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미안하다 우리 딸

부족한거라 생각하면돼!

by 글쓰는공여사

해리포터 광팬 딸내미는 혼자 남겨진 긴 시간 동안,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와 지냈다. 책을 읽고 또 읽고,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그들과 함께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다니고,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퀴디치 월드컵을 응원하고, 볼드모트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특히 헤르미온느의 영국식 발음이 멋지다고 흉내 내기 시작하면서, 딸내미의 영어 듣기와 말하기 실력이 일취월장 늘었다.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는 딸내미의 고마운 베이비시터이고, 실력 있는 원어민 영어 선생님이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 입장 티켓을 십만 원 가까운 거금을 들여 예약했다. 딸내미는 티켓이 백만 원이라 해도 가야 한다고 우겼으리라. 대신 컵라면으로 백 번 끼니를 때우면 안 될까 하고 물어봤겠지.


딸내미는 해리포터 스토리 모르면 돈 아깝다며,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더니 느닷없이 묻는다.

“엄마, 시리우스 블랙이 나오는 시리즈가 뭐야?”

“시리우스가...... 누구지?”

“엄~~~~~~~마! 그럼 핑크 옷 입은 엄브릿지 교수가 나오는 건 몇 편이야?”

“그 핑크 옷 입고 나온 여자? 글쎄..... 잘 모르겠는데.”

“흠...... 엄마! 여행 가기 전까지 해리포터 영화 정주행! 알았지?”


늦은 밤 집에 들어오면, 눈꺼풀 무거워지는 새벽까지 세부 일정 짜고, 숙소, 교통편 예약하고, 딸내미가 내준 숙제 하느라 어둠 속에서 꾸벅꾸벅 졸며 해리포터 영화를 봤다. 그렇게 노력은 했는데, 여행 떠나기 전까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1편의 다음 진도를 넘어가지는 못했다.


스튜디오에 입장하자마자 딸내미는 해리포터와 론, 헤르미온느의 대형 브로마이드를 보고, 실제 인물을 직접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닌다. 딸내미는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것을 뼛속까지 깊게 흡입하고 싶은 듯, 오감을 총동원하여 네 시간을 보낸다.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지팡이를 휘둘러보며 마법의 세상을 체험한다.

_7120647.jpg 마법의 세상

난 스튜디오 구경보다 환하게 웃는 딸내미 구경이 더 즐겁다. 엄마 없어 쓸쓸하고 외로웠던 딸내미의 마음을, 해리포터가 마법 지팡이로 활짝 펴준다. 해리포터의 마법에 시샘이 난 나는 ‘그래도 런던까지 와서 해리포터를 만나게 해 준 사람은 엄마야.’라고 소심하게 내 몫을 챙긴다.


“엄마! 이리 좀 와봐. 여기, 여기~”

딸내미가 이끄는 대로 의상과 소품, 그리핀도르 기숙사 방, 비밀의 방도 들여다본다. 런던 프리벳가 집과 2층 버스, 호그와트로 가는 다리, 다이애건 앨리 거리의 가게도 구경한다. 보통 인간 ‘머글’인 우리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현실의 버거운 책임을 잠시 벗어두고, 마법사들의 세상을 탐한다.


해리포터 여권에 도장도 찍고, 숨겨놓은 15개 골든 스니치를 찾을 때마다 비명도 질러가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들뜨고 신이 난다. 여행이 주는 마법에 걸린 게야.

우르르 몰려다니며 구경하는 런던 초등학생들을 보며, 딸내미가 말한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로 현장학습을 오다니...... 런던 애들은 행복하겠다.”

_7110600.jpg 해리포터 광팬 딸내미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

복도 한쪽 벽면에는 다이애건 앨리 지팡이 박스가 천장까지 쌓여있다. 지팡이 박스 하나하나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해리포터 마법의 세상을 함께 창조한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The stories we love best do live in us forever, so whether you come back by page or by the big screen, Hogwarts will always be there to welcome you home." -J. K. Rowling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이야기는 영원히 우리 안에 살아있다. 네가 페이지를 넘기거나 큰 스크린을 통해 돌아온다면, 호그와트는 언제나 네가 집에 온 것을 반겨준다.’


딸내미는 불안하거나 심심하면 손톱을 물어뜯었다. 하얀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불그스름한 생손톱도 물어뜯고, 손거스러미도 피가 나도록 뜯어내어 살점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다녔다. 손톱을 물어뜯는 이유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쉬운 해결 방법만 찾았다. 네일 샵에 가서 손톱 장식도 해보고, 소아과 상담도 받았다.


손톱을 물어뜯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몸으로 표출한 것이고, 딸내미는 외롭고 쓸쓸하고 엄마 사랑 부족하다고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목청껏 소리 질렀는데, 나는 그 소리에 귀를 막고, 뒤돌아서 있었다.


딸내미가 열 살 때 엄마에게 보낸 메일이다.


제목: 쓸쓸함

“난 엄마에게 쓸쓸함을 느껴.

엄만 항상 언니오빠에게 "안녕~잘 가"하고 웃으면서 인사해주고, 내가 엄마 보고 “잔다” 하면 "아이고~딸내미 엄마 힘들어."라고 했어. 항상 나는 안돼 하며 언니오빠 피자 치킨 사먹으라고 돈 주고 항상 난 피자 한쪽 치킨 하나로 만족해야 했어.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면 바쁘고, 내가 자면 수업 끝나고, 내가 안자는 날이라도 엄마랑 있으면 요즘엔 저녁에 아빠랑 학원 회의하고..

이것에 대해 메일로 답해줘.

엄마 입으로는 한마디도 하지 마!!!!

물론 엄만 나한테도 신경을 써 하지만 부족한거라 생각하면돼!“


글에 담겨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힘들게 뱉은 딸내미 속마음이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메일 한 번 보고 닫아버리고....... 그리고 오랫동안 그런 메일을 받았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살았다. ‘부족한 거라 생각하면돼!’ 라는 중요한 말도 잊고 살았다.


딸내미는 네 시간을 흥분 상태로 돌아다니며 정신을 못 차리더니, 스튜디오를 나와 버스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진다. 열세 살이 맞기는 하다. 기차에서도 자고 버스에서도 잔다. 비몽사몽 질질 숙소까지 끌려오더니, 저녁도 건너뛰고, 옷도 안 갈아입고, 이도 안 닦고 아침까지 잔다.


쌕쌕거리며 자는 딸내미를 한참 들여다본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오길 잘했다. 엄마와의 마음 거리 오늘 5센티미터는 줄어든 것 같지? 여행 와서 엄마 손 잡고 다니느라, 며칠 째 손톱을 물어뜯지 않았나 보다. 서서히 살점이 아물고 있는 딸내미의 조그만 손을 잡아본다.


미안하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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