발 수선공 직업은 여름 시즌은 한 푼도 벌 수 없어서 슬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구나.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데 난 모르고 있었다. 몹시 피곤하다는 남자도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자 피곤이 풀린 듯 행복한 미소를 짓고 떠났다.


그랑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74가 브로드웨이 지하철역에서 내려야 한 것을 잊고 말았다. 할 수 없이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맨해튼에 가는 지하철에 환승했다. 미드타운에 내려 커피 한 잔 마시고 얼마 전 선물 받은 <언어의 온도> 책을 잠깐 읽다 걷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5번가 거리도 걸었다.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도 들었다. 교회 종소리는 내게는 언제나 축복 같다. 국화꽃 향기도 맡고 걷다 록펠러 센터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K 타운 근처에 내려 ACE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 7시 특별 이벤트 오페라 아리아를 감상하기 위해서.


호텔 로비 소파는 언제나 손님들이 많다. 편하게 소파에 앉아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서 인기가 더 많다고. 테이블도 놓여 있어서 편하고 좋다. 잠시 후 빈자리를 발견하고 무척 기뻤는데 내가 앉으려고 하자 젊은 남자가 3명의 친구들이 온다고 했다. 할 수 없어. 포기해야지. 튼튼한 다리로 서서 기다렸다.


에이스 호텔은 2년 전인가 우연히 서울에서 온 은퇴한 교수님을 만났던 곳이다. 수 십 년 전 플로리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가 교수생활을 하다 은퇴했다고. 호텔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날 만나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한국인이라서 반가웠겠지. 뉴욕에서 산다고 하니 더 반가울 테고.



IMG_1287.jpg?type=w966
IMG_1290.jpg?type=w966


IMG_1286.jpg?type=w966 맨해튼 ACE 호텔 로비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불렀다. 맨해튼 문화가 특별하다.


아름다운 조명 켜진 로비 테이블에는 촛불도 켜져 더 근사했다. 불빛이 주는 느낌도 좋다. 와인과 맥주를 마신 손님들도 있고 7시가 지나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나오는 그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도 불렀다.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이 부른 노래! 한국에서 그 노래를 듣고 바람둥이가 부른 거라 짐작도 못했다. 진짜 여자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줄 알았어.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아리아도 불러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떠올랐다. 어쩌다 그리 일찍 세상을 떠나셨을까. 가을밤에 듣는 아리아는 더 좋다.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점점 밤은 깊어만 가는데 하필 마늘즙이 떨어져 사야 하는데 깜박 잊어버려 당장 사야만 하는 비상사태. 한식을 먹으니 마늘즙이 꼭 필요하다.


IMG_1281.jpg?type=w966 호텔 로비에서 장미꽃 향기도 맡아 좋았다.


호텔 로비에서 장미꽃 향기도 맡고 섭섭하지만 일찍 집으로 돌아오려고 지하철에 탑승했는데 에드 시런의 노래( Ed Sheeran - Perfect)를 거리 음악가가 불렀다. 음악은 언제나 좋다. 보스턴에 여행 가서 처음으로 알게 된 에드 시런 가수. 그도 무명시절 고생 많이 했다고 들었다. 자비로 음반도 녹음했다고. 가을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버드 대학 교정도 보고 싶다. 낙엽 떨어진 교정에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리움에 퐁당 빠졌다.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에 돌아와 시내버스를 타고 한인 마트에 가서 마늘즙이 담긴 통을 구입했다.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밤하늘에 뜬 보름달 보며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keyword
이전 13화뉴욕 첼시 High Line Open Stu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