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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Jul 28. 2020

카네기 홀은 나의 아지트


지난 3월 사랑하는 나의 아지트 카네기 홀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공연을 보려고 미리 티켓을 구매했는데 코로나로 취소가 되어버렸다.



3월 초 카네기 홀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엑스 공연을 본 것이 올해 마지막 라이브 공연이 될 줄 몰랐다. 망설이다 3월 4일, 6일, 8일 공연을 봤다. 집에서 카네기 홀까지 아주 가깝지 않고 밤늦게 공연이 끝나면 집에는 거의 자정 무렵에 도착하니 피곤하니 망설이다 세 번의 공연을 봤는데 돌아보니 멋진 선택이었다. 지금은 라이브 공연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니까. 


오래전 뉴욕에 올 때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 40대 중반 외국어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니 죽음 같은 시간이 흐르고 우리 가족이 롱아일랜드에 사니 우주만큼 멀어서 맨해튼 문화생활은 거의 불가능했다. 두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시 퀸즈 플러싱으로 이사 온 후 맨해튼 나들이가 가능했다.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플러싱 집에서 카네기 홀에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수 차례 환승하니 불편하지만 세계적인 대가들의 음악을 듣는다는 흥분과 설렘으로 가슴이 쿵쿵 뛰었다. 


오로지 전공 책과 씨름하며 지낼 때 세상은 캄캄했는데 맨해튼 문화는 너무나 달라서 놀랐다. 대학 시절 좋아하던 안네 소피 무터 공연이 카네기 홀에서 첫 번째 인연 같다. 그녀의 연주를 꼭 보고 싶은 마음에 카네기 홀 박스 오피스에 가서 하늘 높은 곳에 위치한 발코니석 자리를 구했다. 


그날 뉴욕에 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 처음으로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니 가슴 설레지만 하얀 눈 펑펑 내리는 센트럴파크의 설경도 보고 싶은 마음에 지하철을 타고 달려갔다. 눈 내리는 공원은 영화처럼 아름다웠지만 너무너무 추워서 손과 발이 꽁꽁 얼고 아이폰이 작동하지 않고 멈춰버렸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카네기 홀 옆에 위치한 스타벅스(지금은 사라진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몸을 녹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카네기 홀에 공연을 보러 갔는데 티켓이 사라져 당황했다. 직원에게 말하고 참 어렵게 티켓을 받아 하늘 높은 계단을 올라가  발코니석에 앉아 기다리는데 그리 추운 날 블루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그녀. 바이올린 음색도 아름다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역시 세계적인 대가는 다르구나를 느꼈던 날. 난 겨울 외투를 입고도 추워 혼이 났는데 정상급 프로 음악가의 정신력은 위대했다.


카네기 홀이 나의 아지트로 변할 줄 꿈에도 몰랐다. 세계적인 대가들의 공연이 열리면 카네기 홀로 달렸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 정경화, 길 샤함, 이작 펄만. 첼리스트 요요마.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유자 왕,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와 젊은 러시아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공연을 봤다. 매년 12윌이 되면 오스트리아 빈 소년 합창단 공연도 보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하던 빈 소년 합창단 공연을 뉴욕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카네기 홀에서 그 많은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열정이었다.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클래식 음악 공연 티켓이 비싼 편이고 상류층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뉴욕은 다르다. 세계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한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대가들의 공연이 열리기에. 또 저렴한 티켓을 파니 음악 팬들은 열정만 있다면 공연을 볼 수 있다. 


아침 일찍 카네기 홀에서 몇 시간씩 기다릴 때도 있다. 뉴욕도 위대한 대가들의 공연 티켓이 비싼 때도 있다. 이작 펄만 공연 티켓은 대개 80불에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부담스러워 볼 수 없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저렴한 티켓을 사기 위해 아침 일찍 카네기 홀에 도착해 기다린다. 티켓 값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 일찍 카네기 홀에서 도착해 기다려야 한다. 추운 날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은 상당한 고통이다. 음악을 사랑하니까 기다릴 수 있다. 쇼팽을 사랑하는 화가 할아버지, 록 음악 가수, 프린스턴 대학 교수, 콜럼비아 대학 교수, 오페라 지휘자, 맨해튼 음대 졸업한 플루트 연주자, 뉴욕 시립대 음대  교수, 일본 모자 디자이너, 수잔 할머니, 은퇴한 변호사, 오래오래 발레 레슨을 받다 의대에 진학했던 여의사,  콜럼비아 대학원생, 은퇴한 중국인 시니어 벤자민, 독일어 강사 할머니, 페인트공 중년 남자, 폴란드 저널리스트, 브라질 여행객, 일본 여행객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은퇴한 변호사에게 왜 몇 시간씩 기다려 티켓을 사냐고 물으니 Why Not? 여행객들도 저렴한 티켓을 사려고 일찍 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폴란드 저널리스트는 카네기 홀 맞은편에 있는 오스본 아파트에서 레오나드 번스타인이 살던 곳이고 국립 사적지라고 하니 사진을 찍으며 오래전 레너드 번스타인 등 유명한 음악가들을 개인적으로 만났다고 말하며 내게 고맙다고 했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모여 사는 뉴욕도 렌트비와 생활비가 비싸니 비싼 티켓이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다. 인기 많은 음악가들 공연 티켓은 오래오래 기다려도 구입하지 못하고 돌아설 때도 있다. 추운 날 오래 기다려 티켓을 못사고 돌아설 때는 힘이 풀린다. 내가 사랑하는 다닐 트리포노프 공연이 그랬다. 


내가 돈이 철철 넘쳐서 카네기 홀에서 그 많은 공연을 본 것이 전혀 아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저렴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뉴욕 문화라서 가능했다. 저렴한 티켓을 파는 공연과 아닌 경우로 나뉘고 저렴한 티켓을 파는 공연만 골라서 보게 된다. 


아침 일찍 공연 티켓 사러 집에서 출발하고 저녁 카네기 홀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종일 맨해튼에서 머무니까 아들이 저녁 도시락을 만들어 가져와 함께 식사를 하고 공연을 봤다. 


내가 발간한 <뉴욕에서 만난 뉴요커들과 여행객들> 브런치 북에 소개된 상당수 사람들은 카네기 홀에서 저렴한 티켓 공연을 사려고 기다릴 때 만났다.  몇 시간씩 기다리고 음악을 좋아하니까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대개 뉴요커들은 낯선 사람과 쉽게 이야기하지 않은 문화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유대인 수잔 할머니는 이민 3세대인데 삶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뉴욕시에서 사는 것이 보통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듯 짐작된다. 그러니까 이민 1세에게는 뉴욕시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도전이겠는가.



카네기 홀 공연 카탈로그/코로나로 공연이 취소되어 너무 슬프다.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는데 어느 날 뉴욕 맨해튼이 대학 시절 꿈꾸던 도시란 것을 알았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뉴욕 문화가 특별함을 수 년동안 매일 맨해튼에서 문화 이벤트를 찾다 보니 알게 되었다. 꿈과 열정이 나를 나답게 만들고 내 삶을 만들어 간다.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가 생각난다. 어릴 적에도 책과 음악과 그림과 자연을 사랑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내게 주어진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꿈을 만들어 가고 싶다. 




내 가슴은 뛰노니(My Heart Leaps Up)


하늘에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노니

내 삶이 시작될 때 그러했고

성인이 된 지금도 그러하니

내가 늙어서도 그러하기를,

아니면 날 죽게 내버려 두게나!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앞으로 나의 나날들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튀어 오르기를.





코로나로 관객 없는 공연이 열리는 카네기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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