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할 줄 꿈에도 몰랐다. 40대 중반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간다고 말했을 때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불가능한 꿈이란 말을 했다. 기어코 뉴욕에 오고 말았다.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두 자녀 교육을 위해 뉴욕에 가자고 마음먹고 준비를 했다.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시련과 역경이 기다린 줄 몰랐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주위 사람들 말처럼 뉴욕에서 새로운 생을 열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40대 중반 나 혼자 유학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수험생 두 자녀 역시 외국어로 힘든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것은 피나는 고통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날개 하나 부서진 몸으로 수 천 마일을 날아와 뉴욕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열었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었다. 뉴욕에 줄리아드 학교가 있다는 것만 알고 왔다. 어린 두 자녀가 어릴 적 특별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 시작해서 세계적인 명문 음악 학교가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언어와 지리와 문화가 낯선 뉴욕은 사하라 사막이었다.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서 꿈과 희망의 씨를 뿌렸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는 것은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태어난 나라에서 홀로서기도 두려움인데 낯선 나라에서 홀로서기는 얼마나 무한도전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고독과 몸부림쳤던가.
삶은 꿈과 고통과 욕망과 운명의 변주곡일까. 눈물겨운 세월이 지나고 애벌레 시기가 지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긴긴 고통의 시간이 흐르고 두 자녀는 중고교 과정과 대학 과정을 마치고 졸업했다.
딸이 대학을 졸업 후 동부 보스턴 캠브리지 하버드대학 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보스턴에서 지낼 적 매년 동생과 엄마를 초대했다. 초대받기 전 두 자녀가 고등학교 시절에도 메가 버스를 타고 보스턴에 여행을 갔지만 낯선 도시라서 친절하지 않았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고생도 많이 하고 정보가 귀하니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먼 훗날 세월이 흘러 딸의 초대를 받아 보스턴 여행을 가서 호텔에서 며칠 머물며 지내니 꿈만 같았다. 영화 속 하버드대학 교정을 거닐며 이야기를 하고 근처 카페에 찾아가 식사를 하고 밤에는 딸 집에서 촛불을 켜고 샴페인을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름다운 찰스 강변 호텔에 머물면서 보스턴의 야경도 보고 강변 근처 갤러리가에서 산책도 하고 하버드대학 미술관과 보스턴 미술관을 관람하며 꿈같은 시간이 흘렀다.
작년 여름 딸이 동부에서 서부 팔로 알토 스탠퍼드대학 연구소로 옮기게 되니 미국 동부 최고 휴양지 케이프 코드에도 방문했다. 바다를 사랑하는 내가 가장 좋아했지만 초고속 크루즈를 타고 가다 죽을 뻔했는데 아름다운 비경의 섬에서 랍스터도 먹고 갤러리도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산책하며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40대 중반 괴물 같은 외국어로 하는 석사 과정 공부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지옥 같은 대학원 과정을 졸업하고 미국인 회사와 대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그만두게 되었다. 절망 속에서 꽃은 피는가. 세상이 캄캄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숨겨진 보물을 찾아 헤맸다. 희망과 꿈이 없었다면 난 영원히 지하 속에서 아픔과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뉴욕이 세계 문화 예술의 중심지란 것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뉴욕 문화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매일 낡은 가방 하나 어깨에 메고 맨해튼에 가서 거리에서 노란 바나나 사 먹고 하루 1만보를 걸으며 낯선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북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뉴욕 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뉴욕은 축제의 도시. 매일매일 축제가 열린다. 뉴욕의 심장 맨해튼 센트럴파크는 뉴욕 시민과 여행객이 사랑하는 공원. 마차가 달리는 낭만적인 풍경은 언제나 영화처럼 아름답다. 매일 조깅도 하는 뉴요커도 보고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뉴요커들도 본다. 사계절 아름다운 공원에서 여름이면 셀 수 없이 많은 축제가 열린다.
뉴욕은 셀 수없이 많은 미술관과 뮤지엄과 갤러리가 있고 학창 시절 미술서적에서 보던 그림을 볼 수 있다. 또 뉴욕은 공연 예술의 중심지. 오페라와 뮤지컬과 발레와 뉴욕 필하모닉 공연과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마음이 울적하면 스테이튼 아일랜드 가는 주항 색 페리를 타고 하얀 갈매기 나는 허드슨 강을 보면 기분이 저절로 풀린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아름다운 허드슨 강에 요트가 춤을 춘다. 석양이 비출 무렵 맨해튼 배터리 파크는 정말 아름답다.
뉴욕은 대학 시절 꿈꾸던 도시였다. 맨해튼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종일 북 카페에서 책을 읽고 공연과 갤러리를 관람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놀이터.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서 천재들의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저렴한 티켓으로 카네기 홀에서 전설적인 음악가들 공연을 볼 수 있다. 카네기 홀에 가면 음악을 사랑하는 지인들을 만난다. 오페라 사랑하는 수잔 할머니, 은퇴한 중국인 시니어, 모스크바 출신 할아버지, 파리 출신 화가 할아버지, 오페라 지휘자, 작곡가 교수, 은퇴한 변호사, 폴란드 저널리스트, 일본 모자 디자이어와 연예계 매니저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차츰차츰 뉴욕 문화를 알게 된다.
대학 시절 사랑하던 사이먼과 가펑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밥 딜런, 조운 바에즈, 빌리 조엘 등이 뉴욕에서 공연한 것도 늦게 알았다. 명성 높은 작가들과도 인연 깊은 도시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집필했던 작가 오헨리, <어린 왕자>를 집필했던 생떽쥐베리, <왕자와 거지>와 <허클베리 핀>을 집필했던 마크 트웨인, <백경>을 집필했던 허먼 멜빌 등도 뉴욕과 인연 깊은 줄 늦게 늦게 알았다.
40대 중반 낯선 나라 뉴욕에 와서 무한 도전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니 내 영혼은 고통의 바다에서 춤을 춘다. 가진 거 없는 자유로운 영혼은 매일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뉴욕 문화 탐구를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 글쓰기를 하며 지내고 있다(맨해튼 문화 탐구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임시 중지 상태다).
두 가지 길 가운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니 먼 훗날 생이 달라졌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내 삶도 변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은 보석처럼 빛나지 않았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인생은 항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거대한 폭풍우를 만나고 때로는 산들바람이 불고 때로는 장밋빛 정원을 산책한다. 꽃이 잠깐 피고 지듯이 아름다운 꿈이 피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새로운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꿈과 열정과 고통으로 새로운 세상이 천천히 천천히 열린다. 삶은 끝없는 시작과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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