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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Sep 12. 2021

10만 원 빵의 위력

이래도 안되면 포기한다

작년 5월에 남편이 산책하다 말했다.

"요즘 웹소설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뭔데?"

6월에 또 말했다. 

"그 웹소설이라는 게 말이야, 얼마나 재밌냐면······."

"그래?"

한 달 뒤 산책하다 또 말했다. 

"웹소설, 한 번 써보는 게 어때?"

"······내가?"


부처님도 삼세판 권하고 상대가 동하지 않으면 그만뒀다던데. 아무래도 3개월에 걸쳐 남편이 뜸 들이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그게 뭐지? 하고 들여다봤다. 흐음. 조금 마음이 동한다. 브런치에 글 쓰면서 소소한 내 얘기 나누는 것도 재밌지만, 이건 또 다른 '메타버스' 세상을 통째로 만드는 거잖아? 흐음, 볼수록 마음이 많이 동했다.


"뭐,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한번 써보지."

한번 써보지, 말은 가볍게 했어도, 마음은 굳게 먹는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는 새마을 정신이 아직도 영혼 어딘가에 깊숙이 숨죽여 살아 숨 쉬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얀 모니터 화면에 커서가 껌뻑 껌뻑. 대관절 뭘, 어떻게 써야 하는 거지? 진도가 안 나간다. 

까짓 거 한번 써 볼까?

소설 안 좋아한다. 노력해서 읽었던 게 손가락 발가락 개수 정도면 끝이다. 당근,  써본 적도 없다. 그래도 내 의지로 난생처음 품은 꿈이 '드라마 작가'였으니,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7월부터 자판을 두들겨 본다. 2화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1화만 쓰고 쓰고 또 쓴다. 쓴 글을 읽어보니 심히 구리다. 누구에게 보여주기는 커녕 차마 내 눈뜨고 맨 정신으로 읽기가······.


그렇게 7, 8월이 가고 9월 말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때려치우자. 뭐, 시작한 것도 없고, 내가 시작한 줄 아무도 모르고.  때려치운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그런데 나보고 웹소설 써보라던 남편은 날마다 현판과 무협 웹소설을 눈알이 빠지겠다면서도 시간만 나면 읽어댔다. 재밌다면서 피 같은 현금을 바쳐가며. 


오기가 났다. 한 번 뽑은 칼, 무라도 댕강 잘라보고 그만두자. 9월 말 카페에 앉아 남편에게 말했다. 

"10만 원 빵 하자."

"뭘?"

"내가 매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화씩 5,000자 쓰고 검사받고, 못쓰면 하루 10만 원씩 벌금 낼게."

"나야 좋지. 기한은?"

"올해 말까지."

"휴일은?"

"그딴 거 없어. 그 대신 글은 읽지 말고 글자 수만 확인하기."

"오케이."


매일 10만 원 빵이면 3개월, 90 곱하기 10이면 허걱! 9백만원? 내가 뭔 짓을 한 거야. 남편에게 벌금내려고 알바 뛰어야하는 거 아니야? 현타가 거하게 몰려왔다.  다음날부터 무조건 아침 명상하고, 댕댕이 아침 떵 뉘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딸내미 하나 있는 거 벌써 서울에 딴 집 차려 독립했고, 난 시간 부자, 공식적인 백수이니까. 


뭐, 호기 있게 10만 원 빵 하고 달려들었는데, 처음엔 미치는 줄 알았다. 스토리도 없고,  플롯도 뭐도 없고, 캐릭터 성격 이딴 것도 없으니, 남주와 여주가 등장해, 나도 모르는 소리를 마구 지껄인다. 하루 5,000자, 한글 8~9페이지를 뭐라도 써서 채우고 나면, 큰일이라도 해낸 듯 휴우, 깊은숨을 몰아쉬고, 그때사 영화도 보고 집안일도 했다. 

못 쓰면 10만 원 벌금 내던가.

어느 날은 써도 써도 5,000자가 안 채워졌다. 서랍을 열고 녹색 지폐를 10장 꺼내 부들부들 떨면서 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 안돼. 절대 안 돼. 창의성도 천부적 재능도 없는데 인내심마저 없으면······. 지폐를 다시 서랍에 집어넣고 눈에 힘 딱 주고, 똑깍똑깍 자판을 두들겼다. 뭐라도 써야 해. 뭐라도. 


12월 31일 끝까지 벌금 10만 원 한 번도 안 내고 매일 글을 썼다. 


매일 남편이 5,000자 검사받으러 가면 말했다. 

"와, 진짜 대단하다. 오늘도 다 썼어?" 

그 말을 92번 듣고 나니, 장편 한 권이 끝나 있었다. 매일 하루에 5~6시간씩 책상에 붙여 3개월을 보냈다. 매일 10만 원 빵이 정말 무서웠을까? 아니면, 여기까지 밀어붙이고 무너지는 나를 지켜볼 자신이 없었던 걸까?


이번엔 쓴 글 마음에 안 든다고, 만지작거리고 플랫폼에 올리지 않으니 남편이 또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연재 시작 안 할 거면, 갖다 버려. 파일, 통째로."

"그, 그래······. 올, 올릴게."


아, 미치겠다. 이런 개발새발로 쓴 소설을 올리라고? 그 말 듣고 울뻔했다. 버리기 싫어서 3월 15일부터 플랫폼에 무료 연재로 올렸다. 그랬는데, 기적처럼 플랫폼 두 군데서 컨택이 왔다. 8월 연재 끝내고 외전까지 마무리 짓고 지금은 e book 출간 진행 중이니. 뭐, 이후의 성적은 차체 하고라도 10만 원 빵의 성공이다. 

이 정도까지는 필요 없지만. 조금은 밀어줄 뭔가가 필요하다.

진짜 10만 원 빵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뭔가 이루고 싶은데 실행을 못하고 있으면,

1. 거한 빵을 건다.

만원 빵은 삼간다. 에이, 더럽다. 만원, 가져. 가져. 그러고 혼자 불 꺼진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자괴감에 빠질 확률 100%다. 

2. 기간과 정확한 룰을 정한다.

자정 12시까지, 정확하게 5,000자(공백 포함) 못하면 현금으로.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한다. 

3. 벌금 안 주면 지옥에라도 따라올 만큼 독한 상대를 고른다. 

돈에 욕심이 무지 많거나, 약속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거나, 약속 못 지켰을 때 평생 창피한 상대를 고를수록 성공한다. 


이제부터 난, 그 결과가 탐은 나는데 10만 원 빵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 일은 깔끔하게 포기하겠다. 그 일을 벌일 시간이 없거나, 아직 그 일을 벌일 자원이 부족하거나, 아직 때가 아니거나, 아니면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지 않은 거니까. 


10만 원 빵! 올해 나를 한 걸음 앞으로 나가게 하고, 다른 재밌는 세상을 경험하게 해 준 고마운 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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