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도전 속에서, 오래된 나를 다시 만나다
나는 늘 운동에는 소질이 없다고 믿어왔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만 되면 운동장에 나가기 싫어
온갖 핑계를 대곤 했다.
달리기에서는 언제나 꼴찌,
공 던지기나 줄넘기마저 서툴렀다.
그 기억이 내 마음 한쪽을 오랫동안 움츠러들게 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운동은 나와 맞지 않는다’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살았다.
그런데 은퇴를 앞두고 우연히 파크골프를 접했다.
필드에 처음 섰던 날,
낯선 공간의 초록빛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푸른 잔디 위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바람,
채끝에 닿은 공이 내는 맑고 청아한 소리.
“어머, 이 소리… 너무 좋다.”
순간의 울림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운동이란 단지 기록이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을 깨우고 순간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는 걸.
더 놀라운 건 내 안에서 발견한 가능성이었다.
첫 샷은 불안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샷은
점점 안정되고 멀리 뻗어 나갔다.
코치는 웃으며 말했다.
“이상하네, 연구 대상이에요.”
그 말이 내 안의 불씨를 살렸다.
오랫동안 “운동엔 소질이 없다”라고 믿었던
그 믿음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몰랐던 나를 길 위의 필드에서 만났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일’을 해왔다.
퇴직 전에는 경력 단절 여성이 창업을 통해
다시 사회로 설 수 있도록 돕고,
소상공인이 스스로의 길을 이어가며
성장하는 과정을 지원했다.
3평 남짓한 작은 커피전문점이
부산의 대표 카페로 자리 잡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이 작게나마 변하는 순간,
그 곁에서 함께 웃고 울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내 일을 사랑했던 이유였다.
특히 대학생과 한부모 여성을 지도했던 기억은 각별하다.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표정에는 닫힌 창문 같은 굳은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불안하던 눈빛 속에 반짝이는 설렘이 스며드는 순간이 있었다.
“선생님, 제가 해낼 수 있을까요?”
조심스레 묻던 그들에게 건넨 한마디의 격려는
그들의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고 돕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 또한 내가 놓치고 있던 또 다른 나였다.
얼마 전에는 광화문에서 열린 클라이밍 페스티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낯선 외국인들이 행사장을 둘러보다 돌아서려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다가가 서툰 영어로 말을 걸었다.
“Would you like… to try climbing?”
“This is a fun climbing experience. You can try now.”
말은 어눌했지만, 그 한마디가 용기가 되어
그들은 웃으며 도전에 나섰다.
독일인 여성, 미국인 가족,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
그들이 벽을 오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할 때,
내 마음은 뜨겁게 벅찼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미 여러 번
이런 ‘낯선 도전’의 문 앞에 서 있었던 사람이다.
일본어 한마디 모른 채
예비 창업자들을 이끌고 일본 도쿄 식품 박람회 ‘푸덱스(FOODEX)’에
다녀왔던 일도 그랬다.
그때는 무모했다고 생각했지만,
몇 년 후 함께 갔던 대표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그 시간은 제게 큰 배움이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무모함이라 여겼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내가 생각했던 나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사람이다.
운동을 못 한다고 믿었던 내가 운동의 기쁨을 알게 되었고,
‘일’이라 여겼던 자리에서
타인의 성장을 돕는 행복을 발견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 수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은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너는 아직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나는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길은 언제나 나를 새로운 풍경으로 이끌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이끈다.
풍경보다 값진 건, 길 위에서 마주한 또 다른 나였다.
나는 이제 안다.
은퇴 이후의 삶 또한 그러리라는 것을.
앞으로 걷게 될 수많은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새로운 나를 만나며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 길 끝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내가
손을 흔들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