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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22. 2020

메기의 추억

사진 출처:중앙일보/손중헌 원조 논 메기탕 


하늘나라로 떠나신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오래전 한국 방문 시 친정 부모님과 아들과 함께 메기매운탕을 먹으러 갔는데 그때가 마지막이란 것을 정말 몰랐다. 무더운 여름날 아들이 메기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하니 친정 부모님께서 함께 식당에 가자고 하셨다. 뜨거운 여름날 맵디 매운 매운탕을 먹으며 아들은 너무나 맛이 좋아서 밥 한 공기를 더 달라고 요청했다. 


메기 매운탕은 뉴욕에서 귀하다. 한국과 달리 팁과 세금을 줘야 하고 식사비가 비싸서 자주 한식당을 이용하기 어렵다. 또, 메기 매운탕 잘하는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니 가끔씩 아들은 메기 매운탕을 먹고 싶다고 하나 뉴욕에서 먹은 적은 없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음식이 되어버린 메기 매운탕.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어린 두 자녀 교육을 위해 선택한 뉴욕에 와서 살면서 공부하다 보니 친정부모님을 뉴욕에 초대하지 못했다. 살다 보면 가슴 아픈 일이 참 많지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슬픈 일이 되었다. 만약 미리 친정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날 줄 알았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초대를 했을 텐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살던 지역은 뉴욕 롱아일랜드. 참 아름다운 곳이지만 차 없이 지내기 힘든 곳인데 처음에는 차도 없으니 고생이 무척 많았다. 또 집에 세탁기가 없으니 빨래방에 가서 세탁을 했다. 차가 없으니 무거운 가방 들고 세탁하러 다녀오면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쓰러지고 만다. 낯선 땅에서 대학원 과정 공부를 시작하니 하루하루가 눈물로 시작하고 눈물로 막을 내리며 반복했다. 매일같이 해가 뜨고 지는데 나의 슬픔은 멈추지 않았다. 괴물 같은 낯선 언어로 공부하며 지내는 낯선 이방인의 삶은 고독 자체였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단 한 명의 학생도 없는 곳에서 살아남기는 얼마나 힘들었던가. 말 한마디 나눌 친구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이 힘든 과정을 마쳤다. 눈만 뜨면 전공 서적과 힘든 투쟁을 하고 살림을 하면서 두 자녀를 학교에 픽업하곤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독과 춤을 추며 뉴욕 생활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 


수년 전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서 아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친정아버지가 위독하셔 대학 병원으로 옮기셨지만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셨다는 비보였다. 믿어지지 않았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친정아버지께 더 잘해드릴 텐데 늘 내 입장만 생각했다.


한국에 방문하면 미장원에도 가고친구들도 만나고치과병원에도 가야 하니 무척 바쁘기만 했다어린  자녀 바이올린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법정 스님이 단골이던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10시경 집에 돌아갔는데 친정아버지가 너무 늦게 돌아왔다고 화를 내셨다이제는 내게 화를  아버지도  계신다그때가 마지막이란  알았다면 아버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내가 한국에 방문할 무렵에도 아버지는 책을 집필하고 계셨다. 노안으로 컴퓨터로 작업하시며 내게 물어보셨는데 친절하게 설명을 해 드려야 했는데 돌아보면 안타까운 순간들이다. 


아버지와 보냈던 행복한 추억도 참 많다. 내가 아주 어릴  아버지와 함께 클레멘타인 노래도 불렀다중학교 시절에는 아버지가 세계 문학 전집을 사주셔 <백경> <폭풍의 언덕> <작은 아씨들등을 재밌게 읽었다아버지가 가꾼 정원에  과꽃맨드라미 달리아 장미꽃 등이  마음을 행복하게 했다아직도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노래가 들려오면 친정아버지 생각이 난다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는 퇴근길에 호떡을  오셨다한국이 무척 가난했던 시절이라 호떡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대학 시절에 아버지는 외국 여행을 가셔 나를 위해 윌슨 테니스 라켓을 사 오셨다. 돌아보면 정말로 귀한 선물이다. 해외여행 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아마 주위분에게 부탁을 하셔 어렵게 구입하셨나 짐작을 한다. 아버지가 외국 여행하며 교포들 삶을 보니 어렵고 힘들더라고 말씀하셨다. 외교관들도 참 어렵고 힘들게 살더라, 하시면서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먼 훗날 뉴욕에서 공부하고 살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안정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40대 중반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날 믿는 사람은 드물었는데 기어코 뉴욕에 오고 말았지만 새로운 세상은 그냥 저절로 열리지 않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맨해튼이 대학 시절 꿈꾸던 보물섬이란 것을 발견했다.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면 다양한 문화 행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 아무도 뉴욕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서 모르고 살다 늦게 늦게 알았다.


만약 아버지가 생존하시면 뉴욕에 초대해 아름다운 맨해튼을 보여 드리고 싶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파크에도 가고, 사랑하는 장미 정원에도 가고, 주황색 페리를 타고 하얀 갈매기 춤추는 허드슨 강 보며 스테이튼 아일랜드에도 방문하고, 브루클린 다리를 걷고,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사는 플러싱도 보여드리고 싶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고 멋진 옷도 사드리고 싶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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