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10월 15일 화요일
행운이 찾아왔을까. 참 특별한 하루였다. 카네기 홀에서 베를린에서 온 피아니스트와 러시아 상트페테르 브루크에서 온 79세 할머니도 만나고, 첼시 갤러리에 가는 길 방글라데시에서 온 상인도 만나고, 첼시 갤러리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청소부도 만나 이야기를 했다. 4명의 삶은 각각 달랐다.
러시아에서 온 올가 할머니(79세)는 23년 전에 뉴욕에 이민을 오셨고 루스벨트 아일랜드에 살고 계신다고. 러시아에서 교육계에 종사했다고 하셨다. 카네기 홀까지 지하철로 약 20분 정도 걸리니 정말 좋으시겠다. 할머니 아드님이 아주 오래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을 했고 아드님이 이민을 오라고 권해서 오게 되었다고. 여행과 음악을 무척 사랑한 올가는 프랑스 파리, 폴란드, 독일과 북한 등에 여행을 갔다고 하니 놀랐다. 어떻게 북한에 여행을 갔냐고 하니 러시아인들은 북한 방문이 어렵지 않으셨다고. 그래서 평양에 방문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그 외 다른 지역도 방문했는데 오래전이라 도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아드님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살고 파이낸스를 전공한 손자는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는데 12월 뉴욕으로 돌아와 함께 살 예정이라고 하셨다. 내게 로잔느 캐시를 아냐고 물어서 뉴욕대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해 그녀를 알게 되어 노래를 아주 잘 불러 카네기 홀에서 그녀 공연을 본 적이 있다고 하니 놀라셨다. 또 나 역시 공연을 무척 사랑하고 얼마 전 뉴욕 시티 센터에서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도 봤다고 하니 다시 웃으셨다. 올가 할머니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Yannick Nézet-Séguin를 무척 사랑해 공연을 보러 오셨다.
아들과 함께 카네기 홀 저녁 8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는데 독일 베를린에서 온 피아니스트를 만나 이야기를 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영화배우처럼 멋진 미모의 중년 남자가 우리를 보고 미소를 지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피아니스트였다. 현존 음악가랑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행복했다. 베를린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전공했다는 음악가는 우리에게 자주 카네기 홀에 오냐고 물었다. 자주 방문하고 아들이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고 말했다. 베를린 피아니스트가 베를리너 같지 않다고 하니 웃으셨다. 그가 바흐와 베토벤을 무척 사랑한다고 하니 아들과 나도 사랑한다고 하니 다시 웃고 말았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프랑스 피아니스트 Hélène Grimaud를 난 잘 모른데 그분은 잘 아는 분이라고. 그분이 바흐를 무척 사랑한다고 하니 카네기 홀에서 본 안드라스 쉬프(András Schiff) 연주가 참 좋았다고 말했다. 독일 피아니스트는 시카고, 뉴욕, 보스턴과 뉴햄프셔 콘서트 투어를 하신다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낯선 사람이라도 취미가 비슷하면 금세 친해진다.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는 처음 만났는데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를 하니 좋았다.
매년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명성도 높고 한인 바이올리니스트 David Kim이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만에 뵙는 바이올리니스트 표정은 무척 밝아 보였다. 음악가의 길이 무척 힘든데 명성 높은 오케스트라에 소속해서 활동하는 한인 출신 음악가들도 꽤 많다.
첼시 갤러리에 가는 길거리에서 노란 바나나를 1불어치 구입하며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방글라데시라고.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과일 파는 상인들 가운데 방글라데시 출신이 많다. 오래전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 양로원에서 만난 직원 한 명도 방글라데시 출신이었다. 런던에서 1년 동안 지내다 뉴욕에 오게 된 그녀 덕분에 석양이 질 무렵 무척 아름다운 오이스터 베이 해변을 알게 되었다. 기차역 옆에 있으니 언제 한 번 방문해야지 하다 그만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첼시 가고시안 갤러리에 가서 케냐에서 찍은 플라밍고를 담은 사진과 네브래스카 석양 사진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아름다운 자연은 평화를 선물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노라면 감동이 밀려온다.
첼시 21가 리처드 세라 전시회는 지난번에 봤지만 24가 전시회를 보지 않아서 방문했는데 약간 느낌이 달랐다.
또 몇몇 갤러리를 순례하다 우연히 청소부랑 이야기를 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1980년 미국 텍사스에 도착해 3년 반 동안 지내다 뉴욕으로 건너왔으니 꽤 많은 세월이 지났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푸에르토 리코를 거쳐 텍사스를 거쳐 뉴욕에 왔다고. 갤러리 출입문 유리창을 닦는 그가 날 보며 웃으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뉴욕이 좋아요?
-예, 좋아요.
-왜 좋아요?
-자유로워서 좋아요.
-그래요. 자유로운 면은 좋지요. 그런데 렌트비와 생활비가 비싸 힘들어요.
-뉴욕은 자본주의 대표적인 도시라 그렇지요. 모든 게 다 돈, 돈, 돈이지요.
-도미니카 공화국은 어때요?
-정치인들과 경찰들의 부패가 심해서 살기 힘들어요. 뉴욕은 안전해서 좋아요.
우연히 첼시 갤러리에서 청소부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만나는 쉐릴 할머니 말에 의하면 뉴욕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청소부 말에 의하면 아마도 미국 다른 지역에 비해 치안이 더 좋은가 짐작을 했다. 워낙 광활한 미국이라 지역별로 차가 클 것이다.
카네기 홀에서 밤늦게 공연이 막이 내려서 자정 무렵 집에 도착했다. 화요일 아침은 겨울처럼 춥다 늦은 오후 기온이 올라갔다. 기온 변화가 심해서 감기에 걸리기 쉬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