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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Aug 07. 2018

뉴욕 플러싱 한인 타운과
나의 추억 (1)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월요일 오후 시내버스를 타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역에 갔다. 월요일 저녁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과 할렘에서 열리는 이벤트에 참가하려고 미리 예약을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려 맨해튼에 가지 않았다. 마음이 흔들리는 데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이민 가방 몇 개에 짐을 담고 뉴욕에 온 기념일 전야제. 끝없는 역경과 시련이 주어진 뉴욕 생활. 연구소 그만두고 지하철 타고 맨해튼에 자주 외출하니 맨해튼이 문화생활하기 좋은 보물섬이란 것도 발견하게 되었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고 나서 알게 된 것인지. 눈물 없이 고통 없이 새로운 세상이 그냥 열리지 않더라. 

매미가 울던 무더운 여름날 강산이 변하는 세월도 훨씬 더 지나서 뉴욕 JFK 공항에 내려 롱아일랜드에 새로운 둥지를 열고 두 자녀와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고 언어와 문화가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이 얼마나 힘들던지.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땅에서 지리도 낯설고 언어도 다르니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지만 한국에서 '이민과 유학'이란 단어는 낯설었고 주위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내가 알아야 할 그 많은 정보를 전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내가 필요한 정보는 단 한 가지도 구하지 못했다. 

두 자녀 학교 수속과 내가 공부할 학교에 가서 수속을 한 뒤 기차와 버스를 타고 몇 차례 환승한 뒤에 도착한 플러싱. 나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플러싱을 보고 나만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두 자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뉴욕에 온 사람들이 플러싱을 방문하면 모두 놀라며 '여기가 뉴욕이야? 세상의 한 복판 뉴욕이 맞아?"라고 말을 한다. 

수년 전 맨해튼 가깝고 자녀 학군 좋고 렌트비 저렴하고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가 어딘가라고 묻던 분이 계셨는데 그런 지역이 어디 있겠는가. 그분도 플러싱 이미지가 너무 안 좋다고 플러싱에서 살 마음은 전혀 없다고. 학군 좋은 롱아일랜드는 맨해튼과 멀고 플러싱은 롱아일랜드 보다 더 가깝다.


우리 가족 역시 두 자녀 중고교 시절은 학군 좋지만 맨해튼과 거리가 먼 롱아일랜드에 거주했다. 공부하던 무렵이라 맨해튼 외출은 거의 불가능했다. 두 자녀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 후 뉴욕 시 플러싱으로 이사를 왔고 비로소 맨해튼 나들이가 가능했다. 맨해튼에 가기 위해서 몇 차례 환승하지만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뉴욕은 이민자들의 도시. 플러싱은 이민자의 가난한 삶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는 지역이다. 한국의 가난한 70년대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시간이 멈춘 도시' 같아 보인다.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 부근 


가난은 숨길 수 없나. 플러싱 거리거리에서 가난한 냄새가 가득히 풍긴다. 지하철역 주변 메인스트리트에는 중국어 간판이 가득하고 7호선 종점 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리로 올라와 맥도널드 숍 옆 골목길을 통과해 시내버스 정류장(Q13, Q28) 근처 옆 유니언 스트리트는 한국어 간판이 즐비하다. 과거 플러싱은 한인 상가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중국인 상가 지역으로 탈바꿈했고 오래오래전에는 유대인들이 개척한 동네였고 이탈리아계와 그리스계 이민자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1970년대 중반 뉴욕 시가 지독한 불황을 겪자 그 자리를 한인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플러싱 메인스트리트가 한인 상가 밀집 지역이었고 플러싱 한복판에 공용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가 편리하니 한인 상권이 더 발달되어  자연스럽게 한인 타운이 자리 잡게 되었다. 뉴욕 이민 1세대에게 플러싱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지만 높은 자녀 교육열로 한인들은 학군 좋은 지역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를 중국인이 비집고 들어와 지금은 메인스트리트가 중국인 상가 밀집 지역으로 변했다. 

한국에서는 "이민"이란 단어가 생소할 수밖에 없고 뭐든 그러하듯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군에 입대하지 않은 사람이 군 생활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출산도 마찬가지, 수험생도 마찬가지, 사업도 마찬가지, 유학과 이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 가서 뿌리를 내리는 것은 그냥 좋은 그림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화려한 뉴욕의 생활을 접하고 모든 이민자가 그렇게 화려하게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의 바다에 퐁당 빠진 셈이다. 한인 이민의 시작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가서 일하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하고, 한국 전쟁으로 미국에 온 사람도 있었고, 1965년 개정된 미국 이민법으로 한국에서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미국 인구센서스 통계에 의하면 미국 거주 한인이 1970년대 약 7만 명, 2010년 약 171만 명이고 2014년 연구소 보고에 의하면 재미교포의 수는 약 2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민 1세대로서 교수, 변호사, 의사와 회계사 등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소수의 한인들도 있지만 대다수 이민자들은 좋은 직장 구하는 데 한계가 많아 자영업에 종사했다. 한국에서 스카이 대학을 졸업해도 미국에 오면 한국의 신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언어 능력과 개인 능력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이민을 오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한국에서 스카이 대학 졸업 후 미국에 와서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살면서 한국어로 적힌 신문과 방송을 접하고 미국 문화권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도 만났다. 한국에서 의사 전문의 자격증이 있는 분이 뉴욕에 와서 서비스 직에 종사하는 이야기도 가까이서 듣고 비단 한인 의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 출신 의사도 미국에서 다시 의대 과정 공부하기 힘드니 병원에서 사무직에 종사하며 의사 일을 도와주는 것을 직접 보았다. 이민을 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게 되고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플러싱 유니언 스트리트 주변 / 7호선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 근처 


한국어 간판이 많은  플러싱 유니언 스트리트에 약국, 제과점, 운전 자동차 학원, 이민 봉사 센터, 미장원, 식당, 보험, 미용학교와 심지어 운명을 점치는 철학원 간판도 보인다. 



플러싱에 있는 한인 제과점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 지 10년이 더 지났고 플러싱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공용 주자창 자리에 '플러싱 커먼스'라는 초대형 주상 복합 단지가 세워졌고 한국계 파리바게뜨와 뚜레 쥬르 제과점이 오픈해 한인들과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학위를 마치고 미국인 회사에서 일할 적 중국계 직원이 파리바게뜨에서 만나자고 할 때 무슨 말인지 의아했는데 나중 알고 보니 한국 파리바게뜨가 플러싱에 오픈했다. 그 후 회사에 갈 적 자주 파리바게뜨를 이용하곤 했고 무한 리필되는 커피 마시며 뉴욕 타임스를 읽기도 했으나 경제가 점점 안 좋아진 후로 무한 리필은 사라져 버렸다.

플러싱 첫나들이 메인스트리트에 있는 버거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해 먹으며 미국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 놀랐고 그때는 돈을 지출하고 나면 항상 한국 돈으로 환산하는 습관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자 미국 물가에 적응하고 살아가게 된다. 


플러싱의 한인 타운을 보면 시간이 멈춘 듯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떠난 듯 보이지만 의료비 또한 얼마나 비싼지 깜짝 놀랐다. 뉴욕에 올 적 미리 예방 접종을 하고 오지만 학교에 제출할 서류에 빠진 예방 주사가 있어 한인 닥터 오피스에 가서 주사를 맞는데 1인 100불을 주니 가슴이 철렁거렸다. 한국에서 불과 몇천 원이면 받는 예방 접종을 수 십만 원을 줘야 하니 놀라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지. 한인 자동차 학원 1시간당 교습비는 40불씩이나 하니 상당히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팁 문화가 발달한 뉴욕은 식당에 가서 식사하는 것도 겁이 나고 팁과 세금만 아니라면 자주 식당을 이용할 수 있을 거 같으나 현실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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