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계절 유월에 내 생일이 있다. 아들이 엄마 생일날 무얼 할 거냐고 물으면 뉴욕 식물원 장미 정원에 방문하자고 말한다. 그래서 해마다 생일이 찾아오면 아들과 함께 브롱스에 있는 뉴욕 식물원 페기 록펠러 로즈 가든(Peggy Rockefeller Rose Garden)에 가곤 했다. 역사도 깊은 로즈 가든은 1918년 설계되어 1988년에 페기 록펠러 로즈가든이 완성되고 2006-07년 보수 공사를 해서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다. 백만 송이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산책하면 천국 같아서 세상의 기쁨이 모두 내게로 오는 듯하다.
로즈 가든에서 산책할 때는 장미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떠올린다. 대학 시절 내가 사랑한 시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릴케의 <인생> 시도 아름답다.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어릴 적 유월이 아름다운 계절인 줄도 모르고 비 많이 내리고 습도 높은 장마철이라 안 좋은 계절에 태어났다고 혼자서 불평을 했다. 가든 문화가 잘 발달된 뉴욕에 와서 유월이 아름다운 계절인 것을 알고 웃었다.
뉴욕 식물원 입장료는 $20-$30 사이라 저렴하지 않다. 뉴욕 물가가 비싸다. 그러니까 항상 지출에 신경을 쓴다. 저렴하게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것을 찾는다. 그래서 우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시간에 방문한다. 페기 록펠러 로즈 가든은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10시 전 뉴욕에 거주한 뉴요커들에게 무료로 오픈하고 입장 시 뉴욕 신분증을 요구한다.
장미 축제가 열리는 시기와 내 생일이 비슷한 시기에 있고 우린 주로 주말을 이용하니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다. 뉴욕 식물원을 찾아갈 때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2차례 이상 환승하고 다시 걸어야만 하니 아주 가볍지는 않지만 백만 송이 장미꽃 향기 맡으러 갈 때 기분은 하늘을 날 듯하다.
장미가 만개한 유월이 되면 인기 많은 뉴욕식물원 페기 록펠러 로즈 가든에 노인들도, 친구들도, 연인들도 찾아오고, 어린아이들도 소풍을 와서 함박웃음 지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또,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고 모델 같은 멋진 몸매의 아가씨가 사진 촬영을 한다. 장미꽃 향기 맡으며 카메라 렌즈에 담은 사람 표정도 행복하고 예쁜 장미꽃을 바라보는 노인들 표정도 행복이 넘친다. 멀리서 노인 친구들이 함께 방문해 단체 기념사진을 찍어 달라고 내게 부탁하면 기쁜 마음으로 사진을 담아준다. 그럼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수년 전 내 생일 즈음 아들과 함께 방문했는데 하필 그날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덕분에 로즈 가든에는 우리 둘 말고 아무도 없으니 마치 우리 개인 소유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비 오는 날 장미 정원에서 산책하는 것도 특별하다. 꽃 봉오리에 빗물이 맺혀 더 아름답기도 하다. 장미꽃 이름 가운데는 '생떽쥐베리 장미'도 있고, '소피 장미'도 있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드클리프 장미'도 있었다. 노란색, 분홍색, 주황색, 붉은색, 보라색 등 가지가지 색의 장미꽃 향연에 숨이 멎는다.
올해는 코로나로 뉴욕 식물원 페기 록펠러 로즈 가든에 방문할 수 없어서 슬펐다. 아들은 엄마에게 무얼 할 거냐고 물어서 이번에는 퀸즈 베이사이드에 있는 황금 연못에 가자고 말했다. 집에서 왕복 7마일 거리. 우린 차가 없으니 걸어서 간다. 땡볕 아래 오랜 시간을 걸으면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했다. 우릴 기다리는 예쁜 수련꽃도 보고 근처에 있는 푸른 바다도 바라보고 휴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프랑스 화가 모네의 수련꽃 작품이 부럽지 않은 황금 연못에 핀 수련꽃들.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대학을 졸업 후 딸은 보스턴 캠브리지에서 일하다 서부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 지역으로 옮겼다. 멀리서 지내니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시간이 허락되는 경우 내 생일날 딸이 뉴욕에 오면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다. 두 자녀와 함께 이스트 빌리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도 하고 그리니치 빌리지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며 행복한 추억을 쌓았다. 식사비는 딸이 내고 우린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맛 좋은 케이크도 항상 딸이 구입하니 감사한 마음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추억이 있다. 내 생일 즈음 열리는 경마 축제를 보러 시내버스를 타고 아들과 함께 방문했다. 차가 있으면 편리할 텐데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수차례 환승하니 불편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에 찾아간다. 경마 축제 입장료가 가장 저렴할 때 이용하곤 했고 내가 지불한 금액은 1인 $5. 수건도 무료로 준다. 그러니까 뉴욕 물가로서는 엄청 저렴하다.
경주마 이름이 해리포터에 나오는 '스네이프'라서 웃고, 매년 도박하러 경마 축제를 보러 온다는 은퇴한 할아버지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수들 몸매는 연예인 같아서 바람이 불면 날아갈 정도로 보인다. 하긴 경주마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려면 체중이 무거우면 안 될 거 같다.
매일 눈뜨면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축제를 구경하면 신난다. 잠시 생의 무거움을 먼지 털듯 훌훌 털어버린다. 경마 축제장은 영화 같아서 우리도 모르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도 하면서 웃는다.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간다.
40대 중반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어린 두 자녀랑 뉴욕에 와서 살게 되니 낯선 세상에 새로이 태어나니 끝없는 시련이 주어졌다. 비록 어렵고 복잡하고 힘든 환경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비싼 물가 뉴욕이라 늘 지출을 먼저 생각하고 돈 안 들이고 즐겁게 사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생일날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무료나 다름없이 뉴욕 최고의 축제를 즐겼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길을 찾아서 천천히 천천히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언제나 나의 모습을 잃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산다.
세계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축제가 쉼 없이 열리는 곳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뉴욕이 잠들어 버려 슬프다. 지금 뉴욕은 뉴욕이 아니다. 언제 아름다운 뉴욕이 깨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