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민 손 덥석 잡기 전에
런던 여행 4일째, 토요일 아침. 같은 숙소의 한국 여대생들이 버로우 마켓 구경을 간다 하기에 얼른 묻어가기로 한다. 그들은 마치 길 찾는 시연이라도 보여주듯이, 지하철역에 쏙 들어갔다 쏙 나오고, 방향 쓱 잡고 몇 걸음 걸으니 눈앞에 버로우 마켓이 짠하고 나타났다. 어디 가나 줄기차게 길을 잃고 다녔던 우리에겐 신기에 가까운 길 찾기 솜씨다. 여행 끝날 때까지 그들과 함께 다니고 싶다.
시장을 둘러보고 초콜릿도 사고, 맛있다는 커피도 한 잔 마셨는데 겨우 10시 30분이다.
“엄마, 시간도 많은데,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가자.”
딸내미가 엄마 안색을 쓱 살피더니 말한다. 뭔 박물관이라고? 어젯밤 자기 전에 가이드북을 들여다보더니, 일정에도 없는 박물관 이름이 딸내미 입에서 튀어나온다.
내셔널 갤러리, 대영박물관, 해리포터 스튜디오도 다녀왔는데, 또 박물관이라니, 시장보다 박물관이 더 흥미로운 딸내미를 침 한 번 꾹 삼키고 이해하기로 한다. 이번 여행의 일차 목적을 잊지 말자. ‘딸내미와 마음거리 좁히기.’
“그래, 가자.”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은 빅토리아 여왕과 그녀의 남편 앨버트 공이 수집한 가구와 옷, 보석 등을 전시하고 있는 디자인과 공예, 장식품 박물관이다. 3층 전시실을 보고 나오다, 우연히 ‘내셔널 아트 라이브러리’를 발견했다. 유럽의 서점이나 도서관을 가보고 싶던 차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손잡이를 조심스레 돌려 육중한 문을 열었다. 바깥 복도에서 들리는 관광객들의 떠드는 소리와 북적거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랜 시간 도서관에 켜켜이 쌓인 정적 속으로 우리는 빨려 들어간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19세기 영국 런던으로 시간여행을 온 느낌이다.
책장에는 두툼한 가죽 장정 책들이 쭈르르 꽂혀 있고, 넓은 창문에서 햇살이 쏟아져 책상에 내린다. 천장의 샹들리에와 갈색 원목 가구들 틈에, 백발 할아버지 한 분이 책에 머리를 파묻고, 움직이질 않는다. 책을 보고 있는 건 맞겠지?
입구 오른쪽에는 까만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흑인 사서 한 명이 두 손을 마주 잡고 다소곳이 서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를 쳐다본다.
흑인의 듬직한 체구는 도서관보다 클럽 문지기에 더 어울릴 것 같다. 내가 상상한 도서관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지만, 뒤돌아 나가기엔 이미 늦었다. 머뭇거리며 앞으로 한걸음 내디뎌 본다.
그때, 흑인 사서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나지막이 뭐라 속삭인다. 영국 애들은 왜 자꾸 나에게 뭘 속삭이는 거야? 불안하게. 낯선 이가 뭔가 속삭일 때는 조심해야 한다. 사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속삭이는 말을 놓치고 나니, 나에게 뭐라 했을까 가능한 스토리 조합을 짜느라, 뇌는 바쁘게 끽끽 대며 돌아간다. 언어 해독이 끝나기도 전에, 흑인 사서는 한 술 더 떠 길쭉한 팔을 나에게 쑤욱 내민다. 일단 말은 못 알아들었으니 패스하고, 내민 손은 어떻게 한다? 짧은 망설임 끝에 손을 덥석 잡아준다. 내밀었으면 잡아주면 되지, 그럼 됐지. 뭐?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딸내미는, 엄마에게 밑도 끝도 없이 손을 잡히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난처한 흑인을 구해주기로 마음먹는다.
“엄마~ 가방과 카메라는 들고 들어갈 수 없다는데......”
그러니까 흑인 사서는 내 가방과 카메라를 가리키며, 그것을 들고 입장할 수 없다는 안내를 해준 것뿐인데, 그 뻗은 손을 내가 덥석 잡고 반갑다 흔들고 있으니...... 흑인 사서의 손을 얼른 놓아준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여행하다 보니 부처, 예수, 알라, 믿지도 않는 갓도 자주 부르고, 쥐구멍도 여러 번 판다.
혼자 한 경험이었다면, 그런 경험 내 인생에서는 한 적 없다고 무의식마저 속이고 싶을 만큼 창피한 사건인데, 유감스럽게 목격자가 있다. 이 목격자에게는 뭔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왜 엄마가 뜬금없이 흑인 사서의 손을 잡고 흔들었는지.
변명 대신 나는 딸내미의 출중한 영어 듣기 실력을 듬뿍 칭찬해주었다. 엄마의 칭찬에 우쭐해져 딸내미가 ‘근데, 엄마. 왜 아까 흑인 손은 잡고 있었던 거야?’와 같은 난처한 질문은 절대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다행히 딸내미는 그 이후에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딸내미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천만다행이다. 혹시 알면서도 엄마가 민망해할까 봐 말을 꺼내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열세 살 아이치곤 참 속이 깊다.
홈페이지에 가입하고 절차를 밟아야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서의 설명이 이제야 귀에 들린다. 흑인 사서는 동양 아주머니에게 손을 잡히는 봉변을 당하고도, 자신의 임무를 끝까지 충실하게 이행한다. 그래도 홈페이지고 뭐고 민망함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왜 그런 착각을 했을까? 하루에도 외국인이 수백 명 방문하는 런던 관광지에서, 동양 아주머니 뭐가 반갑다고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생각했을까?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와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의 부조화가 빚은 실수라 변명하기엔 사건의 감정적 여파가 크다.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 어쩌면 나는 아집과 편견과 어설픈 판단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흑인 손 한번 잘못 잡고 나니 생각이 참 많다.
내민 손 덥석 잡기 전에,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자. 그 사람이 손을 내민 의도 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