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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플랑 Oct 24. 2021

엔젤박스

 오전 2시 50분 윤정남 할머니가 죽었다. 중환자실에서 ‘라인 정리’를 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가 죽었음을 직감했다. 터덜터덜 계단을 올랐다. 중환자실은 6층에 있었는데,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할머니 머리맡의 라디오를 생각했다. 보호자들이 두고 간 것이다. 의식이 없는 환자의 머리맡에는 간혹 이렇게 보호자들이 가져다 둔 소형 라디오가 작게 켜져 있는 경우가 있었다. 환자의 취향을 반영한 음악이 나오기도 하고, 보호자들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흘러나오기도 한다. 할머니의 라디오에서는 뽕짝도 흘러나오고, 클래식도 나왔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올드 팝 시리즈와 영화 음악 시리즈였다. 영화 음악의 경우에는 시간대와 영화 장르가 아무 구분 없이 섞여 있는 앨범이었는지, 더 터틀즈의 ‘해피 투게더’ 가 흘러나오다가 다음 곡으로는 쿵푸팬더의 ‘쿵푸 파이팅’이 나왔고 그렇게 뜬금없는 선곡에 나는 자주 웃었다. 삼 주 남짓한 시간동안 매일 할머니에게 가서 중심 정맥관이나 기관절개부위를 소독하고, 욕창 소독을 하면서 그 노래들을 들었다. 


 요 며칠, 할머니의 생체 징후들이 요동치는 것을 보면서, 중환자실 앞에 심각한 표정의 보호자들이 주치의 선생님과 잦은 면담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터였다. 오늘 당직 시간 직전에는 할머니의 맥박수가 치솟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할머니 앞에 서서 모니터를 보면서 서 있을 때에도 머리맡의 라디오는 켜져 있었다.


 ‘라인 정리’는 인턴 업무 중에서 단연코 모두가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일이다. 환자가 사망하면 환자의 몸에 꽂혀 있던 이런 저런 도관을 뽑고, 관을 꽂은 자리를 꼬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인명은 제천이고, 대부분 환자분들은 당직 시간에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누가 라인을 정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날의 당직 인턴이 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3주간 내 당직 시간 안에는 돌아가신 분이 없어 늘 다음 날 정규 근무가 시작하고 나서야 지난 밤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듣곤 했었는데, 의사가 된 지 3주 만에 내게도 이 업무가 처음 주어진 것이다.


 라인 정리를 할 인턴이 도착하면 간호사는 ‘엔젤 박스’라는 것을 가지고 온다. 솜이나 거즈 같은 것들이 들어 있고, 상처부위에 붙일 살색의 반창고들이 들어 있다. 막 사망한 환자의 몸에는 죽음과의 격렬한 싸움의 흔적이 코피로, 상처로, 멍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을 닦아내고 가리기 위한 준비물들인 것이다.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코피가 나거나 멍이 든 곳은 없었다. 기관절개부위에 삽입된 관을 뽑고 중심정맥관도 뽑았다. 지혈이 잘 되지 않았다. 심장은 이미 멈추었기 때문에 피는 기다리면 멈출 것이다. 하지만….


 “수쳐 세트(suture set, 봉합에 필요한 물품들이 들어있음)랑 가위 주세요.”

 지나가던 담당 간호사에게 요구했다. 반창고를 붙여 가릴 수도 있지만 깨끗하게 봉합해 드리고 싶었다. 그러자 간호사가 의아해하면서 되묻는다.

 “꼬맬 게 있어요? 그냥 반창고 붙이셔도 되는데. 가위는 컨타 통에서 가져다 쓰세요.”

 컨타 통은 오염, 그러니까 contamination된 물품들을 소독하기 위해 모아 두는 통이다.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사실 사용했던 가위를 그 통에서 가져다 써도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왠지 그러기 싫었다. 가져다 달라고 다시 우겨서 수쳐 세트와 가위를 얻어 냈다. 장갑도 멸균적으로 끼고, 봉합도 정성들여서 했다. 바쁜 새벽 시간에 유난이라고 생각했는지 간호사가 팔짱을 끼고 멀뚱히 나를 보았다. 간호사 눈치를 보며 열심히 봉합을 하는데 할머니 머리맡의 라디오가 보였다. 라디오는 꺼져 있었다. 우리 둘의 시간을 채워 준 그 라디오. 내가 제일 좋아했던 노래는 비치 보이즈의 ‘Wouldn't It Be Nice' 였는데, 어린 연인이 좀 더 빨리 나이 들어서 결혼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가사였다. 가사보다는 흥겨운 리듬이 좋아서, 중환자실의 무서운 기계음들 대신에 그 리듬에 집중하며 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Good night my baby, sleep tight my baby.(잘자요 내 사랑)라는 가사와, wouldn't it be nice if we could wake up in the morning when the day is new(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에 우리가 함께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울컥 하면서 뜨거운 것이 배꼽에서 차올라서 눈에 고였다.

 “선생님, 우는 거예요?”

 내가 빨리 봉합을 마치고 가기를 기다리던 간호사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요.”

 거의 소리를 지르듯 말하고 반창고를 붙여 마무리 한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창피하기도 했고 야속하기도 했다. 나에게도 애도할 시간이 필요한데. 앞으로 환자가 사망할 때마다 이렇게 슬프면 의사 일을 어떻게 계속 하지? 아무래도 적성이 아니었나봐.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복잡했다.


 이제, 잠에 드는 것에 실패해서 밤을 새우며 일기를 쓰는 이 순간에, 갑자기 궁금해진다.


 할머니의 마지막 시간은 무슨 곡이 채워 주었을까? 


 모든 음악이 다 마음에 드셨을까?

 이제는 영영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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