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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Dec 07. 2020

그냥 두면 썩는다

Recipe 7. 마늘과 무

@최명순


O화*야 마늘 1번 헹구어

넣고 다찌어서(다 찧어서) 비닐봉투에

넣어 쟁반에다 팬하게밀어서(편편하게 밀어서)

펴놓고 먹어라 그냥두면썩는다

무는 채처서(체 쳐서) 뽁아먹어봐라


*o화 : 둘째 언니의 이름




엄마는 택배를 보낼 때마다 언제나 당부할 것들이 많았다.

박스 사이사이, 재료에서 스며나온 물기에 젖어

 찢겨버린 종이의 단면 위 흘려 쓴 글씨에는

엄마의 걱정 어린 조언과 안부들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이를 테면 손질을 막 끝낸 마늘이나

밭에서 갓 뽑은 무를 오래 두고 보관하는 방식에 대해,

혹은 우리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들에 대해.


엄마의 부엌에서 음식 재료가 썩어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이파리 하나하나 생생하게 푸른 빛을 띠던 재료들이

서울 집 다용도실에 부려질 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채며 과일은 생기를 잃어버렸다.

보관을 잘못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서울 공기가 나빠서인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오랜만에 요리라도 할라치면,

재료 손질에만 한참 동안 시간이 걸렸다.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은 이유로.


썩은 무의  단면을 동강동강 잘라내다 보면

마음속 어딘가가 써걱써걱 도려진 듯 서늘했다.

그때마다 아프게 깨달았다.


"세상에 모든 진귀한 것들도

그냥 두면 썩는다.

그냥 두면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냥 두면 가치가 없어진다."


그러니, 모진 무관심 속에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가

손쉽게 버려지지 않도록

 조그만 더 정성을 기울여

들여다 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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