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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Jun 20. 2020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김치찌개


사진: The Spruce Eats / Ulyana Verbytska


사계절 식탁에 올라 먹는 즐거움을 주는 김치찌개의 맛을 어찌 잊으리. 요리도 간단하고 오래 걸리지 않아서 일 년 내내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는 요리다. 냄비에 잘 숙성된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어 볶고 고춧가루와 양파와 마늘즙과 물을 넣고 끓이다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으면 네모 모양으로 썰어진 두부와 파를 넣어 완성되면 밥과 함께 먹는다. 식성에 따라 싱싱한 조개와 새우 몇 마리를 추가로 넣어 끓여도 맛이 좋다. 해산물을 넣으면 국물 맛이 시원하다. 여러 가지 반찬이 필요도 없고 김치찌개만 있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한국인에게 어릴 적부터 먹은 한식보다 더 좋은 요리는 없다. 속이 편하고 든든해서 좋다. 가끔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매운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얼큰한 찌개요리를 한다. 뜨겁고 매운 찌개를 먹으면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솟는다. 


김치찌개는 우리 집 식탁에 자주 오른 메뉴이기도 하지만 아들과 특별한 추억이 있는 음식이다.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매주 토요일 수업을 받았는데 참 쉽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맨해튼에 살지 않고 롱아일랜드에서 살았기 때문에 교통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무렵 우리 가족이 롱아일랜드에 살고 있어서 이른 아침 새벽에 차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면 아들은 기차를 타고 맨해튼 펜 스테이션 역에 내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음대에 찾아갔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데 2 시간 정도 걸려 고생도 많이 했다. 고등학교 과정 수업이 상당히 부담인데도 매주 토요일마다 종일 수업을 받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곤 했다.


아들은 무척 힘든 시기인데 거꾸로 내게는 참 좋았다. 매일 아들이 집에서 레슨 준비를 위해 연습하니 라이브 음악을 듣는 즐거움도 컸다. 중고교 시절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과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레슨을 받을 때 매일 라이브로 들으며 행복했다.




악기 레슨이 쉽지는 않다. 어릴 적부터 재능이 많다고 해서 특별 레슨을 받게 되었고 뉴욕에 와서 음악 특별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삶은 힘들고 어려워 슬픔도 많지만 기쁨도 있다. 학교에서 다양한 친구들도 만나고 훌륭한 교수님과도 인연이 되니 기쁨도 있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긴긴 시간 연습을 하고 곡이 완성되면 특별 공연이 열린다. 매주 토요일 예비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한 학기 두 번 정도 오케스트라 특별 공연이 열렸다. 그 무렵 나도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무렵이라 시간에 쫓기며 힘들었지만 아들이 소속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면 아무리 바빠도 뒤로 젖혀두고 달려갔다. 아들이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수업을 받으면서 힘들었지만 연주할 때는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히 베토벤 7번 교향곡을 좋아했다. 그때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던 학생들을 잊을 수 없다. 고등학생이 그토록 감명 깊게 연주하는지 그때까지 몰랐다.




아들 공연을 보러 갈 때 우리 가족이 살던 롱아일랜드에서 맨해튼까지 운전하고 갈 수도 있는데 복잡하고 지리도 잘 몰라 혹시나 사고가 날까 봐 염려도 되고 주차비가 너무 비싸니 난 늘 플러싱 주거지역에 주차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그러니까 교통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다. 


대개 공연은 밤늦게 막을 내린다. 공연이 끝나고 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수님을 위해 준비한 다과회에서 맛있는 과일 샐러드와 빵과 와인 등을 먹는다. 하지만 저녁 식사로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맨해튼에 살지 않고 롱아일랜드까지 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에 돌아와서 밤늦은 시각 한식당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때 늘 우리가 주문하던 메뉴가 김치찌개다. 밤늦은 시각이라 손님도 드물어 조용한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면 기운이 솟았다.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가면 새벽 1시 즈음이 되었다. 돌아보면 참 힘들었던 시기다. 뉴욕은 식사비가 저렴하지 않고 더구나 팁과 세금을 줘야 하니 늘 부담스러워 평소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특별 공연이 열릴 때면 늘 김치찌개를 먹으러 가곤 했다. 종일 힘든 수업받고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고 밤늦게 먹은 찌개는 아들에게 행복과 포만감을 주었다. 


김치찌개 하면 늘 아들 고등학교 시절 추억과 특별 공연이 떠오른다. 아들이 토요일은 음악 수업받으러 예비학교에 일요일은 발런티어를 하러 양로원에 갔던 시절이다. 토요일 이론 수업과 오케스트라 수업을 마치면 개인 레슨도 받으니 미리 준비할 분량도 많았다. 학교 수업도 끙끙할 정도로 분량도 많고 힘든데 악기 레슨은 따로 준비해야 하고 동시 제리코 고등학교에서 트랙반에 가입해서 늘 바빴다.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 공연을 보면서 처음으로 뉴욕 문화가 얼마나 특별한지 깨달았다. 재능 많은 학생들의 연주가 천상의 선율 같다. 그때 알았다. 자녀가 예비학교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누구라도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음악을 좋아하는 분은 무료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은 뉴욕 문화가 멋지다. 


그때 먹은 구수한 김치찌개의 맛을 잊을 수 없다. 기운을 솟게 하고 포만감과 행복을 가득 안겨 주었으니까. 얼큰한 김치찌개가 간절하다. 냉장고에 든 김치가 잘 숙성되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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