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수 Oct 16. 2019

뉴욕 한인 사회_
보통사람들_목사 세 분(4)


뉴욕 퀸즈 플러싱/ 한인 커뮤니티


이민생활은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같은 직종에 속해도 다르다. 상황이 참 중요하다. 오래전 미국에 이민을 오신 목사님과 2007년? 인가 뉴욕에 오신 목사님 삶이 서로 달랐다. 



7. 한인 목사 부인(할머니) 롱아일랜드 제리코 아들네 집에 반찬 하러 간다고_미국 살기 좋아요.


첫 번째 뉴욕 운전 주행 시험도 못 보고 플러싱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 돌아갈 때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랑 이야기를 했다. 목사 남편을 따라 뉴욕에 온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뉴욕에 이민 올 때 짐도 없어서 단칸방에서 이불을 덮고 살았다고 하니 한국 6.25 전쟁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형편이 더 좋아져 뉴욕이 좋다고 하셨다. 미국 의료 보험 메디케이드(가난한 사람 갖는 의료 보험)와 메디케어(65세 이상과 장애인 경우 해당)가 있고, 푸드 스탬프로 식품을 구입하고, 매달 소셜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뉴욕 자연이 아름다워 뉴욕이 살기 좋다고. 노인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니?라고 말했다. 자녀 교육도 마치고 용돈이 조금 필요한데 소셜 연금이면 충분하다고. 소셜 연금은 개인마다 다르다. 


아주 오래전 미국에 이민 온 경우는 이 네 가지(메디케이드, 메디케어, 소셜 연금, 푸드 스탬프)를 받아 뉴욕에서 그럭저럭 지낸 분도 있다고 한다.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있으면 노인 아파트도 분양받고 혜택이 아주 많은 듯. 모두 정부 보조다. 미국 의료 제도가 정말 심각하고 의료 비용이 너무 비싸지만 정부 혜택을 받고 지낸 분들도 많다. 비단 한인 이민자들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에서 의료 비용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미국 정부 빚도 많아서 계속 소셜 연금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오래전 플러싱에서 만난 한인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대학원 시절 수업 시간에 이런 미국 상황에 대해 들었지만 할머니는 그런 내용을 모르니 매달 정해진 연금을 받아 기분이 아주 좋은 듯. 


반이민정책을 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푸드 스탬프와 메디케이드를 비롯한 정부 복지혜택을 이용하면 영주권을 기각시키는 새 이민정책을 발표하고 끝내 강행하고 나섰다. 새 영주권 기각 대상-푸드스탬프, 메디케이드, 메디케어 D 처방약, 롱텀 케어, 주택보조. 몇 개월 후 어찌 변할지 모르지만 미국 실정이 과거와 많이 달라져 가고 있다. 


메디케이드와 메디 케어 의료 보험 혜택이 아주 많은 듯 짐작해. 롱아일랜드 양로원(공립)에서 발런티어 할 때 만난 한인 디렉터에 의하면 한 달 노인들 체류 비용이 약 8천 불이라고 해 깜짝 놀랐고 개인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고. 8천 불 비용이 모두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에서 온 금액이라고. 그래서 미국 정부 의료 지출이 아주 많다. 


그날 할머니는 제리코 아파트에 사는 아들에 집 반찬을 해주러 가신다고. 할머니 아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뉴욕에 살고 뉴욕 렌트비는 비싸니 아낄 것은 렌트비밖에 없고 그래서 1 베드룸에 모두 살고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 며느리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고 아들이 두 자녀 교육을 시킨다고 하니 놀랐다. 대개 엄마가 미국에 머문 경우가 더 많아서. 할머니는 뉴욕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내게 렌트비를 절약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잠만 자면 되는데 왜 비싼 렌트비를 주고 살아야 하냐고. 



8. 토론토에서 온 한인 목사네 가족_뉴욕은 환상을 품기엔 너무 벅찬 도시 


우리 가족 뉴욕 정착 초기 롱아일랜드 제리코에서 살던 무렵 우리 집 아파트 맞은편에 캐나다에서 온 한인 목사님 부부가 살고 있었다. 30대 중반 한인 목사는 미국 서부에서 공부를 마치고 캐나다 토론토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만난 한인 여자와 결혼을 하셨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에 간 목사님 부인은 캐나다 시민권이 있었다. 목사님은 결혼으로 영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내게 말씀했다. 목사님 부인은 캐나다에서 약학과를 졸업. 약사 자격증이 있다. 그러니 토론토에 거주할 무렵 생활은 뉴욕보다 훨씬 더 좋았다고 했다. 


롱아일랜드 개척교회에서 일하는 목사님 한 달 수입은 약 3천 불- 3500불 정도. 목사의 급여도 교회에 따라 다르고 교인의 숫자가 적은 경우 목사님 수입은 더 적은 것 같다. 기억에 의하면 당시 아파트 렌트비가 약 1500불이었고 목사님 부부에게 두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들 한 명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얘기를 하다 목사님 부부가 뉴욕 생활이 아주 힘들고 어려워 다시 토론토로 돌아갈 거란 얘기를 들었다. 


토론토에서 뉴욕으로 올 무렵 부인이 약사로 일하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뉴욕의 경우 캐나다 약사 자격증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목사님 수입만으로 뉴욕에서 지내기 무척 어렵다고 했다. 어린 아들은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에서 교육시키고 싶어 뉴욕에 대한 환상을 갖고 왔지만 환상을 갖기엔 너무 벅찬 도시라 말했다. 


자녀가 어리고 특별한 교육비가 지출되지 않아 넉넉하지는 않지만 뉴욕에서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나 혼자 생각했다. 목사 부부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목사님은 왜 낮은 수입으로 힘들게 뉴욕에서 지내느냐고 말씀했다.


지구촌에 한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지만 나라별로 도시별로 이민 생활은 다르다. 또, 이민 적응력도 개인차가 아주 크다. 더 적은 수입으로 잘 적응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입이 필요한가는 개인적으로 차이가 아주 크다. 더 많은 규모의 수입으로 더 많은 문화생활을 반드시 하는 것도 아니다. 


워싱톤 DC에 거주하는 친구의 소개로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온 목사님 부부는 만 1년이 채 안되어 다시 토론토로 떠났다. 토론토로 이사할 때 짐 정리하면서 모두 캐나다에 가져갈 수 없어서 내게  준 뚝배기를 아직 사용하고 있다. 뚝배기를 보면 늘 한인 목사님 생각이 난다. 



9. 플러싱에서 만난 젊은 한인 목사님 이야기_ 뉴욕 한인 가정 자녀 문제 심각해. 


오래전 플러싱에서 만난 젊은 한인 목사님은 종교 비자를 받아 뉴욕에 왔다. 한국 국가 대표 체육선수로 활동하다 신체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 활동을 하지 못해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된 경우다. 그분도 뉴욕 한인 가정에 이리 심각한 문제가 있는 줄 모르고 뉴욕은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뉴욕 한인 이민자들은 정말 멋지게 산다고 착각했다고. 한국에서는 뉴욕 한인 사회를 잘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문제 많은 플러싱 한인 가정집을 자주 찾아가 자녀 상담을 하신다고. 미래 한인 커뮤니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전 12화 뉴욕 한인 사회_ 보통사람_운전학원강사(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