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예지 Nov 24. 2020

물 끓으면 시금치 넣고 다시

Recipe 5.  시금치무침

@최명순



시금 삶는법 물 끓으면

시금치 넣고 다시끓으면

듸집어서 끓으면

해거라




기분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늘어져 바닥을 모르고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주 어릴 적 흘리듯 보았던 만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린다.

시금치 통조림을 먹은 뽀빠이의 양쪽 팔 근육이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에 공기를 주입하듯 순식간에 펌핑되는 장면!


어릴 때는 시금치만 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한 번 가라앉은 마음이

값비싼 음식에도 손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럴 때면 푸른색의 음식이 시시때때로  당겼다.

담백하게 밑간을 한 나물반찬 몇 가지를 놓고 배불리 밥을 먹는 저녁이 그리워졌다.

집을 떠나온 후,

스스로 해 먹기 가장 난해한 음식으로 치부했던 나물 반찬!


엄마의 귀에 그런 이야기가 소문처럼 들어갈 때면,

 텃밭에 기른 '생'나물,

시금치 같은 것을 농민신문에 둘둘 말아 양껏 보내오시곤 했다.


나물 반찬, 특히 시금치는 잘 데치는 것부터가 맛의 성패를 좌우했다.

적당한 데치기야말로 씹는 질감을 결정했으므로.

엄마의 우선순위는 잘 데치는 일,

'다시' 잘 뒤집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리라.


물 끓으면 시금치 넣고 '다시',

다시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 일.


뽀빠이의 시금치는 아닐지라도,

엄마의 시금치 삻는 법을 통해


조금씩,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명순의 레시피' 이전 글 : https://brunch.co.kr/@anding-credit/61


https://brunch.co.kr/@anding-credit/6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