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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Dec 01. 2020

기름 넉넉희 부꼬

Recipe 6. 미역국


@최명순



싹씨어서 후라이펜

적으면 검은 솥에

기름 넉넉희 부꼬

뽁다가 간장넣코 다시다좀



@최명순



넣코 뽁아라

뚜껑 살짝 덥어




네 남매가 순서대로 집을 떠난 후,

성급하게 가을걷이를 끝낸 듯

텅 비어버린 부모님의 밭엔

우리를 대신할 농작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중에서도 깨 농사를 열심히 지었다.

수박이 끝나도 깨를,

포도가 끝나도 깨를,

깨는 이모작이 가능한 농작물이면서,

음식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재료이기도 해서였다.


그래서일까.

늦가을을 지나 첫서리가 올 때까지

분주히 깨밭을 가꾸는 데, 엄마는 남은 한 줌의 힘을 끌어 모았다.

많은 것들이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어도

깨밭만큼은 여름 한낮처럼 푸르른 생기를 잃지 않았다.


탈곡기와 도리깨를 번갈아 활용해 깨 타작을 하다 보면,

부모님의 하루 해는 꼬박 저물었다.

탈곡된 깨를 긁어모아

읍내의 참기름 방앗간으로 서둘러 달려간 엄마는

말간 자태를 뽐내는 고소한 기름병을 받아 안아

당신의 가슴에 소중히 품었을 테지.

 

*


레시피 속 주어는 깨끗이 지워져 있었지만,

다행히 그것을 알아채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것은 늦가을까지 이어진 엄마의 짠내 가득한 수고가

 한 줌의 고소한 참기름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였으니까.


기름을 아낌없이 넉넉히 부어 만든 미역국,

혈액순환을 돕고 피를 맑게 할

 한 그릇의 따스한 사랑이

우리에게 닿기까지 감내해야 할 지난한 노고의 이야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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