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다. 당연 '뉴요커'란 단어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낯선 땅 뉴욕에 처음으로 발을 딛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맨해튼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낯선 곳의 문을 두드리며 뉴욕 문화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뉴요커들이 커피를 참 좋아하더라. 비단 뉴요커뿐만 아닌지 모른다. 요즘 카페 문화가 발달되었다.
수 십 년 전 나의 대학 시절 자판기에서 100원짜리 커피 뽑아 먹어도 무척 행복했다. 대학 시절 카페가 대학 근처에 있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고급 실내 인테리어가 되지도 않았고 다양한 커피도 즐길 수도 없었다. 그 후로 세월이 흐르고 한국에서도 블루 마운틴과 헤즐러 등의 커피가 보급되었다. 그 후로 세월이 흘러 두 자녀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간 빈 시간에 영어 회화 학원에 잠시 다녔는데 그 무렵 한국에서 2000원짜리 커피를 사 먹기 시작했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커피값에 놀랐지만 매일 커피 한 잔을 들고 수업에 들어오는 한의사 부인이 있었다. 영어 소설과 영어 신문을 무척 사랑하던 분. 나중에 들으니 그분은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해 영문학을 공부한다고 하더라. 당시는 우리 집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무렵이지만 2000원 커피는 내게는 결코 저렴하지 않아서 커피를 사 먹지 않았다. 무얼 하든 항상 가치를 생각했다. 커피 한잔에 2000원은 너무 비쌌다. 뉴욕에 와서 힘들게 살다 보니 지인들과 친구들 소식이 끊겨 버렸다.
무에서 시작한 삶이 안정하기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 삶이 눈물이더라. 밀레니엄을 맞을 무렵 드디어 경제적인 안정에 이르자 유럽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 처음으로 여행 갔는데 이탈리아에서 커피 한 잔 주문했는데 아주 작은 컵에 커피가 들었는데 얼마나 강하고 진하던지. 나중 생각하면 내가 처음으로 마신 에스프레소 커피였다. 에스프레소 커피가 뭔지도 모르고 마셨지.
그 후로 더 많은 세월이 흘러가 뉴욕에 왔다. 낯선 이방인의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삶이 얼마나 힘들던지 하루하루 눈물바다였지. 세월이 흘러 흘러가 어느 날부터 매일 맨해튼에 낡고 오래된 가방 들고 나들이를 하기 시작했다.
지구촌이 코로나 19와 전쟁을 하니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렸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 순간. 수많은 풍랑과 함께 세월을 보냈지만 유독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거 같은 코로나 19. 매일 맨해튼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문화 예술 문화를 향유했는데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버려 얼마나 슬픈지. 새삼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일상 하면 커피를 빼놓을 수 없고 뉴욕에서 커피에 대한 추억을 생각해 본다. 입시생 두 자녀를 뉴욕에서 혼자 양육하다 보니 늘 경제적인 문제가 앞서고 당연 생각 없이 지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자녀 교육비도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드니 참 힘들기만 했지.
혼자서 뉴욕에 유학 와서 맨해튼 카페를 순례하는 분도 있지만 우리 집 사정과는 너무나 다르고 언제나 난 내 방식대로 살았다. 평생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도 않고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두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마신 적이 없다.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리고 견뎌야 했는지. 삶은 기다림이더라.
아들이 맨해튼에서 공부할 무렵 학교 근처 카페에 들어가 보았는데 커피 한 잔 마셔볼까 했지만 벽에 붙여진 커피 가격 보고 놀라 발걸음을 돌렸다. 커피 한 잔 값이 5-6불 이상+ 세금. 참 비싸더라. 밀레니엄 세대는 나와 너무나 다르고 비싼 커피도 아무렇지 않게 마시지만 두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1불도 크다.
누가 내게 뉴욕에서 마신 커피 가운데 가장 맛이 좋은 커피가 뭐냐고 묻는다면 난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먹은 카푸치노와 5번가 트럼프 타워 빌딩 스타벅스에서 먹은 푸라푸치노 커피라고 하겠다. 내 생에 처음으로 푸라푸치노 커피를 딸이 보내준 공짜 쿠폰으로 마셨다. 그때 처음으로 트럼프 타워 빌딩에 들어갔다. 실내가 무척 화려하고 예쁘다. 트럼프 타워 빌딩에 상류층들이 많이 산다고 하더라. 세계적인 미술 경매장 크리스티 카페에서 주는 무료 커피도 정말 좋았는데 작년? 부턴가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가 사라졌다. 영화배우처럼 멋진 외모의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커피 맛이 정말 좋았다.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건네는 커피를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소더비 경매장에서도 아트 경매가 열리면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또 기억나는 맛 좋은 커피는 브루클린에서 마셨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소에서 근무할 무렵 브루클린 파크 슬로프 카페에서 일하는 젊은이가 초대해서 한 번 방문해 뉴요커가 사랑하는 커피를 마셔보았는데 커피 향도 좋고 부드러워 참 좋았지만 역시 커피 값은 저렴하지 않았다. 초대받았으니까 커피는 공짜로 마셨다. 그 젊은이는 나중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했는데 지금 졸업했나 모르겠다.
또 커피 하면 잊을 수 없는 뉴욕 북 카페. 소호에 있는 하우징 웍스 북 카페와 반스 앤 노블 북 카페를 무척 사랑했는데 요즘은 자주 가지 않는다. 북 카페에 가면 마음껏 읽고 싶은 책과 잡지를 읽을 수 있어서 좋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니까 좋다. 반스 앤 노블 북 카페는 스타벅스가 운영하지만 커피 값이 약간 더 비싸지만 책을 공짜로 읽으니까 아주 비싸다고 할 수도 없다. 뉴욕 북 카페는 뉴요커의 문화 센터가 아닌가. 하루 종일 북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있으니까.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연구소에서 일하다 뉴욕에 오면 함께 뉴요커가 사랑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딸 덕분에 비싼 카페에 가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지만 내게는 커피값은 여전히 비싸단 생각이 든다. 물론 소중한 추억을 쌓은 공간으로 남으니까 특별하지만. 돈 벌기는 무척 어렵지만 지출은 왜 그리 쉬워. 커피 한 잔 값이 6불이면 약 7800원. 정말 너무나 비싸구나.
맨해튼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보내주신 스타벅스 커피 쿠폰도 기억난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감사함으로 읽는다고 커피 쿠폰을 보내주셔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볼 때 자주 커피를 마시곤 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커피값이 무척 싸니까 수년 전 맨해튼 여기저기 낯선 곳을 거닐다 맥도널드에 가서 커피를 사 먹은 적도 있다. 세금 합해 1.1불이었는데 요즘 인상되어 1.3불 받는다.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거주했던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아주 역사 깊은 카페가 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카푸치노 커피를 판매했던 곳. 지금은 저 하늘나라로 먼 여행 떠난 작가 옴베르토 에코가 사랑하고 영화배우 알 파치노 및 예술가, 작가, 철학가들이 사랑했던 역사 깊은 Cafe Reggio. 영화 <대부>도 촬영한 곳이고 J.F. 케네디가 연설을 했던 곳이며 초록색 빈티지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지나치곤 했는데 가을비 내리는 날 처음으로 혼자 찾아가서 어두운 벽 장식 보며 카푸치노 마셨다. 대공황 전(1927년)에 오픈한 유서 깊은 곳이고 낡고 오래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음악을 들으며 랩톱으로 작업하는 분도 있고, 브런치 먹으며 대화를 나눈 사람도 있다. 나도 잠깐 카푸치노 향기에 가슴을 적시다 나왔다. 향긋한 커피가 죽여주게 맛이 좋아 기분이 좋았다. 진즉 갈 걸 그랬나. 맨해튼에서 마신 최고의 커피는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무료로 마신 카푸치노이고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Cafe Reggio 커피 맛도 좋다.
음악을 사랑하니까 자주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 가곤 했다. 가끔씩 종일 맨해튼을 돌다 공연을 보러 가면 피곤하면 커피 한 잔 사 먹었다. 줄리아드 학교는 작은 사이즈 커피가 약 2불. 보통 스타벅스보다 더 저렴하니 좋고 맨해튼 음대는 약 1.5불? 역시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다. 천재 학생들 공연을 무료로 보고 커피 한 잔 사 먹으니까 비싸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코로나 19로 나의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려 무척 그리운 뉴욕 맨해튼. 언제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운 공연! 그리운 갤러리! 그리운 커피! 그리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