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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Jan 04. 2018

뉴욕에 올 때 아무것도 몰랐다


뉴욕에 올 때 아무것도 몰랐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딸아이 선생님에게 제리코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롱아일랜드에 제리코가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분 아버지는 맨해튼에서 의사로 수 십 년 동안 활동하는데 모른다 하시니 답답했다. 우리에게 뉴욕 문화에 대해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뉴욕에 와서 공부하고 지내니 맨해튼은 더욱 멀었다.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와서 첫 한 달 동안 IKEA에서 배달한 가구를 두 자녀가 조립하고, 차도 없으니 걸어서 장을 보러 가고, 무거운 빨래 가방 들고 빨래방에 가고, 그 후 두 자녀 학교 수속하고 그렇게 눈물겨운 정착 시절을 보내고 눈물겹게 뉴욕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첫해 가을학기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니 더 눈물겹고 한국 학생 한 명만 만나도 행복할 거 같으나 그림자도 안 보였다. 첫해 크리스마스 무렵 두 자녀랑 맨해튼에 가려고 한인 여행사에 미리 예약을 했다. 우리 가족의 맨해튼 첫나들이였다


지금 같으면 우리끼리 버스와 기차를 타고 맨해튼에 갔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니 걱정이 되어 여행사에 예약을 하고 맨해튼을 버스로 관광했다. 첫해 크리스마스 한인 여행사를 통해 미리 예약했고 1인당 경비는 80불 +팁 10불+교통비가 들어갔으니 정말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그 후 기차를 타고 맨해튼 타임 스퀘어 근처 극장에서 아바타 영화를 봤는데 3명이 보니 거의 50불에 가까워 많이 놀랐다. 지금도 영화는 자주 보고 싶지만 상영료가 저렴하지 않으니 자주 안 보는 편이다.


크리스마스 방학 끝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니 정신없었다. 롱아일랜드는 맨해튼과 거리가 멀고 운전하기 아주 싫어한 내게는 더욱더 멀게만 느껴졌고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으나 기차요금도 저렴하지 않아서 자주 갈 수 없었다. 


거버너스 아일랜드 가는 페리 안 


버스 투어로 맨해튼을 돌아봤자 맨해튼에 대해서 거의 모른다. 두 자녀가 롱아일랜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뉴욕시로 이사를 했다. 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으나 지리도 낯설고 아는 게 없으니 발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맨해튼 예비 음악학교에서 공부할 적 가끔 아들이 소속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다. 그때 음악 학교에서 무료 공연이 자주 열린 것을 알게 되었고 줄리어드 학교도 마찬가지로 많은 무료 공연이 열린 것을 알게 되었다. 줄리어드 학교에서 공부하는 선생님에게 두 자녀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으나 그분 역시 우리에게 무료 공연에 대해 말씀해주지 않으셔 잘 몰랐다.


메트 뮤지엄이 기부 입장인 것도 처음에 몰라서 성인 요금 전액을 지불하고 입장하니 입장료가 부담스러워 자주 방문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고 수년 전 뮤지엄 마일 축제가 열린 날 메트 뮤지엄에 가서 직원과 이야기를 하다 기부 입장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뉴욕은 세계적인 관광 도시라 여행객이 1년 6천만 명 이상이 방문해 여행객을 위한 상품도 정말 많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도시라 뉴욕은 정말 모든 게 비싸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도 너무 비싸 금세 수 백 불이 날아가니 정말 부담스럽다. 뉴욕 여행을 와서 잘 모르면 아주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된다. 비싼 도시 뉴욕은 좋은 정보가 돈이다. 알면 알 수록 멋진 도시다.   


만약 맨해튼 문화 예술에 관심이 없었다면 난 그야말로 암흑 세상에서 지낼 수도 있었다. 낯선 곳을 방문하며 버스에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우연히 브룽스 동물원이 기부 입장인 것도 알게 되고, 차츰차츰 더 많은 정보를 알아가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과 브룽스와 퀸즈 곳곳을 방문하고 노란 페리를 타고 스테이튼 아일랜드에도 자주 갔다. 거의 매일 맨해튼 나들이를 하다 보니 이제 뉴욕에서 수 십 년 동안 지낸 뉴요커보다 더 많은 문화 예술 정보를 알고 있다. 


맨해튼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놀이터란 것도 수 년동안 거의 매일 맨해튼에 가서 여기저기 방문하고 수많은 이벤트를 보며 알게 되었다. 보고 싶은 공연과 보고 싶은 전시회 등 모두 볼 수 있는 맨해튼, 그리고 종일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북 카페 등 뉴욕 문화의 매력에 퐁당 빠졌다. 공연과 전시회와 책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뉴욕은 정말 사랑스러운 도시다. 또한 공원도 정말 아름답다. 


대학 시절 꿈꾸던 도시를 수 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만났다. 물론 뉴욕이 완벽한 도시라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문화 예술 면에서 뉴욕은 최고로 멋진 도시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뉴욕을 보물섬이라 불러도 좋을 거 같아.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열린 무료 공연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세상이 전부 보인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아름다운 세상이 보인다. 뉴욕이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라 하더라도 스스로 느끼지 않으면 아름다운 도시인지도 모를 것이고 문화 예술에 관심 없는 분이라면 뉴욕이 매력 없는 도시일 수도 있다. 뭐든 그렇지만 알면 알 수록 더 많은 매력을 느끼는 뉴욕이다. 뉴욕에 올 때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맨해튼이 나의 놀이터로 변했다. 애정을 쏟은 만큼 세상은 좀 더 가까이 있는 거 같다. 


2018.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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