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사랑에 빠졌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란 것도 모르고 왔는데 뉴욕은 세계 미술 중심지였다. 얼마나 많은 뮤지엄과 미술관과 갤러리가 있는지 몰라. 매일 눈뜨면 새로운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어서 그림 애호가에게는 멋진 선물이다. 역사가 무척 짧은 뉴욕에 메트 뮤지엄을 비롯 전시회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정말 많아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뉴요커가 받는 문화 혜택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매년 6천만 명 이상의 여행객이 방문하는 뉴욕은 세계적인 여행지. 메트 뮤지엄(5번가 뮤지엄 마일 위치)은 여행객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에 속한다. 그래서 늘 복잡하고 소란하다. 특히 연말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방문객들이 너무 많아 오래오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언젠가 딸이 뉴욕에 와서 연말 메트에 갔는데 줄이 만리장성처럼 길어서 포기했다. 연말 메트 크리스마스트리도 참 예쁘다.
뉴요커들 미술 사랑도 특별하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미술품을 사랑하는 뉴요커들을 자주 본다. 휠체어를 타고 오는 분도 많아 더 놀라곤 한다. 또, 메트에 가면 명화를 보고 모사를 하는 분들도 자주 보며 프랑스 파리 루브르 뮤지엄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을 상상해보았다.
주말 금요일과 토요일은 밤 9시까지 문을 열고 방문자가 정말 많아. 2층 발코니 바에서는 공연도 하고 칵테일과 와인 등을 마실 수 있고 카페테리아도 좋다. 또, 한시적으로 여는 메트 루프 가든에 올라가면 특별전도 보고 뉴욕 전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니 정말 좋다. 바에서 음료도 사 먹을 수 있다. 날씨 좋은 날 환상적인 뉴욕의 정경을 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메트에서 열리는 특별전이 참 좋다. 존 싱어 사전트 특별전, 로댕 특별전, 미켈란젤로 특별전, 어빙 펜 특별전, 데이비드 호크니 특별전 등이 열렸다.
내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수녀님이 경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학교 매점에서 그림엽서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 용돈이 생기면 예쁜 그림엽서를 구입하곤 했다. 모나리자, 르노와르, 반 고흐, 모네, 세잔 등 유럽 화가들 작품이 많았다. 미술 수업도 좋아했고 당시 폴 세잔은 사과 그림으로 유명하다는 것, 한국에 낙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유명하다는 것,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 화가 등에 대해 들었다. 낙서도 그림이 된다는 것은 특별했다. 처음으로 메트에 방문해서도 2층 갤러리에서 유럽 인상파 화가 작품부터 먼저 관람했다. 나중 차차 미국 미술에도 눈을 떴다.
메트에 미국 미술을 전시하는 미국관(American Wing)과 이집트 미술관 덴두르 사원(Temple of Dendur)이 인기가 많으며 이집트와 로마와 아프리카(1층), 19세기 유럽 회화와 조작(2층), 12-18세기 유럽 회화(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2층), 아시아 미술 (2층) 등이 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후기 인상파 미술은 2층에 있다. 유명 작품으로 <렘브란트의 자화상>, <고흐의 자화상>, <고흐의 사이프러스>, 피카소의 <거트루드스탸인 초상화>, 앵그르의 <브로글리 공주 초상화>, 베르미어의 <물주전자를 든 여인>,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 X>, 잭슨 폴락의 <가을 리듬>과 로댕의 조각품 등이 있다.
메트 특별 의상전도 멋지다. 세계적인 디자이어의 멋진 예술품을 뮤지엄에서 만날 수 있어서 황홀하다. 메트에서 특별 공연도 열리나 티켓이 저렴하지 않아서 한 번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뮤지엄 문을 닫고 줄리아드 학생들과 뉴욕 필하모닉 단원이 함께 준비한 공연을 메트 뮤지엄에서 페이스북으로 볼 수 있었다.
나와 메트와 인연은 뉴욕에 와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어느 날 가슴 설레며 세계 4대 미술관에 속하는 방대한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메트)에 방문했는데 입장료가 너무 비싸 깜짝 놀랐다. 아마도 그때도 기부금을 내고 입장할 수 있었는데 난 모르고 방문했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무렵이라 학생증이 있는데 그만 실수로 가져가지 않아서 성인 요금을 내니 비싸단 생각이 앞섰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늘 지출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비싼 입장료가 무서워 그 후로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았다.
뉴욕시로 이사 온 후 어느 날 뉴욕에서 열리는 뮤지엄 마일 축제에 갔다. 매년 6월에 열리는 그 축제는 무료다.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 뮤지엄 마일에 있는 메트, 구겐하임 뮤지엄, 뉴욕 시립 미술관, 쿠퍼 휴이트 국립 미술관, 유대인 미술관, 누 갤러리 등이 참가하는데 그날 구겐하임 뮤지엄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샘플도 무료로 주니 맛있게 먹으며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내 옆에 서 있던 분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하니 웃었다. 서부에서 지내다 뉴욕으로 옮겨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처음으로 뮤지엄 마일 축제 보러 와서 전시회도 보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다양한 이벤트를 보게 되니 너무나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꽤 많은 뮤지엄과 미술관이 참가하는 축제이나 한정된 시간에 모든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건축물이 무척 예쁜 구겐하임 미술관과 메트를 보기로 했다. 얼른 구겐하임 전시회를 보고 메트에 달려가니 기다리는 방문객들이 아주 많아서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려는데 제복을 입은 메트 직원이 항상 기부금 입장이라고 하니 놀라고 말았다. 그동안 입장료 비싸다고 자주 방문하지 않았던 자신이 너무 초라해졌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난 메트가 기부금을 내고 입장하는 것을 몰랐다. 두 번째 방문 때 기부금 입장을 알고 그 후로 가끔씩 찾아가곤 했다.
그런데 메트 정책이 변했다. 2018년 3월 1일부터 뉴욕 여행객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뉴욕 주민과 뉴저지, 코네티컷에 사는 학생들은 기부금을 내고 입장할 수 있다(거주 증명서와 학생증 제출 요구).
작년 메트 뮤지엄 회원권을 구입했다. 자주 방문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슬프게도 마음처럼 자주 방문하지 않았다. 게으름을 반성하고 새해가 되니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올해는 최소 1주일에 한 번 정도 방문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사건이 터져 뮤지엄 문을 닫았다. 왜 삶은 항상 뜻대로 되지 않은가 몰라. 지난 3월 초 서부에서 지내는 딸이 뉴욕에 왔는데 코로가 위기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우린 뮤지엄 문을 닫기 전날 방문했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세상이 흉흉하다."는 표현이 요즘처럼 실감된 때가 언제 있었던가. 세상은 어지럽고 복잡하니 뮤지엄이 더 그립다. 좋은 그림 보며 위로를 받곤 했는데 언제 다시 문을 여는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내가 세운 올해 계획도 서서히 물거품으로 변해가니 슬프다.
* 코로나로 한동안 문을 닫았던 메트 뮤지엄이 8월 29일부터 일반인에게 다시 오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