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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07. 2020

시작은 늦어도 괜찮다  

대학을 졸업 후 교직 발령을 받아 첫 급여를 받아 악기점에 달려가 연습용 바이올린을 구입해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20대 중반이 지나서 현악기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현악기 레슨을 받기에는 상당히 늦은 시기라고 생각하고 다들 왜 늦은 나이 레슨을 받으러 다닌 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고 잘난 체하려고 레슨을 받는다고 오해를 하는 분도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교직에 종사하면서 1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으러 다니니 시간 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고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만나자고 연락이 와도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만날 수 없었다. 청춘이 빛나는 20대 예쁜 옷을 구입하러 쇼핑하자고 하는 친구도 있고 카페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연락이 왔지만 내게는 바이올린 레슨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늦은 시기 바이올린 레슨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나 어릴 적 레슨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요즘은 동네에 피아노 학원도 많아서 레슨을 받지 않은 경우가 드물지만 수 십 년 전 한국 상황은 달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보고 배우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지만 평범한 집안이라서 부모님께 레슨을 받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세월은 그냥 흘러만 갔고 마침내 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관현악반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어떤 동아리반에 들어가 활동할지 고민하다 학생 회관에 있는 여러 동아리반을 순례했는데 클래식 기타 반에서 고등학교 시절 친구 오빠를 만났다. 친구 오빠는 기타반에 가입하라고 추천을 했다. 하지만 클래식 기타 동아리반 활동만으로 벅차서 동시 다른 동아리반에서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난 연극반, 사진반, 관현악반, 영어 타임지 반 등 다양한  활동하고 싶었는데 욕심을 버려야 했다. 친구 오빠는 의과 대학을 졸업 후 제주도에서 개업해 산다는 소식을 오래전 들었는데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바이올린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나의 첫사랑 바이올린을 어찌 잊을 수 있어. 그래서 교직 발령을 받아 첫 급여를 받아 악기를 구입해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결혼 후 첫아이 임신을 하게 되고 만삭이 되어가자 레슨을 중지했고 당시 선생님이 내게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나 다시 레슨을 할 수 있을 거란 말씀을 했지만 그때는 그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조차 몰랐다. 임신과 육아는 여자에게 얼마나 무거운가. 정말 그렇게 되었다. 


어린 두 자녀 레슨을 시키면서 나도 다시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바이올린 대신 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린 두 자녀가 재능이 많다고 들어서 특별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방과 후 선생님과 그분 은사님과 독일에서 유학한 분과 예종 강사와 빈 대학교 교수님에게서 레슨을 받게 되었다. 두 자녀 뒷바라지는 정말 힘들었고 내가 만약 음악을 전혀 몰랐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사랑하는 나의 첼로가 거실에서 산산조각이 나 버린 후 안개가 걷히고 진실이 드러나자 한국을 떠나자고 중대한 결정을 했고 어린 두 자녀 교육을 위해 줄리아드 학교가 있는 뉴욕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뉴욕과 인연이 되었다. 위기 한복판에서 준비를 하고 뉴욕에 와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뉴욕 맨해튼은 문화 예술의 도시란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시절 사랑하던 전설적인 음악가들도 카네기 홀과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서 만나니 꿈만 같았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와 길 샤함과 이작 펄만,  첼리스트 요요마와 린 하렐,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와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등. 뉴욕에 와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공연과 세계적인 성악가 소프라노 홍혜경 마스터 클래스도 보게 되어서 기뻤다. 



그리운 카네기 홀 언제 다시 널 보게 될까.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무대에 서는 카네기 홀은 나의 아지트로 변했다. 공연을 보러 가면 음악을 사랑하는 지인들 소식을 듣게 되니 기쁘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가족을 새로운 세상 뉴욕으로 인도했는지도 모르겠다. 40대 중반 뉴욕에 와서 오페라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저렴한 티켓을 구입해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으니 좋다. 코로나 19로 뉴욕이 문을 닫아버렸는데 메트에서는 매일 저녁 오페라를 보여주니 감사한 마음이다. 지난 4월에는 지구촌에 흩어져 사는 메트 단원들이 라이브 갈라 공연을 해서 보여주니 감격스러웠다. 지구촌 위기에도 불구하고 음악팬들을 위해 노력하는 메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좀 더 빨리 뉴욕에 왔더라면 루치아노 파바로티 공연도 봤을 텐데 아쉽다. 




음악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일찍 떠났을지 모르겠다. 바이올린과 첼로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했다. 시작은 늦어도 괜찮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 메트 갈라 지난 4월 25일 지구촌에 흩어져 사는 메트 단원들이 라이브 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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