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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May 25. 2023

내 인생에서 들어본
가장 신박한 칭찬

1인 미용실 체험

광주 친정집에 다녀왔다. 


일 년에 끽해야 두 번 가던 먼 길인데, 요즘은 한 달이 멀다 하고 들락거린다. 아버지 항암치료 때문이다. 비행기를 마치 동네 시내버스 타듯 타고 다닌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비행기 공포증'이 억지로 치유될 판이다. 


잠깐 짬이 났다.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점심을 먹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제주에선 아직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찾지 못했으니까. 근처 프랜차이즈 헤어숍을 검색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거기로 가자. 아주 잘 잘라."


난 어느새 엄마 손에 이끌려 미용실 문을 열고 있었다. '의지의 한국인' 울 엄마는 마음먹은 건 꼭 이루고 만다. 내 의지는 80대 엄마의 것에 비하면 새발에 피다. 엄마는 날 미용실에 얼른 밀어 넣고 일을 보러 나간다. 

30년 된 1인 미용실

간판만 봐도 30년은 족히 된 것 같은 조그만 동네 미용실, 의자는 달랑 1개 1인 미용실이다. 


머리를 뒤로 곱게 쪽진 60대 원장 아주머니가 내가 들어가자 그런다. 


"제주 사는 딸인가 보네. 미용실이 좀 촌스럽지라? 내가 울 아들 3살 때부터 했으니까, 올해 딱 30년 돼부렀네. 아, 진짜 시간 빨리 가지라?"


"... 아, 네."


나는 괜히 마른침을 꼴깍 삼킨다. 진짜 30년째 한 곳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다니...


아주머니는 먼저 오신 70대 할아버지 한 분을 의자에 앉혀놓고 머리를 만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손님과 얘기하는 걸 듣고 있자니, 머리 만지는 솜씨는 모르겠고, 말발이 장난 아니다. 


"아따, 넘 미리 걱정은 말고. 결과야 나와봐야 아는 건께."

"그럴라 하요."


대장 내시경 검사를 앞둔 할아버지가 숨을 크게 몰아쉬며 답한다. 아주머니가 할아버지 머리를 만지며 말한다.


"남자가 아프면 와이프한테는 암말도 말고 입 딱 다물고 있다가 세 마디만 해야 해라."

"그게 뭔데?"

"맛있어, 미안해, 고마워."

"맞아! 여사님 말씀이 정말 맞아!" 

"말이 안 나와도 연극이라도 그렇게 말해야 마나님에게 버림 안 받아라."

"긍께, 우리 여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사람 심리를 잘 아나 몰라."


난 어느새 찰떡콩떡 주고받는 둘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고개까지 주억거리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세월이 묻어나는 지혜에 믿음이 팍 간다. 


"어떻게 잘라 드릴까?"


내 차례가 되자, 아주머니가 묻는다. 난 의자에 앉아 3년 전쯤 찍은 사진을 내민다. 


"이렇게 잘라주세요."

"아따, 이런 사진을 주면 내가 어찌 안다요? 마스크에 안경 쓰고. 머리는 보이지도 않구먼."


맞는 얘기다. 

 

"그럼 그냥 알아서 손질하게 편하게 잘라주세요."

"내가 이쁘게 잘라줄게."

"아... 네."


별로 스타일에 집착하지 않는 난, 그냥 내 머리를 30년 장인의 손길에 맡기기로 결심하고 눈을 감는다. 다행히 아버지 때문에 더 조심하느라 쓰고 있는 마스크를 벗기진 않는다.


머리카락을 쑥덕쑥덕 자르더니 잠시 후, 아주머니가 말한다. 


"다 됐써라."


난 무거운 눈까풀을 겨우 들어 올린다.

 

어디, 어디... 좀 짧아졌나?


아주머니가 스펀지로 얼굴에 묻은 머리카락을 툭툭 턴다. 살짝 내 마스크를 내리고, 안을 들여다보더니 스펀지 든 손을 갑자기 뚝 멈춘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한다.


"워메. 겁나 이쁘게 생겨부럿써라."


풀어쓰면 와우, 진짜 이쁘네요, 다. 


내 50 평생 그렇게 신박한 칭찬은 처음이다. 


칭찬받을 환경에는 원래 '조짐'이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게 없다.


그냥. 훅!


그것도 그냥 이쁜 것도 아니고, 겁나 이쁘다니. 


후훗.


30년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탑재된 말발에, 습관적인 립서비스라 하더라도, 마스크 속 내 입꼬리는 이미 위로 한참 치켜 올라가 있다. 


머리모양이고 뭐고, 난 기분 좋게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고 미용실을 나온다. 팁 아니고, 커트 값이다. 


친정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자꾸 실실 웃음이 났다. 


친정 집 욕실에 들어가 드디어 마스크를 벗고 거울을 봤다. 근데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훅 튀어나왔다.


"워메, 어쩌야쓰까? 겁나 못 생기게 잘라부렀써야."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해도 그렇지. 이런 헤어스타일이 있나? 단발도 둥근 컷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모양에 삐죽삐죽 잘린 머리카락까지.


내 참. 겁나 이쁘다는 칭찬도 신박하게 들었는데, 아, 거길 또 가? 말아?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진다. 처음엔 분명 머리모양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내 눈은 어느새 머리보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디, 어디가 겁나 이쁜가?


겁날 정도는 아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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