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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Jun 12. 2024

난, 상추가 무섭다

제주에 살며 무서운 것.

여긴 제주 '시골'이라기보다 '오지'다.  주택에 살면 뭐, 좋은 것도 많다. 밭뷰가 시원하게 눈에 걸리는 것 없이 넓게 펼쳐진다. 의자만 조금 옮겨앉아도 하루에 해 지는 걸 44번이나 볼 수 있다는 어린왕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집 오른쪽으로 해가 하루에 한 번 뜨고 왼쪽으로 해가 한 번 진다. 

이렇게 모르는 사이에 나뭇잎으로 페디큐어도 하고.

하지만 도시에 살다 온 나는 여러 가지가 무섭다. 처음엔 어둠도 무섭고 달려드는 모기도, 지네도 무섭다.


근데 요즘 우리는,

"텃밭의 상추가 젤 무섭다."


20년 전 서울 살 때 경기도로 텃밭 가꾸러 다닌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텃밭을 가꾸러 주말마다 경기도를 가다니... 주말에 아이랑 남편이랑 텃밭에 가서 풀도 뽑고 물도 주고 저녁 먹고 서울로 돌아오면, 차가 오지게도 막혔다. 집 앞의 100미터를 가는 데 1시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


제주에 내려와 집의 텃밭을 보고 결심했다.


그래, 그때 경험을 살려 한번 잘해보자!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호박, 수박. 다 심어봐야지!


근데 망했다.


안 자란다. 다 쪼그맣다. 고추도 열리다 말고 상추도 자라다 말고, 뭐, 옥수수도 조그맣게 열리다 만다.


다 하다 만다.


풀도 열심히 뽑고 매일 물도 열심히 준다. 제주 쨍한 햇빛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애 혹시 무정자증 아니야?"

열리지 않는 가지를 한참 들여다보며 가끔 의심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쁘다 힘내라, 칭찬도 자주 해줬다. 옆집 탐스런 가지를 얻어다 보여주며 '참교육'까지 했다. (이전에 심난해서 쓴 '가지를 참교육시키는 법'참고.)


근데 옆집 유자네 텃밭도 광복이네 텃밭도 우리와는 다르다. 뭐든 크고 탐스럽고 주렁주렁 잘 열린다. 고추가 오이가 호박이 수박이. 근데 우리 텃밭은 왜 그러냐? 


그러다 올해 그 비결을 광복이네 아저씨에게 들었다. 내 신세한탄을 듣더니 아저씨가 물었다.

"비료 뿌렸어요?"

"네. 조금요."

"조금 말고, 그 정도 텃밭이면 비료 두 포대 사다 쏵 뿌리고, 흙이랑 막 섞어요."


그날 당장 비료를 사다 마구 뿌렸다. 아직도 못 파낸 돌도 낑낑대며 파서 버리고, -제주는 땅을 파면 무조건 돌덩이가 나온다.-흙을 높여 두덩도 줄 맞춰 만들고, 그리고 대망의 모종을 사다 심었다.


상추 3종류, 치커리, 루꼴라, 오이, 고추.


두근두근.


며칠이 지났다.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고.


와우!


놀랄 노자다. '우리 집 밭이 달라졌어요.' 하루가 다르게 자라더니, 텃밭이 꽉 찬다. 물 한번 주고 돌아서면 또 자라 있다.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아기 고추만 한 오이가 여기저기 매달리더니, 순식간에 마트에서 파는 토실토실한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무섭게 자란다.
까칠한 가시 달린 탐스런 오이.

이게 꿈이냐 생시냐?

역시 밭이 문제였어.


강진 읍내의 밥 파는 노파가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물었다.

"부모의 은혜는 한 가지인데, 어머니는 수고로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가르칠 때 아버지는 무겁게 보고 어머니는 가벼이 여겨 성씨도 아버지를 따르게 하고.. 너무 치우친 것 아닌가요?"


"아버지께서 나를 낳아주신 까닭에 아버지를 나를 처음 태어나게 해 주신 분으로 여긴다네. 그래서 그런 거지."


"나리 말씀이 꼭 맞지는 않습니다. 초목에 견준다면 아버지는 씨앗이고 어머니는 땅인 셈이지요. 씨를 뿌려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 크게 힘든 일이 아니지만, 땅이 양분을 주어 기르는 일은 그 공이 몹시도 큽니다. 종류에 따라 그 씨앗을 따라가지만 몸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땅의 기운이지요."

밥 파는 노파가 얘기했다. 다산이 한낱 밥 파는 노파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텃밭에서 딴 오이와 깻잎, 부추

심은 모종은 똑같은데, 밭이 비옥해서인가보다.


근데 상추가.... 무섭다.


어찌나 빠르게 자라는지. 자고 일어나 텃밭을 들여다보기가 두렵다. 아무리 밑을 뜯어먹어도 자라도 또 자란다. 이젠 제법 키도 커서 한그루 묘목이다. 좀 있으면 크리스마스 장식도 할 수 있겠다.


물론 매일 점심때마다 상추쌈을 한다. 돼지고기 편육에, 오리고기 고추장볶음에, 소고기 양념불고기에 닭가슴살 볶음에. 고기는 돌고 돌리면서도 상추쌈을 한다. 잎이 어찌나 큰지 한입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근데 안 줄어든다. 줄어들기는커녕 너무 꽉 차서 상추가 다 터지려 한다. 상추랑 매일 힘든 전쟁을 치르는 느낌이다.


"오늘은 몇 개 따올까?"

남편이 점심때 커다란 바구니를 챙겨들고 묻는다.

"한 15개만."

작은 숫자에 남편이 시무룩하니 고개를 숙이고 텃밭으로 향한다.

아, 이걸 언제 다 먹나.

터질듯한 상추를 쳐다보며 남편은 한숨을 푹 쉬고 있을 게다.


외식도 못한다. 외식은 무슨 외식? 집에서 오늘도 쑥쑥 자라고 있을 상추가 있는데... 한식 뷔페에 상추라도 나오면, 화들짝 놀란다. 집에서 부지런히 상추 뜯어먹어야 하는데, 여기서 우린 뭐 하나? 죄책감마저 든다. 외식하고 돌아와 텃밭을 들여다보는 날은 더 괴롭다.


상추가... 원망스럽다.


까뭉이와 동네 산책하다 마니네 아저씨에게 물어본다.

"혹시 텃밭에 상추 심으셨어요? 안 심으셨으면, 저희 상추 좀..."

아저씨가 심각한 얼굴로 답한다.

"처치곤란입니다."

"아, 네."

난 쓴웃음을 지으며 지나간다.


딱 그 말이 맞다.


처치곤란.


미국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한다.

"야, 진짜 어쩌냐? 언니는 상추가 무섭다.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네. 나한테 그런 텃밭 있으면 난 하루에 상추겉절이해서 100장도 뜯어먹겠다. 싱싱한 상추 뜯어서, 쌈도 해 먹고 겉절이도 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아, 부럽다!"

그러면서 겉절이 양념을 자세히도 알려준다. 그날은 상추쌈에 상추겉절이까지 해 먹었는데도 상추잎 20개도 다 소화 못했다. 큰일이다, 큰일. 후유!


살다 살다 상추가 무서운 경우는 또 처음이다.

물론 겉절이도 해 먹었다.

동네에는 혼자 사시는 까칠한 점순네 할머니가 계신다. 개 이름이 점순이다. 잘 안 짖어서 2년 내내 '과묵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러줬는데, '점순이'란다. 동백꽃의 그 '점순이'. 제주 살면서 겪은 제일 허탈한 일이다.


그 집 앞을 600번도 더 지나다녔는데, 인사를 인사를 안 받으신다. 아마 3년을 채워야 아는 체를 하고, 30년은 살아야 동네 사람으로 인정을 하시려는지.


근데.

점순네 할머니가 까뭉이를 끌고 돌담을 지나가는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다.


"어디 살아?"

"저기, 저 하얀 집이요."

"텃밭 있어? 없으면 상추 좀 가져가."

"저, 저희도 텃밭에 상추 심었어요."

난 괜스레 말을 더듬는다.


2년 반이나 우리와 까뭉이를 아는 척도 안 한 제주 할머니가 지나가는 불러 세우고 상추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집집마다 처치곤란 맞다.


"아, 난 더는 못 먹어!"

어느 날 점심 때, 남편이 집어들었던  커다란 상추잎을 식탁에 다시 턱 하니 내려놓으며 말한다.

"뭐? 벌써 그만 먹는다고? 오늘 몇 장 먹지도 않았잖아? 더 먹어! 텃밭 어쩌려고 그래?"

"...?"

난 오늘도 남편을 재촉한다. 상추 먹으라고. 참, 살다보니 별 재촉을 다한다. 

이렇게나 크다.

친구들이 서울에서 놀러 와 텃밭을 보며 부러워한다. 굵게 자란 오이를 딱 따서, 가시를 쓱쓱 숨을 죽이고는 물에 씻어, 그대로 와삭와삭 먹으며 맛있단다. 상추도 잔뜩 따서 고기쌈을 하며 싱싱하단다.


... 몰라서 그러는 거야.


상추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난 눈을 흘기며, 바구니에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인 상추들에게서 얼른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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