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와 추억들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by 김지수

아주 오래전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와서 롱아일랜드 딕스 힐(Dix Hills)에 살 때 처음으로 월트 휘트만 몰(Walt Whitman Shops)에 가서 귀족 분위기 물씬 풍기는 반스 앤 노블 서점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실내 장식이 너무나 고급스럽고 커피 한 잔 마시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니까. 당시는 대학원에서 공부할 무렵이라 시간에 쫓겨 북카페에서 차분히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었다. 그 멋진 서점이 얼마 후 문을 닫고 그 후 쇼핑 매장?으로 변해서 슬펐다. 월트 휘트만 몰은 롱아일랜드 주민들이 사랑하는 쇼핑몰이고 처음으로 스바로(Sbarro) 피자를 맛있게 먹었던 곳. 한 푼도 아끼려는 상황이니 어쩌다 쇼핑몰에 가면 사 먹었다. 처음에는 지리도 모르고 차에 내비게이션이 없으니 찾아가기도 무척 도전이었다. 쇼핑 몰 근처에 시인 월트 휘트먼 생가가 있다고 하는데 어쩌다 놓치고 뉴욕시로 이사를 오고 말았다. 입시생 두 자녀와 함께 공부를 하던 무렵은 문화생활도 뒷전이었다. 지금 같으면 분명 휘트먼 생가에 찾아갔을 텐데 당시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뉴욕시 퀸즈 플러싱으로 이사 온 후 맨해튼 문화생활이 가능해졌다. 그러니까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였다. 플러싱은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면 맨해튼에 갈 수 있으니까 좋다. 롱아일랜드는 맨해튼과 더 멀고 운전하기 싫어하는 내게는 맨해튼은 머나먼 성이었다. 맨해튼에 반스 앤 노블 북 카페가 여러 곳이 있는데 처음에 내가 자주 방문한 곳은 유니언 스퀘어 지점이다. 퀸즈보로 플라자에서 환승하면 유니언 스퀘어 역에 도착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종일 책과 잡지를 마음껏 읽을 수 있는 북 카페 문화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뉴욕에 아는 사람도 드물고 특별한 경우 아니면 사람들과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으니까 늘 혼자 서점에 갔다. 뉴요커가 사랑하는 문화 공간이기에 인기가 많아서 늘 복잡하니 빈자리 잡기는 어렵기만 하고 가끔 자리 쟁탈전을 벌이기도 하고 일부 손님은 서서 오래오래 책을 읽는다.


19세기 서점이 오픈(1873년) 했으니 역사도 너무 깊어서 놀라고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난 할머니 이야기로는 이 서점이 10년 계약을 한다고. 1층에는 책과 선물 코너도 있고 2층은 어린이 장난감과 아동 도서가 있고 3층에 북 카페와 잡지 등 다양한 책이 있고 4층에는 예술 서적과 소설책 등이 진열되어 있다. 물가 비싼 맨해튼에 이리 아름다운 보물 같은 북카페가 있으니 난 좋기만 하다.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반스 앤 노블 북 카페가 그리워.



북카페 벽에는 유명한 작가들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파리에서 가난과 투쟁하다 일찍 세상을 뜬 조지 오웰도 있고 프란츠 카프카, 오스카 와일드, 마크 트웨인, 월트 휘트먼 등이 있다. 조지 오웰의 밑바닥 생활은 요즘 시대 상상도 어려울 정도로 고생 많았더라. 돈이 없어서 전당포 출입도 잦았던 그 작가의 어려운 삶도 이 북카페에서 읽었다(Down and Out in paris and Lodon/<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한국 번역본도 있구나). 왜 뉴욕 맨해튼 매디슨 스퀘어 가든 빌딩 공사장에서 일했던 <분노의 포도>를 집필한 존 스타인벡은 없는지 궁금했지. 공사장에서 힘든 육체노동하며 생활비 벌었단 이야기를 들은 것도 뉴욕에 와서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공사장에서 인부가 죽으니까 그만뒀다고 하더라. 힘든 생활을 하던 작가는 노벨상도 받았어. 뉴욕에 와서 가난하게 살다 죽은 에드가 앨런 포 초상화도 없다. 이상하다.


그곳에 가면 자주 만나는 중년 남자도 있는데 지금은 무얼 하고 계실까. 항상 랩탑을 가져와 작업을 하면서 뉴욕 타임스와 잡지와 책을 읽으셨다. 늘 모자를 쓰고 라아지 사이즈 커피를 주문하는 분. 자주 방문할 때 서로 아는 얼굴이지만 한 번도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무얼 하던 분이셨을까 늘 궁금했다. 또 거리 사진가도 자주 봤다. 근처에서 멋진 카메라 들고 맨해튼 풍경을 담는 흑인 할아버지. 돋보기로 책을 읽는 할아버지도 떠오른다.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먹으며 깨알 같은 책을 읽으니 내게는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원래는 음식을 가져와 먹으면 안 되는데 가난한 사람은 음식을 가져와 먹기도 한다. 다양한 연령층이 방문하는 유니언 스퀘어 반스 앤 노블 손님도 다양하다. 멀리 아이다호주에서 온 중년 여자도 만나 "거기는 감자로 유명한 곳 아닌가요?" 하니 웃으셨다. 마트에 가면 아이다호 감자 가격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자는 저렴한 편이고 영양가도 풍부하니 좋다.


나는 늘 돈과 시간 관리에 신경 쓴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니까. 경제적인 형편이 넉넉하면 북카페에서 간단히 식사도 할 수 있지만 늘 작은 사이즈 커피 한 잔만 주문해 마셨다. 자주 방문하면 바리스타들이 손님들 얼굴을 기억한다. 그런 내게도 참 친절한 바리스타 두 명도 있었다.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내밀던 두 명의 바리스타도 그립다. 한 명은 초록색으로 염색해 예쁘다고 하니 기분 좋아하더라.


북 카페에서 특별 이벤트가 열리면 가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에 올라가 구경하고,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허용되는 이벤트만 참가했다. 뉴욕 시민들의 책사랑을 느낄 수 있는 서점. 요리사와 정치가와 작가들도 만날 수 있는 곳. 아주 오래전 <뉴욕 3부작>을 집필한 작가 폴 오스터도 보았다. 가난하던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추리 소설을 썼다고 했던가. 할아버지 작가였다. 전 미국 연방은행장 Ben Bernanke (벤 버냉키)도 보고, 비치 보이스 록 그룹의 싱어송라이터 Mike Love (마이크 러브)도 보았다. 뉴욕 서점의 향기가 얼마나 특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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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집중이 안 되면 멋진 사진집 보며 여행을 떠나고 '뉴요커'와 '이코노미스트' 등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잡지도 읽고 가끔은 소설책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북 카페.

어릴 적부터 책을 사랑하던 내게는 보물 같은 서점에서 어느 날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잊을 수 없는 슬픈 날이다. 친정아버지가 위독해 대학 병원 중환자실로 옮기셨다고 연락이 왔다. 그날 아들과 함께 북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날지 몰랐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도저히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아들과 함께 서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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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날 처음으로 맨해튼에서 레스토랑에 방문해 식사를 했던가. 작가 오헨리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집필했던 피츠 태번(Pete's Tavern)에 방문해 런치 스페셜 시간이 약간 지나서 가장 저렴한 햄버거와 샐러드를 골라 주문했다. 이곳은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특히 런치 스페셜 시간을 이용하면 싸다.

그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보고 마음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쳤다. 삶이 너무나 짧고 허망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즐겁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도 강해졌다. 어쩌다 뉴욕에 어린 두 자녀 데리고 와서 죽도록 고생을 시키는지 미안했다. 형편이 어려우니까 절약하고 살지만 가끔 두 자녀랑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날. 그 후로 뉴욕 레스토랑 위크 축제가 열리면 방문해 스타 셰프들이 만든 요리도 먹었다.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에서 월수 금토 파머스 마켓이 열린다. 봄이 되면 꽃향기로 가득하니 구경도 하고 가끔 바게트도 사 먹었다. 뉴욕 유명한 셰프들이 장을 보기도 하지만 저렴하지 않아서 대개 눈을 감고 구경만 하고 어쩌다 바게트 한 개 구입하곤 했다. 수년 전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나 미네소타에서 온 중년 남자가 유니언 스퀘어 마켓이 너무 비싸다고 투덜투덜했다. 그분도 명성 높다고 하니까 구경했는데 가격이 저렴하지 않더라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뉴욕 맨해튼 물가는 비싸니 금지 구역이 참 많다.


uH7Yt8EZnL6XSUmi6noPm_8PBWs The National Arts Club/ 살바도르 달리전 2015


유니언 스퀘어 북카페 근처에서 가까운 The National Arts Club에 자주 방문해 전시회를 보곤 했다. 2015년 2월에 열린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전도 봤다. 뉴욕에서 유서 깊은 이곳은 마틴 스콜세지 영화 <순수의 시대 Stand in for the Beaufort Mansion- Age of Innocence> 외에 <크레이머 크레이머>, <퀴즈 쇼>, <가십 걸>, <맨해튼 살인 미스터리> 등 많은 영화와 티브이쇼를 촬영한 장소다. 갤러리는 늘 조용하니 좋고 계단을 올라가면 2층 왼쪽에 예술가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거기서 '앨리스 툴리' 초상화를 처음으로 보았다. 링컨 센터에 '앨리스 툴리 홀'이 있는데 아마도 엄청난 기부금을 내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가끔씩 줄리아드 학생들 특별 공연이 무료로 열리면 방문하곤 하는 사랑스러운 홀이다.


또, 북 카페에서 책을 읽다 집중이 안 되면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스트랜드 서점에 가곤 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은 헌책들이 1-5불 정도라 저렴하니 늘 마음에 든 책이 있나 보곤 했지. 뉴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왔으니 책을 읽으며 뉴욕 문화를 조금씩 배우곤 했다. 그러니까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와 스트랜드 서점이 날 키운 곳이 될까. 장님이 서서히 아름다운 뉴욕 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아름다운 뉴욕이 코로나 19로 잠들고 말았으니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데 유령의 도시로 변하니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지난 3월 초만 해도 이렇게 외출이 자유롭지 않게 될 거라 미처 상상도 못 했다. 사망자들은 또 얼마나 많아. 북 카페에서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언제 가볼까. 너무나 그리운 북카페!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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