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드 학교와 나의 추억들(1)

by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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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일상이 그리운 적이 언제 있었을까. 지하철만 타면 온갖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는데 지금은 갇혀 지낸다. 럭셔리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행복했고 명품 백화점에서 쇼핑하지 않아도 행복했다. 아, 그리운 줄리아드 학교! 내게 얼마나 많은 기쁨과 행복을 주었던가. 천재 학생들의 공연을 무료로 매일 감상할 수 있는 줄리아드 학교. 한국에서 음악 동아 잡지에서 보던 학교가 나의 사랑스러운 놀이터로 변했는데 코로나 19로 학교가 문을 닫아버려 슬프다.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까. 코로나 19로 지구촌 일상이 멈춰 버렸다. 곳곳에서 폐쇄령이 내려지니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나날들 지난 시절을 되돌아본다.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다. 내가 처음 뉴욕을 떠올린 것은 줄리아드 학교였다. 당시 두 자녀가 바이올린 특별 레슨을 받았고 난 어느 날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했다. 두 자녀 교육을 위해서 외국으로 떠날 결정을 내리고 바로 줄리아드 학교가 떠올라 인터넷에서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오디션 곡을 알아보았다. 오디션 곡을 보니 두 자녀가 도전해도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뉴욕과 우리 가족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뉴욕에 대해서 아는 것은 줄리아드 학교가 있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볼 수 있다는 것. 무더운 여름날 이민 가방 들고 뉴욕 공항에 도착했다. 끝도 없는 극한 어려움에도 참고 견디고 지내던 유학 초기 정착 시절. 두 자녀도 학교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나 역시 낯선 언어로 공부하는 것이 지옥 같았다. 그런데 뉴욕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가 머물던 집이 너무 추워 이사를 가야만 했다. 이사 정말 복잡하다. 우리가 살 집도 구해야 하고 두 자녀가 공부할 학교도 알아봐야 하고 학교에서 가깝고 안전한 동네. 그리고 렌트비도 비싸지 않고 생활이 편리한 동네를 구해야 하는데 뉴욕에 아는 사람도 없으니 모든 정보를 나 혼자 구해서 일을 처리해야 했다. 공부하면서 두 자녀 매일 학교에 픽업하면서 살림하면서.


6개월 후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서 제리코로 이사를 갔다. 아직 낯선 땅에 적응도 하지 않았는데 이사를 하게 되니 힘들기만 했다. 서비스 요금 비싸니 포장 이사는 불가능하고 직접 짐을 포장하고 빈 박스도 너무 비싸니 마트에 가서 빈 박스 달라고 부탁해 차로 옮겼지만 내 작은 차에 박스가 몇 개 들어가지 않아 자주자주 마트에 가서 찾았다.


참 어렵게 뉴욕에 왔다. 한국에서 두 자녀는 바이올린 특별 레슨을 받고 줄리아드 음악 예비학교 오디션을 준비하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날개 하나 잃어버린 상황이라 전쟁터 같은 집안 형편. 바이올린 연습을 좋아하지 않은 아들을 위해 다시 레슨을 할까 말까 고민도 했다. 레슨비는 아주 저렴하지는 않으니까. 딸은 엄마 형편에 레슨비가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중단했다.


뉴욕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 살 때 가끔 아들은 바이올린을 꺼내 연습을 했다. 그때는 레슨을 받지 않았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아들이 연습하는 것을 듣고 평범한 학생은 아니라고 판단하셔 뉴욕 니즈마에 참가하면 좋겠다고 권하셨다. 그래서 롱아일랜드 서퍽 카운티 딕스 힐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니즈마에 접수를 했다.


나중 나소 카운티 제리코로 이사 와서 5월에 니즈마 치르러 가서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서퍽 카운티에 접수하니 나소 카운티에 명단이 없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을까. 한국에서 온 경우라 잘 몰랐다고 선생님에게 말하고 다시 오디션 시간을 배정해 달라고 부탁했고 어렵게 어렵게 승낙을 받았지만 원본 악보가 없어서 다시 대소동을 치렀던 기억.


한국에서는 악보가 비싸니 복사를 해서 사용하는데 니즈마 대회는 반드시 원본을 가져가야 하고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주자와 함께 연주를 하니 그냥 간단한 시험을 아니다. 그날 난 악보 구하러 우주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운전하기 싫어하는데 낯선 지역에 악보 사러 가서 헤매다 가까스로 오디션 시간에 도착 오디션 봤는데 그 상황에 100점을 받았다. 난 뉴욕 지리도 모르고 내 차에는 지리를 안내하는 GPS도 없고 나 혼자서 갑자기 시간 내에 악보를 사야 하니 마치 우주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다시 아들 바이올린 레슨을 시작하게 된 중대한 이유도 있다. 경제적인 이유도 살아가는데 참 중요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다. 뉴욕에 와서 서퍽 카운티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지만 한국과 환경이 다르고 주위에 아들 친구가 드물었다. 정말이지 이러다 우울증이라도 걸리면 안 되겠다 싶어 아들이 연습을 별로 하지 않아서 엄마에게는 레슨비가 부담이 되지만 다시 레슨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렵게 제리코에 아파트를 구해 이사를 했고 다음날 힉스 빌 역에서 기차를 타고 줄리아드 학교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날이 우리 가족의 첫 방문이었다. 가슴 설레는 날이었다.


어디서 그 많은 정보를 구하냐고 가끔씩 내게 묻는 사람이 있다. 내 주위에서 무든 알아서 척척 도와준 사람이 있다고 착각해서 웃는다. 아무도 없다. 항상 나 혼자 결정하고 처리한다. 줄리아드 학교 바이올린 선생님도 누가 소개한 것이 아니고 한인 마트에 놓인 무료 정보지 광고란에서 선생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다. 일단 줄리아드 학교에서 만나기로 했다.


맨해튼 펜 스테이션 역에 도착해 줄리아드 학교에 가는 지하철에 탑승해야 하는데 아이스하키 장비를 든 아버지와 아들이 많이 보여 놀랐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우린 처음이라 어디서 지하철을 타야 하는지도 모르고 실수로 익스프레스 2호선에 탑승해 72가에 내렸다. 1호선을 타고 링컨 센터 66가에 내리면 더 좋았을 텐데 그때는 뉴욕 지하철에 대해서 몰랐다. 아주 낯선 맨해튼이라 어디에 학교가 있는지도 몰랐다.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니 아래로 조금 내려오면 된다고 하나 낯선 곳이라서 두려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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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링컨 센터 지하철역(66가), 줄리아드 학교와 링컨 센터에 공연 보러 가려면 이 역에서 내린다.



줄리아드 학교에 약속한 시간에 도착했는데 수위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를 하니 놀랐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어서. 수위가 누굴 찾아왔냐고 물으니 레슨 선생님 만나러 왔다고 하자 우리 가족 이름을 적고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바이올린 선생님이 나오셨다.


첫날 레슨을 받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 손가락이 다쳐 레슨이 불가능하다고. 뉴욕에 와서 6개월 동안 레슨을 받지 않아서 기대하고 방문했는데 레슨도 받지 못하고 선생님 얼굴만 보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펜 스테이션 역에 도착. 롱아일랜드 힉스빌에 가는 기차표를 구입해 기차에 탑승했는데 그만 실수로 힉스빌이 아니라 롱아일랜드 미네올라(Mineola)지역에 내리고 말았다. 기차 안에서 방송이 울렸는데 첫날이라 당황해서 실수로 엉뚱한 곳에 내렸다.


3월 초인데 얼마나 춥던지. 제리코로 이사하고 아직 이삿짐 정리도 안 된 상태로 레슨 받으러 줄리아드 학교에 갔는데 레슨도 못 받고 돌아오면서 실수를 하니 당황스러웠다. 문제는 기차 스케줄, 자주 기차가 운행하지 않는다. 그러니 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할 텐데 요금이 비싸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아들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엄마의 실수로 엉뚱한 곳에 내려 바람 쌩쌩 부는 추운 곳에서 오래오래 힉스빌에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미네올라와의 인연이 참 엉뚱했다. 예정보다 훨씬 더 늦게 집에 도착해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를 했다. 잊을 수 없는 첫날의 추억이다.


그렇게 줄리아드 학교와 인연이 되었고 바이올린 선생님 손가락이 나아지자 학교 4층 연습실에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연습실마다 놓인 검은색 스타인 웨이 피아노. 한국에서 말로만 듣던 피아노를 구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구입하지 않았는데 줄리아드 학교에 얼마나 많던지! 깜짝 놀랐다. 나도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았다.


딸도 한동안 레슨을 받지 않다 다시 레슨을 시작했고 두 자녀 모두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레슨을 받다 나중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오셔 방문 레슨을 하셨다. 뉴욕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서 그게 더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기차 하면 낭만적인 풍경을 떠올리지만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에서는 낭만은 저만치 물러선다. 항상 지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물처럼 나가는 돈, 돈, 돈...


딸도 중단했던 레슨을 다시 받게 되니 예비학교 오디션에 도전해 보려고 결정을 하고 접수를 했다. 혼자서 독학으로 공부한 딸은 작곡 분야를 지원하고 아들은 바이올린 오디션을 치렀다. 예비학교 오디션 1차는 통과하고 학교에서 2차 오디션을 치렀는데 두 자녀가 오디션을 보는 동안 난 근처 반스 앤 노블 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센추리 21로 변경된 장소다. 서점이 쇼핑센터로 변하니 슬펐다.


딸은 피아노 3중주 곡을 작곡하라고 하니 어릴 적 엄마가 첼로 레슨 받는 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웃었다. 나야 취미로 시작한 첼로라서 프로 음악가와 거리가 아주 멀지만 아이들 교육 환경에는 도움이 되나 보다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딸은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으니 참 대단했다. 두 자녀 모두 바이올린 레슨을 오래오래 받았고 아들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지원했지만 결과는 우리의 기대를 비켜갔지만 우린 최선을 다해서 후회도 없다.


뉴욕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세계에서 몰려온 학생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 어찌 쉽겠어. 두 자녀가 오디션을 받을 때 서부에서 온 한국인 아버지도 만났다. 아들이 음악의 길을 걷기 위해 오래오래 엄청난 경제적인 지원을 하셨다고 말씀했는데 그 후로 우린 만나지 않아서 예비학교에 합격해서 공부를 했는지는 잘 모른다. 당시 아버지가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라서 내게는 놀라움 자체였다. 우리 집과 정반대라서.


독일 출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가 코로나 19 확진자라고 하니 마음 아프다.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6월 공연이 예정되어 빨리 회복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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