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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Nov 11. 2020

천천희 우러나도록

Recipe 1. 도라지차

@최명순



도라지차

기간지에 좋타

생강 도라지 대추

파뿌리 같이

큰주전자에 물 적당희

센불에 팔팔 끓으면

제일 약한불로 줄여서


@최명순



천천희 우러나도록

우려서 한잔씩 마신다

추가

꿀이나 오미자 추가해서 먹으면 더 좋타






매년 환절기에는

늘 목부터 시작되는 감기를 앓았다.

어린아이처럼 쪼르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으슬으슬 목감기 신호가 온다고 말하면,

엄마는 야단날 일이라도 생긴 듯,

부엌 서랍장 아래 놓아둔 꿀단지 속 '꿀'이 얼마나 남았냐며,

자기 전에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라고 말씀하신다.


"야야. 꿀은 오래 놔둬도 상관없데이.

뜨거운 물에 꿀 한 숟가락 타서 휘휘 저어 마신 다음에 푹 땀 흘리면서 자래이."


한결같은 당부의 말.

금세 흘려듣고야 마는 말.


어느 해의 엄마는 손톱 밑이 새까매지도록 깐 도라지를

가을 햇빛에 한뿌리 한뿌리씩 고이 말렸다.

그 곁에서 태양 맛을 실컷 맛보느라 쪼글쪼글해진 대추,

매운 기마저 쏙 빠진 듯 한껏 쪼그라든 생강을 함께 보내주셨다.


택배를 받은 저녁, 평소라면 꺼내보지도 않을

대형 스테인리스강 주전자를 서랍장에서 꺼내

도라지, 대추, 생강을 넣고

도라지차를 한소끔 우려냈다.


센불에서 약불로 옮겨가는 동안,

노오란 물이 찬찬히 우러난 도라지차에

달달한 꿀 한 스푼을 탔다.


뜨근한 도라지차 한 모금이 들어가자,

따스한 햇볕 한 줌에 눈녹듯

종일 격무에 시달리느라 경직됐던 목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손글씨 : 최명순

경북 Y군 출생. 1남 3녀 중의 셋째.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국민학교도 못 들어갈 뻔했으나, 외할아버지를 조르고 졸라 뒤늦게 입학,

본인 주장에 의하면, 졸업할 때까지 반에서 상위권을 놓쳐본 적이 없다.

포도, 수박을 비롯해 특수작물 농사만 40년 동안 지어오신, 특작계의 베테랑.

호박, 오이, 토마토, 가지 등 텃밭 가꾸기는 취미, 특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 류예지

경북 Y군 출생. 1남 3녀 중의 셋째.

대학에서 문예창작학 전공. 기획사, 출판사, 문화공간 등지에서 1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해옴.

2018년에 독립출판 인터뷰집 <내가 딛고 선 자리>를, 2021년에 에세이집 <어떤, 소라>를 썼다.

엄마의 강인함을 물려받고 싶었지만, 아빠의 유유자적함을 물려받아 한량 기질이 다분.

취미는 무엇이든 '글'이 되게 써보기, 특기는 부모님 부아 치밀게 해서 오래오래 만수무강하게 만들기.

멀지 않은 어느 날에 엄마에 관한 책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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