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시골에 살아 가능한 일
"눈은 똘망똘망하던데, 키가 좀..."
남편이 굴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먹고는 말을 꺼냈다.
"그지? 좀 짧긴 하더라. 요즘 남자는 키가 얼마나 중요한데."
난 젓가락으로 병아리콩을 집으며 말했다.
"그래도 연하잖아."
"나이 차이가 너무 나. 6살 연하가 뭐야, 6살 연하가."
"배부른 소리 한다. 남자가 6살 연하면 힘도 세고 좋지."
"....?"
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마음에 걸린 말을 꺼냈다.
"근데 딸린 식구가 너무 많아. 시누이 시동생이 셋이나..."
"그건 그래. 차리리 광복이가 낫지."
"광복이?"
"그래, 얼마 전에 그 집에서 이바지도 받았잖아. 그 집 아저씨가 배 탔다고 통갈치 6마리나 주셨잖아."
"?"
울 집에는 딸이 둘 있다. 털 달린 놈, 털 안 달린 놈. 털 안 달린 놈은 '독립의 끝판왕'이라 벌써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얼굴 보기 힘들다. 오늘 우리 부부 대화의 주제는 털 달린 놈, 울 집 막내딸 겁보쫄보 '까뭉이'다.
2개월부터 키운 까뭉이는 중성화 수술을 안 했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섹스도 결혼도 안 하겠다 결심 섰다고, 자궁을 들어내진 않잖아.'
너무 의인화했나 싶었지만 어쨌든 있어야 할 자리에 뭐가 없으면, 그게 건강하다 할 순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안 했다.
시집은 안 보낼 거고, 새끼도 안 낳을 거다, 그냥 내가 결정했다. '난 너의 평생 보호자니까.' 그게 뭐, 비인간적일 수도 있는데, 어차피 '인간'은 아니니까. '내 책임은 딱 너까지만.' 하는 심정으로.
게다가 울 까뭉이는 겁보쫄보다. 동네 강아지만 보면 크기와 견종을 불문하고 다 짖어대니, 제주 이 좁은 시골에서 '성질 나쁜 까만 개'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그래서 수컷에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근데, 파란 지붕집 '똘이'는 예외다. 동네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는 카사노바, 그리스인 조르바다. 이미 여러 군데 제 씨를 뿌렸을지도 모른다. 크기도 비슷한 데다 엄청난 친화력의 소유자다.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반갑다 달려들었다, 기함한 할머니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딴 동네로 귀양까지 다녀온 특이한 이력의 똥꼬발랄 강아지다.
뭐, 여기까지는 괜찮다.
근데 이놈이 어느 날 앞집 돌담을 넘어 우리 집 마당까지 쳐들어왔다. 처음 우리 집 마당에 짧은 다리로 늠름하게 서 있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을 때, 난 내가 헛 것을 봤나 싶었다.
아, 안돼! 하다가도, 평생 수컷 향기 제대로 한번 못 맡아본 우리 불쌍한(?) 모태솔로 까뭉이를 생각하면, 좀 뛰어놀라 했다가, 덜컥 저러다 임신이라도 되면 어쩌나 싶어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저러다 큰일 난다, 대걸레자루 들고 겁줘서 쫓아냈는데, 그것도 며칠 효과가 가질 않았다.
요즘 정신이 산란하다.
아침마다 마당에 똘이장군 왔나 감시해야지, 똘이장군 보고 반가운 울 까뭉이가 꼬리를 흔들면, 문을 열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해야지, 산책 갈 때 똘이장군집 앞을 지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야지. 대관절 딸의 남친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뭘까?
정작 우리 집 사람딸의 남친은 사진도 못 봤는데, 털 달린 막내딸 남친의 잦은 방문을 두고, 우린 이러쿵저러쿵 말도 안 되는 수다를 떤다.
아마 삶이 너무 한가하거나,
혹은 너무 고단하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어쨌든 제주 시골에 살아 가능한 일이긴 하다.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