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스펙이 있다. 죽음 및 암과 관련된 특별한 스펙. 내가 스물일곱 살 때 아빠는 59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식도암으로 1년간 투병하시다 패혈증으로 돌아가신 것이었다. 이후 나는 폐암 말기 환자분의 전국 자전거 여행을 따라다니며 글을 썼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간 앞에서 담담하게 시속 15km로 하루 일정한 양만큼 자전거를 타셨다. 그분은 책이 출간되기 며칠 전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 후, 나는 ‘죽음’을 과학적으로 푼 EBS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쓰는 작업을 맡았다. 죽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책을 읽었고, 방송국에서 받은 수많은 자료들을 끌어안고 연구 및 구성하여 글을 썼다. 이후, 안면 골육종으로 두 눈을 잃은 스물다섯의 청년을 만났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길 원했다. 그를 인터뷰한 글을 온라인에 올리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생을 마감했다. 그 후, 내가 암에 걸렸다.
암에 걸리기 이전까지, 나는 죽음에 대해, 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엔 활기와 명랑함과 밝은 빛으로 빛나는 부분도 있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버티고 견디고 가까스로 살아내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영역이 많다. 이 세계와 저 세계가 너무 멀어 보이지만 실상 동전의 양면 같기도 하고, 한끝 차이이기도 하다. 활동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내가 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되고는, 곧바로 종합병원에 드나들며 온갖 검사에 정기 진료에 항암까지 적응하게 된 것을 보면 그렇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거의 매일 친구들과 아니면 혼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었고, 과자나 밀가루 음식들을 마음껏 먹고, 전시회나 음악회도 가고, 어디든 걸어 다니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웠다. 새벽 일찍 일어나 수업을 준비하고 강의를 나가는 일상생활도 즐겁게 해냈다. 하지만 암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내 삶은 180도 바뀌었다. 항암을 하면서 활동의 양과 폭이 대폭 제한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무한히 주어진 자유 시간에 나는 뜨개질 같은 취미들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TV나 유튜브 동영상 등을 보기도 한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내겐 하나의 쉼이다. 친구들을 만날 때는 조금 특별한 음식점이나 카페를 가서 즐긴다. 그들을 만나는 시간과 공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과 공간으로 느껴진다. 항암 중 나누는 그들과의 웃음과 이야기들은 각별히 소중하다.
암에 걸린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많이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곳 저곳에서 정성 가득한 선물들을 많이 받고, 지속적인 격려와 응원을 받기도 한다. 죽음과 연결된 병을 앓게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된다.
인생은 여행이라고들 말한다. 나는, 내 책의 주인공이었던 폐암 환자 김선욱 선생님의 자전거 여행을 보면서 더더욱 그것을 물리적으로 깨달았었다. 암 투병 중이었던 선생님은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몰면 안 되었지만, 느리고 꾸준한 속도로 페달을 밟아 6개월의 전국 자전거 여행 대장정이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내 인생의 여정 역시 암에 걸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예전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그러나 예전보다 훨씬 밝은 눈으로 이루어지는 여행. 무엇보다 암 환자가 된 나에겐 ‘세상의 필요와 나의 갈망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소명의식이 더욱 또렷해졌다. 내 삶의 목적, 내 삶의 의미, 내 삶의 소명을, 암을 만나면서 매일, 의식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