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택시 기사들
5. 27년 전 뉴욕에 온 한인 택시 기사. 최근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주에 사는 유학생과 한인들 약 3만 명이 귀국하니 한인 커뮤니티 장사가 힘들다.
27년 전 뉴욕에 왔고 대학 시절 만난 부인과 결혼해 일찍 자녀를 출산했다고. 27년 전 뉴욕은 현재 보다 훨씬 더 좋았으나 요즘 경기가 너무너무 안 좋아 힘들다고. 택시 기사는 대개 부업이고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게 흔한 일이고 부인도 일을 하니 수입이 여러 곳에서 들어와도 뉴욕의 비싼 렌트비와 생활비로 지출이 되니 생활이 너무너무 어렵다고. 또한 최근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에 사는 유학생과 한인들 약 3만 명이 귀국하니 한인 커뮤니티 장사도 안 되고 한인들 상대로 하는 택시 영업도 안 되고. 트럼프 정권이 이민자에게 너무 가혹하게 하고 이래저래 무척 힘든 시기라 하니 놀랐다. 꽤 많은 유학생들이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그리 많은 한인들이 떠난 줄 모르고 있었다. 트럼프 정권 후 피부로 느낀 것은 경찰 숫자가 너무너무 많아졌다. 거리거리에 경찰이 지키고 불체자 단속도 아주 심하게 하는 중. 요즘 학생 비자 F 1 받기도 너무너무 힘들다고 하고. 갈수록 이민자들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간다.
6. 뉴욕 온 지 32년 한인 택시 기사. 한인 이민자들 삶은 다 비슷비슷해요 모두 어렵게 살지요.
장보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며 기사에게 물었다.
- 어디로 휴가 가세요?
-아니요. 무슨 휴가요? 휴가 떠나세요?
-아니요. 저의 집도 휴가 떠난 지 오래되었어요. 뉴욕에 오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32년 되었지요.
-뉴욕 좋은가요?
-아, 살기 너무 힘든 도시예요. 이민 1세는 살기 너무 힘들고, 2세는 좋아요. 외동딸은 27세인데 뉴욕에서 탄생했어요. 결혼은 한국 가서 하고 뉴욕에 돌아왔지요. 다른 주에 가면 사람들 얼굴빛이 달라요. 그들 얼굴은 행복하고 여유롭게 보여요.
-그래요? 지난번 택시를 탔는데 그분은 뉴욕이 자유롭고 좋다고 했어요.
-그렇죠. 뉴욕이 좋은 면도 있어요. 자유롭지요. 남의 눈치 안 보고, 한국처럼 체면 같은 거 생각 안 하고 편히 살지요. 한국에서 체면 생각 안 하고 살았으면 부자 되었을 텐데...
-그동안 택시 기사만 하셨어요?
-아니요. 여러 가지 직업을 했지요. 맨해튼 거리에서 액세서리도 팔고 귀걸이, 목걸이 이런 거 팔았지요. 생선 가게도 하고, 안 해 본 직업이 없어요. 지금은 택시 기사를 해요. 한인 이민자들 삶은 비슷비슷해요. 다 힘들게 살지요.
-어떤 직업이 가장 좋았어요?
-생선 가게가 좋았어요. 과거 생선이 아주 쌌어요. 히스패닉계 직원 4명 데리고 있었는데 생선 1 상자 팔면 직원 주급을 줬지요. 이윤이 많이 남았어요.
-왜 그만두셨어요?
-말하자면 길어요.
뉴욕에 온 지 32년이 되었다는 기사는 50대 중반 즈음으로 보였다. 점점 살기 힘든 도시로 변한다고. 렌트비가 비싸고 해마다 인상되니 부담이 너무 크다. 그분은 이민자들 삶이 다 비슷비슷하고 모두 어렵게 지낸 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6. 아들 5세 때 뉴욕에 온 택시 기사, "뉴욕이 싫어요"
아들이 5세 때 뉴욕으로 가족이 건너왔는데 뉴욕에 온 게 너무 후회된다고. 기사는 뉴욕 생활이 정말 싫은 눈치였다. 결혼을 하니 아들을 출산하게 되고 그러자 택시 기사 부인이 미국에 있는 기사 여동생과 전화 통화를 수시로 했고, 한국은 사교육비가 아주 많이 들고, 글로벌 세상이니 영어 교육도 중요하고, 나중 유학도 시키는 세상으로 변했으니 차라리 이민 가서 자녀 교육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뉴욕에 왔지만 아들이 잘한 것은 '영어 하나'라고 하셨다. 미국 학생들 공부도 정말 많이 시키니 이 정도 공부하면 한국 스카이 대학 왜 못 가겠냐고 하셨다.
7. 70년대 뉴욕에 와서 델리 가게 하며 돈 많이 벌었는데 재산 탕진한 택시 기사
처음 우리 가족이 정착한 도시는 뉴욕 롱아일랜드 딕스 힐이었다. 유대인이 많이 사는 부촌 동네였지만 맨해튼과 상당히 떨어져 문화생활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때 두 자녀와 나 모두 공부를 하니 아예 관심조차 가질 수도 없었다. 그러다 첫해 크리스마스 무렵 두 자녀랑 함께 맨해튼 구경하려고 한인 여행사에 예약을 해서 맨해튼에 갔다. 1명당 80불. 지금 생각하면 너무 비싸다. 플러싱 고려당(지금 뚜레쥬르) 앞에서 여행사 버스를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아 여행사에 공중전화(당시 휴대폰이 없어서)를 하니 여행객이 너무 많아 우리를 태우지 못하고 바로 맨해튼에 가서 대신 우리 가족을 위해 택시를 불렀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때 만난 한인 택시 기사는 70년대 뉴욕에 이민 와서 델리 가게 하며 돈을 많이 벌었지만 재산 관리를 못해 탕진해서 택시 기사를 한다고 말했다. 맨해튼 델리 가게는 한밤중에도 일하고 많이 힘들었다고. 돈 벌기는 무척 힘들지만 돈 쓰기는 너무 쉽더라고 했다.
8. 한인 택시 기사_ 갈수록 경기 안 좋아.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혜택 받아 굳이 택시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우버 등장)
장을 보러 가서 집에 돌아올 때 부른 한인 택시 기사가 갈수록 경기가 안 좋은 이유가 있단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데이케어 등을 이용한 노인 인구가 많아 택시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두 개의 의료보험이 차량 서비스까지 제공하니 택시를 왜 부르겠냐고. 과거 한인 노인들이 장보고 힘드니 한인 택시 많이 이용했다고. 우버 택시도 젊은 층에서 많이 이용하니 갈수록 경쟁력이 높아만 가고 결국 한인 택시 회사는 더 이상 수입을 올릴 수 없다고. 또, 중국인 이민자가 한인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경쟁은 갈수록 높아만 가고. 청과물, 네일가게, 세탁소, 델리 가게 등이 한인 비즈니스였지만 이제 중국인 비즈니스가 점점 많아져 갈수록 한인 이민 1세가 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이민 온 사람들은 정부 혜택을 받아 좋은 점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푸드 스탬프, 소셜 연금 등을 말한 듯싶다.
9. 또 다른 한인 택사 이야기_요즘 경기 너무 안 좋다.
택시를 부를 때 한인 택시 회사에 전화를 한다. 그럼 직원이 택시 기사에게 연락을 한다. 그리 연결해주는 한 달 콜비가 680불 정도라고. 플러싱에 한인 택시 회사가 약 10개 정도 있고. 기사가 일하는 회사에 약 백 명 정도 일하고 자신 순번이 돌아오려면 오래오래 기다리고 그러니 하루 많으면 100불 정도 벌고 그 가운데 50불 정도가 회사 콜비와 기름값으로 지출된다고. 물론 티켓 받으면 완전 손해다고 말씀하셨다. 그 기사는 나이 들어 직장을 잃으면 하기 좋은 직업이 택시기사라고. 대개 기사 수입이 적으니 다른 부업도 많이 한다고. 뉴욕에 몇 가지 직장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10. 실패의 쓴맛 경험한 택시 기사_자녀 교육 실패_귀국하고 싶어요.
30대 후반에 뉴욕에 이민 오셨다는 택시 기사는 부인이 자녀 교육을 위해 뉴욕에 가자고 하니 뉴욕에 오게 되었지만 뉴욕에서 경험한 거라곤 '실패의 쓴맛'이라고. 4월에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귀국도 뜻대로 되지 않고 교통사고 처리가 된 후 한국에 돌아갈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뉴욕에 왔지만 기사분 아드님이 뉴욕 깡패와 어울리다 보니 고등학교 조차 졸업하지 못하니 교육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기사의 슬픈 이야기. 아드님이 무척 착해 기사에게 자초지종 설명해서 사연을 알게 되었다고.
기사 부인은 놀고먹는 타입이고 뉴욕은 한국과 달라 가부장적인 권위도 없고 기사 혼자 일하고 돈 벌어 가족 부양하니 뉴욕 생활이 너무너무 힘들다고 불평하셨다.
요즘 젊은이들 미국 이민에 대해 관심이 많아 기사님에게 이민 생활이 어떤지 묻자
"뉴욕에 오고 싶으면 오라고 해라. 뉴욕에 와서 고생 좀 해 봐야 알지. 이민하고 싶으면 해야지."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