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에 크리스티 전시회, 드뷔시 라벨 곡 감상하고

by 김지수

10월 27일 일요일


가을비가 내린 가을날 아침 창가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예뻤다. 비가 내리면 세상의 슬픔이 뚝뚝 떨어질 거라 제멋대로 상상도 한다. 커피를 끓여마시고 책을 읽다 브런치를 먹고 생각에 잠기며 외출을 할지 말지 갈등에 사로잡혔다. 집에서 듣는 빗소리는 무척 예쁜데 갈수록 바람이 거세어져갔다. 비바람 속에 외출을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혼동스러웠다.


이틀 연속 카네기 홀에서 뮌헨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자정 가까운 무렵에 집에 돌아와 몸의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사실 카네기 홀에서 이틀 동안 공연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밤늦게 공연을 볼 때는 맨해튼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런다고 비싼 숙박비 내고 맨해튼 호텔에 머물 수도 없다. 첫날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보고 싶은 마음에 다음날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싶은 마음에 피곤함에도 이틀 연속 카네기 홀에 갔지만 내 몸에 피로는 쌓여 있었다.


링컨 센터 부근에 있는 교회에서 파가니니 공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연주가 오후 3시에 열려 갈지 말지 고민 고민하다 크리스티 경매장 웹사이트 확인하니 하필 일요일 오후 5시에 끝난다고. 월요일 아침 10시에 경매에 들어가는 작품들 전시회를 일요일까지만 볼 수 있다는 것을 늦게 확인했다. 소더비 경매장 전시회도 놓쳤다.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플러싱에서 교통 시간이 꽤 많이 걸리니 특히 날씨가 안 좋은 날은 피로도가 몇 배로 확산하니 고민하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에 이끌려 샤워를 하고 외출을 했다. 일요일 오후 시내버스는 자주 운행하지 않고 터벅터벅 걸으며 비에 젖은 낙엽들을 보며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얼마 후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에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지하철역 근처에 내렸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질 뿐 아니라 비바람도 거세어 우산이 펴지지도 않아 당황스러운 순간. 거센 비바람이 쉼 없이 불고 하필 주말 7호선은 정상 운행도 안 하니 백배 정도 불편하다. 비라도 내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111가 지하철역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말할 것도 없이 지하철보다 백만 배 복잡. 겨우 탑승했는데 111가 지하철역까지 집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려 몸은 거의 죽어갔다. 물론 빈자리는 없고 괜히 외출을 했나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 그런다고 폭풍우 속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도 참 고민스럽고. 그럼 결국 폭풍우만 맞고 집에 돌아갈 것 아닌가. 거리에 시간만 뿌리고 나의 외출 목적은 달성하지도 못하고 고통만 받고 집에 돌아가는 우스꽝스러운 사태가 발생하니 꾹 참고 참았다. 정말 인내심이 필요했다. 지옥 같은 날씨이지만 마음은 평화롭게 다스려야지.


록펠러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려면 익스프레스 F 트레인이 좋을 거 같아 74 브로드웨이 지하철역에서 내려 천 개의 계단을 내려가 기다렸는데 주말 익스프레스가 아니라 로컬로 운행한다고. 어쩔 수 없이 로컬 지하철에 탑승했는데 잠시 후 7호선 지하철에서 얼마 전에 만난 에콰도르 출신 거리 음악가를 만났다. 전에 구두 수선공을 하다 올해부터 지하철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남자. 일찍 에콰도르에서 결혼하고 미국에 이민 와 이혼하게 되었다는 증년 남자의 표정은 슬펐다. 그가 낭만적인 노래를 부른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낯선 노래였지만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였다. 맨해튼 가는 지하철이 루스벨트 아일랜드를 거치자 전에 카네기 홀에서 만난 할머니도 생각났다. 러시아 출신 할머니는 서부에서 공부한 아들 권유로 이민을 왔다고. 루스벨트 아일랜드는 카네기 홀과 가까워 좋다고. 지하철을 타면 약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얼마나 좋을까.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 플러싱에서 맨해튼까지 거의 2시간 가깝게 걸렸지만 마침내 록펠러 센터에 도착했다. 장미향 가득한 크리스티 경매장은 얼마나 딴 세상인지. 그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인가. 밖은 비 폭풍에 난리인데 갤러리 안은 천국 같았다. 작품을 구매할 듯으로 보이는 근사한 복장을 입은 커플이 직원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어떤 커플은 두 개의 작품을 손에 들고 얼굴에 장밋빛 미소를 지었다.


요즘 난 작품 가격도 안 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는지 없는지 슬쩍 전시회를 보곤 한다. 크리스티 갤러리 카페에서 향기 좋은 카푸치노와 라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할 때는 맛있는 비스코티 먹으며 커피 마시며 가죽 소파에 앉아 잠시 휴식도 하고 다시 갤러리에서 그림을 감상하곤 했는데 전과 달리 짧은 시간 안에 갤러리를 둘러보다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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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앙드레 지드 작가 초상화
IMG_1661.jpg?type=w966 크리스티 경매장 갤러리에서



조명도 예쁘고 벽에 걸린 그림을 담은 액자들도 한결같이 예쁘다. 전시회를 위해 꽤 많은 정성을 들였을 거라 짐작했다. 일요일 오후 갤러리는 조용한 분위기 꼭 작품을 구매할 듯한 손님들이 있었다. 여기저기 갤러리를 둘러보고 앙드레 지드 초상화도 보고 11월 만추 풍경도 보고 프랑스 노르망디 풍경도 보고 인도 풍경도 보면서 내 마음은 여행을 떠났다. 그림을 보면서 세계 여행을 하니 얼마나 좋은가. 멋진 프렌치 가구도 보고 예쁜 촛대도 보면서 영화 같은 갤러리를 빠져나왔다.


크리스티 경매장 전시회 보면서 마음도 풍성해졌다. 멋진 갤러리에서 산책하면 행복이 밀려와. 귀족들 돈잔치 하는 곳이지만 세상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작품 보면서 여행도 떠난다. 베니스 담은 풍경 보면 베니스 여행 간 추억도 생각나고. 곤돌라에서 아코디언 켠 남자는 지금도 베니스에서 아코디언을 켤까. 폭풍 속에 안 가려다 방문했는데 천국에서 지낸 신선이 된 기분이었지. 두 가지 목적 가운데 한 가지는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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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 이태리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violinist Kevin Zhu


이태리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violinist Kevin Zhu(2018) 공연을 보러 어퍼 웨스트사이드로 가야 하는데 크리스티 경매장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렸는데 오래도록 오지 않아 포기하고 할 수 없이 타임 스퀘어 역에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복잡하고 비도 내린데 하필 평소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역 출입구는 막아져 다른 출구를 찾았다. 비는 오는데 왜 난리통인지. 타임 스퀘어 역에서 익스프레스 지하철을 타고 72가에 내려 공연을 보러 갔다. 72가 지하철 역 근처 가로수는 노랗게 물들어 예뻤다.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 72 지하철역 부근



폭풍우 속에 망설이다 방문했는데 라벨과 드뷔시 곡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황홀한 순간이었다. 맨해튼 교회에서 열리는 무료 공연 수준도 높고 좋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뿐 아니라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 연주도 정말 좋았다. 첼리스트는 내가 샤갈이라 별명을 지은 줄리아드 첼로 교수님 제자였다. 세 명의 음악가 모두 얼굴에 장밋빛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만족했다는 상징이다. 카네기 홀에서 명성 높은 음악가 공연만 좋은 게 아니다. 작은 교회에서 열린 공연도 좋다. 멋진 공연도 보고 음악가의 얼굴에 핀 장밋빛 미소도 보아서 더 좋았다. 정말 멋진 선택이었다. 행복한 일요일 오후였다. 폭풍우 속에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공연을 감상후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역까지 가고 플러싱에 가는 7호선에 탑승. 주말 7호선이 111가 역까지 운행하니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플러싱 지하철역에 도착. 다시 집에 가는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플러싱 메인스트리트까지 지하철이 운행하지 않을 때는 정말 피곤하니 맨해튼 외출이 겁난다. 험상궂은 날씨라 안 가려다 갔는데 수 차례 환승하고 환승하는 장소까지 꽤 많이 걷기도 했지만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늦은 오후 폭풍우가 그쳤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칠 거 같지 않던 폭풍우가 그쳐 맑은 가을 하늘이 보였다. 쉼 없이 부는 우리 집 폭풍우도 그치면 좋겠다. 폭풍우 그치면 무지개가 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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