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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Nov 12. 2020

넙쭉이는 단감, 다시마 국물용

Recipe 2. 단감과 다시마

@최명순



넙쭉이는

단감

@최명순


다시마

국물용





본가인 Y군 옆, A시에는 지역 농수산물을 취급하는 농협 농산물공판장이 있다.

부모님은 매 계절, 저온저장고에 쟁여둔 과일이 게눈 감추듯 사라지고 나면

십 년은 훨씬 넘게 타고 다닌 애마,

탈탈거리는 크림색 낡은 코란도를 끌고 공판장에 가신다.


이른 아침, 과일 사러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와

말끝에 '~~ 하니?"를 붙이며

제법 교양 있는 서울 아주머니 말씨를 흉내 내는 엄마.


"저번에 보내준 사과 다 먹었니?

서울 과일 값 비싸니?

하긴 몇 푼 버는 돈 갖고 과일 사 먹으려면 주머니가 얼마나 헤프겠니?" 


(정적 후, 본인 스타일 되 찾음)


"너거 아부지가 홍시 먹고 싶다는데 좀 사서 부쳐주리?"


홍시가 먹고 싶다고 말씀하신 건 아부지인데,

왜 우리한테 홍시를 부쳐주겠다는 건지,

그 마음 모를 것 같다가도, 참 알 것 같은 명순 씨.


(두어 시간 후)


"올해는 장마가 길어서 부사가 참 비싸다야.

그래도 너 어무이가(본인을 가리키는 말) 거금 팔만 원 들여 샀다."

"우리 엄마 비싼 부사도 사고, 능력자다 능력자."

"먹고 싶은 거 원없이 먹고 살라고 이키 열심히 살아왔데이.

너거도 어무이, 아부지처럼 열심히 살면 된데이."


(일장연설 후, 다시 목청을 가다듬고)


"딸, 홍시 사서 부쳐 줄까?"


'홍시 사서 부쳐줄까'라는 말이

이렇게나 달콤할 일인가.


*


 엄마가 보내준 A시 농협 농산물공판장 마크가 크게 새겨진 박스 안에는

둥글 넓적, 크고 작은 잘생긴 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감 사이사이, 알이 굵은 값비싼 부사 몇 알도 들어 있고,

귀퉁이에 천덕꾸러기처럼 끼어 있는,

검은 봉지 안의 물건은 무엇일까?


본격적으로 검은 봉지를 헤집기 전,

제일 잘생긴 감을 한 알 집어

바짓단에 쓱쓱 비벼 깨무는 순간,

떫고 비린  땡감 향이 입안 가득 번진다.


"에잇, 퉤퉤.

단감 아니었어?"


그러다

감, 사과, 검은 봉지 사이 그 어디 즈음

농협 봉투를 대충 찢어 만든 종이,

그 위에 또박또박 엄마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넙쭉이는 단감

다시마 국물용


(검은 봉지 속 물건은 보지 않고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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