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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사탕 Jan 13. 2022

나에게 난임이라고 했다.

20년 12월은 나에게 어느 해보다도 추운 겨울이었다.



비록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 쉽게 먹어지지도 않았고, 남들처럼 자연스러운 인간사의 한 단계라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결혼은 제도의 활용으로 이해한 나에게 아이라는 무겁고 어려운 세계가 나의 부분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조차가 막연했던 것이다.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겨우 하는데 나보다 더 불완전한 존재를 내가 과연 키워낼 수 있을지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이를 갖고 갖지 않고는 내 마음 가짐의 문제이지 물리적인(생리적인)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그 어떤 가정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경우였다. 그러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마음의 준비가 되면, 원하는 시점에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이 있었다. 사실은 그게 오만하다고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도 그럴 것이 삼십몇 년을 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크게 바라는 바도 없었지만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은 대체로 어렵지 않게 손에 쥐어졌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난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인생 첫 관문이 되었다.


난임을 알게 된 건 서른 하나에 자궁내막증 수술을 하고 5년이 지난 때였다. 자궁내막증은 재발률이 높아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호르몬 약을 처방받아야 했었다. 그래 뭐, 자궁내막증도 내 인생의 관문이었다면 관문이었을까, 그때는 상황이 이미 벌어진 터라 절망할 시간이 없었다. 병명을 알고 수술 날짜를 잡기까지는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거든. 나에게 생각이란 걸 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었다. 덕분에 처한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재발을 하더라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기로(이것 역시 운명이겠거니)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근데 이 나비효과가 난임으로 연결될지 몰랐다는 것이 경기도 오산이었다는 것. 물론 그 당시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 선생님은 이 병으로 인한 난임 가능성을 나에게 말해줬을 수도 있다. 내가 주의 깊게 듣지 않았거나, 혹은 그 시절의 나에게 아이를 가질 의사가 있느냐고 에둘러 말했을 수도 있지. 아이를 가질 거면 수술 직후인 지금이 적기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의 나는 당연히 당장은 애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했을 것이고(결혼조차도 생각에 없던 그때 내 나이는 고작 서른 하나였다) 그 사이 자궁내막증이 난소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걸 까맣게 잊었던 것 같다. 내게 중요한 건 재발이었거든.



그렇게 재발 없이 5년이 지난 어느 날, 담당의사 선생님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호르몬 조절 약을 처방해주다가 결혼을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결혼은 했고 아이는 아직 없다고, 별 것이 없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했더랬다. 의사 선생님은 짐짓 심각한 얼굴로 난소 기능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고 몇 개의 피를 뽑았던 날이었다. 그때까지도 내가 난임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고.


결과는 참담했다. 내 난소는 나이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수치가 낮았다. 결과지를 본 의사는 이 병원에서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당장이라도 난임센터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_???


이게 무슨 말인지 리스닝은 되는데 해석은 안되고, 내가 처한 상황을 이 자가 말하고 있는 건지 남의 일을 내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듣고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분명히 내 것인 뇌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는지 입으로만 네네, 거리다가 진료실을 나왔다. 남편에게 내가 들은 그 단어들을 전화기 너머로 전했다. 내 난소 나이가 측정이 안될 만큼 상태가 안 좋으며 난임센터에 당장이라도 가보라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나는 해석이 안되니 네가 판단해보라고.


멍청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검사 결과지를 뽑아보았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목놓아 울었다. 내가 왜 우는지 이유도 모르겠는데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지난겨울은 그러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수치가 적혀 있는 결과지를 바라보며 내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처음엔 이런 상황을 예견해주지 않은 의사를 원망했고, 수술까지 했지만 내가 앓았던 병에 대해 무지했던 나를 원망했다. 그러면서도 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알고 싶었다. 어느 지경인 건지,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그렇게 난임 판정을 받고 3주가 흘렀을 때 난임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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