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코스_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_카네기 홀

영화 같은 하루가 지나가네.

by 김지수

10월 26일 토요일


토요일 저녁도 카네기 홀에서 뮌헨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다. 이틀 공연 모두 매진이었다. 뮌헨 하면 전혜린, 백남준, 릴케가 생각난다. 그들이 살던 뮌헨과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대학시절 전혜린의 책을 무척 사랑했다. 뮌헨대 인문대학교 동양 최초의 유학생이었다고 하니 놀랍지. 1950년대 유학생이니 놀랍다. 그때 난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어. 장미를 사랑한 릴케의 작품 <말테의 수기>도 좋아했다. 릴케가 파리에 살면서 고독과 절망을 느끼며 집필한 작품이라고. 릴케가 묘사한 파리도 암울하다. 파리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몰려오는데 사람들이 죽을 거 같다는 내용. 그가 파리로 건너가 로댕의 비서로 지냈던 시절을 리서치한 내용의 책도 출판되었는데 자꾸 미루다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다. 아주 오래전 독일 여행도 갔는데 왜 뮌헨은 가지 않았지.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드레스덴, 프랑크푸르트 등 꽤 많은 도시를 방문했는데. 프랑크 푸르트에서 괴테 생가도 방문 안 한 것도 큰 실수다. 다시 독일에 여행 가야지 하는데 세월만 흘러간다.


아들과 내가 사랑하는 그리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뮌헨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를 하니 티켓을 구입했다. 음악은 정말 좋다. 음악을 듣노라면 세상의 고통이 사라진다. 뮌헨 오케스트라가 탑에 속하고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역시 명성 높은 지휘자라서 나의 기대치가 높아서 금요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과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연주가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해 단원들이 보유한 악기 음색은 좋더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역시 마찬가지다. 단원들 악기를 조율할 때 악기 음색이 다르다. 훌륭한 악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치유의 힘이 있는 듯 느껴진다.


카바코스 바이올린 마스터 클래스를 맨해튼 음대와 줄리아드 음대에서 몇 차례 봤다. 행운이었지. 뉴욕이라서 특별한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기회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누가 내게 마스터 클래스에 대해 알려주겠어. 학교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알아봐야지. 무료 공개하면 찾아간다.



IMG_1592.jpg?type=w966 사진 중앙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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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오케스트라_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자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가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에 속하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어찌 연주할지 궁금했다. 아들과 내가 무척 사랑하는 바이올린 협주곡. 현존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어. 바이올린 곡 기교가 무척 난해한 곡이라 카바코스도 연주가 어려운 눈치였지만 만족스러운 연주였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도 멋졌다. 특히 바이올린 악장과 플루리스트 연주가 참 좋았다. 가끔은 워킹 리허설 같기도 했지만 카네기 홀에서 이틀 동안 뮌헨 오케스트라 단원이 가장 재밌게 연주하는 곡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처럼 느껴졌다. 우리 옆자리에 7살도 채 안 되어 보인 아주 어린 공주님 두 명이 왔는데 금방 잠들어버릴 줄 알았는데 오랫동안 연주회를 보니 놀랐다. 평소 클래식 음악 공연 보러 온 어린아이 손님은 드물다. 아들은 어쩌면 유럽에서 온 여행객 가족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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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홀 공연을 보러 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 이야기도 하니 기뻤다.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여행 떠난 기분이 든다. 벨기에서 온 이민 온 할머니를 만났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결혼 후 자메이카에서 2년 살다 유엔 초대로 뉴욕에 오게 되었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영화 같았다. 할머니는 운이 아주 좋으셨다고. 70년대 뉴욕에 오셨는데 당시 뉴욕이 파산 위기에 처해 맨해튼 아파트가 텅텅 비어 가고 렌트비가 아주 저렴해 세입자에게는 아주 유리한 조건이었다고. 만약 그때 아파트를 구입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거란 이야기였다. 링컨 센터 근처에 살고 카네기 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사는데 당시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 72가 근처에 마약 상인도 많아서 상당히 위험했고 타임 스퀘어 마찬가지로 위험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1 베드룸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70년대 오페라 러시 티켓이 2.87불이었다고 하니 재밌다. 자주 오페라도 보러 가고 카네기 홀에서 공연도 보았다는 할머니.


벨기에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인접지역이라 자전거를 타고 다른 나라에 여행 갔다고 하니 정말 영화 같다. 70년대는 신용 카드도 없고 차도 없고 아이폰도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세상이 얼마나 변하고 있나 생각하게 한다. 따님 한 분이 홍콩에서 사는데 홍콩 역시 다운타운 아파트 렌트비가 너무 비싸 교외에서 산다고. 따님은 결혼을 했고 부부 수의사라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하셨다.


나도 70년대 이민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 상황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진다. 좋은 시절 이민 온 사람은 운이 얼마나 좋은가.


몇 년 전만 해도 시니어 티켓도 쉽게 구해서 오페라를 감상했는데 요즘은 러시 티켓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처럼 어려워졌고 안나 렙트레코 같은 인기 많은 오페라 가수가 출연하면 러시 티켓 가격도 25불이 아니라 더 비싸다고 하셨다.


최근 오페라 러시 티켓을 사려고 하지 않아서 내게는 새로운 뉴스였다. 오래전 메트에서 안드레아 보첼리 러시 티켓 사러 갔는데 난 25불 주고 구입하려고 했는데 그때 보첼리 티켓이 훨씬 더 비쌌는데 이미 카드값이 지불된 거라 어쩔 수 없이 그냥 사서 봤는데 기대와 달리 보첼리 공연도 형편없어 실망했다. 어느 날 운명처럼 장님이 되어버린 안드레아 보첼리 공연을 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했지만 가끔 상상이 더 좋을 때가 있다. 메트에서 본 가장 실망스러운 공연 가운데 하나가 안드레아 보첼리 공연이었다. 티켓이라도 저렴했더라면 속이 덜 상할 텐데 너무너무 비쌌다. 모르고 구입했지. 그렇게 형편없을 줄 알았다면 다른 오페라 몇 편 감상할 텐데 실수였다. 잘 모르니 실수를 했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도 만났다. 매네스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하는 남학생은 퀸즈 잭슨하이츠 아주 큰 주택에서 15명이 함께 산다고 하니 놀랍다. 잭스 하이츠는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한 동네다. 아주 오래전 지하철을 타고 방문했던 기억도 난다. 젊은 피아니스트는 중국에서 만든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어서 얼마냐고 물으니 400불이라고. 참 저렴하네. 인도와 미국과 관계도 안 좋고, 러시아와 미국과 관계도 상당히 안 좋다고. 미국과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알았지만 인도와 러시아 소식은 잘 모르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로부터 듣는 뉴스는 언제나 흥미롭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기 전 오랜만에 5번가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갔다. 잠시 휴식하러 갔는데 프랑스에서 온 가족 여행객을 만났다. 파리에서 약 22마일 떨어진 시골에 사는 부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뉴욕에 여행 왔는데 아들이 뉴욕이 사랑스럽다고 했다. 자유의 여신상, 엘리스 아일랜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등을 보았고 뉴욕에서 1주일 머문데 호텔 체류비용도 너무 비싸고 모든 게 다 비싸다고. 휴대폰도 없이 종일 맨해튼을 걷는다고 하니 놀랐다. 그동안 맨해튼에서 만난 여행객 가운데 휴대폰 없는 분은 처음이었다. 휴대폰이 없겠냐만 아마도 스마트폰 로밍을 하지 않았나 보다. 부인이 음악가라고 하니 저녁 6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무료 공연이 열리니 시간이 되면 방문하라고 했다. 토요일 넉넉한 시간이 있고 음악을 사랑한 분이라면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공연을 보면 좋은 계절이다.



맨해튼 5번가 성 패트릭 성당 앞

맨해튼 미드타운 가로수도 노랗게 노랗게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시월. 성 패트릭 성당 앞에 멋진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부케를 들고 있는 멋진 드레스 입은 사람들 보니 아마도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를 위한 차가 아닐까 짐작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집필한 프란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결혼식을 올렸던 성당. 가난한 작가랑 결혼하지 않겠다는 젤다는 피츠제럴드가 <낙원의 이쪽, 1919> 소설을 발표해 성공을 거두자 그제야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을 뉴욕에 와서 책에서 읽었다.


저녁 6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예비학교 패컬티 바이올린 공연이 열려서 방문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감상하고 카네기 홀에 가려고 링컨 센터 지하철역에 갔는데 어린 딸을 데리고 있는 한인 학부형이 인사를 해서 놀랐다. 처음 보는 날 보고 혹시 브런치 운영하는 사람 아닌가 하고 물으니 얼마나 놀라워. 화장기 없는 중년 여자를 보고 인사를 하니 어색하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타임 스퀘어 역에서 플러싱 가려고 지하철에 탑승했는데 블로그 운영한 사람 아니냐고 물어서 그때도 놀랐다. 오늘 만난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 하프를 공부하는 유니스 박 어머님이 브런치 통해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씀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버지니아에서 뉴욕까지 차로 4시간 걸린다고 하셨다. 주말마다 예비학교에 공부하는 따님을 데리고 뉴욕에 오시니 고생이 많겠다. 우리 가족도 뉴욕에 올 때 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왔더라면 뉴욕 생활이 덜 힘들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하나씩 필요한 정보를 찾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지하철역에서 뵈어서 카네기 홀에 서둘러 가느라 당황스러워 정중하게 작별 인사도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날 어찌 알아봤는지 궁금하다. 브런치에 내 사진을 올린 적이 없어서 놀란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기 전에도 미술 비평가를 만나 악수를 했다. 근처 아파트에 사는 분 같은데 무슨 인연인가 몰라. 자주 만나네. 영화 같은 하루가 지나가네. 아들과 내가 사랑하는 카바코스 바이올린 연주 감상하고, 벨기에에서 이민 온 할머니 이야기 듣고, 중국 유학생 소식도 듣고,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도 만나고, 줄리아드 예비학교 학부형도 만나고, 미술 평론가도 만나니 하루가 마치 영화와 소설 같아. 매일매일 기쁨과 행복 가득한 하루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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