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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Aug 12. 2022

잘 파는 사람들의 비결

부산 영도상회 사장님의 세일즈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 부산 출장을 다녀왔다. 가격이 가장 합리적이고 부대시설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영도 근처 호텔을 숙소로 잡게 되었다. 저녁에는 '부산에 가면 모름지기 회를 먹어야 한다'는 관념 탓에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자갈치시장 맛집 검색에 회의 느끼며 돌아선 찰나 환한 불빛이 비추는 회 센터를 별견했고, 이곳에서 나는 운명적으로 생활의 달인에 나올 법한 영업의 신을 영접했다. 바로 영도상회 사장님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동행한 지인까지 사장님의 영업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5분 만에 홀린 듯이 주문하고, 홀린 듯이 계좌 이체해버렸다. 정신 차리고 사장님의 칼질에 떠지는 회들을 봤을 때는 '그래, 너희는 마땅히 내 입에 들어올 만하구나.'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과연 어떤 포인트에 나의 영혼은
홀려버렸을까?'

 

 사장님의 영업 노하우를 낱낱이 파헤쳐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결론 내린 그의 영업 비결은 이렇다.


1. 영도상회 자리의 이점을 200% 활용했다.


 영도상회의 위치는 입구 바로 옆이다. 그래서 회센터 방문자는 누구나 한 번쯤 이곳을 지나가게 된다. 사장님은 이런 자리의 이점을 200% 활용했다. 등장과 동시에 그는 내게 말을 건넸다.

 "아가씨, 잠깐 와보세요. 내가 설명을 해줄게요. 여기는 정찰제라서 가격이 다 똑같아. 주문 넣고 2층에 가면 자리 있으니까 앉아서 먹으면 돼.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들어서자마자 잠깐 와서 설명을 들으라니 우리는 그가 회센터 가이드쯤 되는 줄 알고 오해했다. 이곳에 통용되는 룰을 교육받아야 회를 구매해서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거부감 없이 그의 말에 경청했고 정보를 주는 그를 두고 발걸음을 쉽사리 옮길 수가 없었다.


2. 복잡한 메뉴 선택 고민을 확 줄여줬다.


 나와 동행인은 오후 4시쯤 간단히 치킨 한 마리를 먹고 난 상태였다. 크게 배고프지도 않았고, 떠놓으면 어떤 회인지 구분도 못 하는 회알못들이었다. 맛집에 줄 서있으면 미련 없이 턴 하는 먹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떤 회를 먹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어리바리한 두 눈빛을 그는 단번에 간파한 게 분명하다.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눈알만 굴리고 있는 우리들의 메뉴 선택 고민을 반 이상 확 줄여줬다.

 "지금 00회 먹으면 맛이 참 좋아. 간단하고 단순하게 먹고 싶으면 00 한 마리 잡으면 돼. 어떤 놈 떠줄까?"

 "음......."

 "해산물 먹고 싶으면 바로 옆에서 고르면 돼. 전복, 소라 다 여기 있어."

 "모둠? 매운탕?"

 "매운탕은 2층 올라가서 회 먹고 주문 넣으면 바로 해줘. 모둠회는 선택해서 담으면 모둠회가 되는 건데... 00, 00, 00, 00 이렇게 떠서 모둠회로 먹어. 내가 특별히 이 놈 한 마리 더 줄게. 가격은 보통 7만 원 받는데 6만 원만 줘."

 "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계좌번호가 적인 메모지를 가리키며) 그래, 여기로 이체해주면 돼."

브랜드 인지도와 소비자 구매 의사가 50% 정도이면 차별화된 강점을 어필하여 파는 것이 좋다. 구매할 의사가 있긴 하지만 어떤 브랜드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소비자 유형이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강점을 제시해 설득하면 효과적이다.

 문득 정리해두었던 판매 스토리텔링 공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정확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했다고 보긴 무리일 수 있으나 역으로 대입해보면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듯한 그였다. '한 마리를 더 주는데 1만 원 더 깎아주겠다니. 모둠회인데 내가 일일이 고르지 않아도 된다니.'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낯선 곳에 와서 충분히 엉거주춤하고 있던 둘이었으니까.


3.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인간 본성을 자극했다.


 사장님의 설명은 충분히 열정적이고 몰입감도 있었다. 요 근래 일하면서 만나본 인물들 중 단연 최고였다. 그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발길을 옮길 타이밍을 놓쳐 버렸고 내가 몸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틀라치면 '나한테 기회를 좀 줘 봐.' 자연스레 툭 한 마디 던지셨다. 거부감 일도 없이 몰입을 불러일으키는 한 마디였다. 이곳에서 발길을 옮기는 상상을 하니 순식간에 내가 나쁜 사람이 돼버릴 것 같았다. 다른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혹여나 들려올지도 모를 그의 속마음을 홀로 상상했다.


 '5분 넘게 설명을 들어 놓고 그냥 가네. 갈 거면 진작 갈 것이지.'

 '안 살 사람들한테 쓸데없이 설명을 많이 했네. 민망하게.'

 '귀한 시간 버리고 체력도 버리고....... 힘들어 죽겠구먼.'


 돌이켜 생각해보면 거절해도 사장님이 이런 생각을 했을 리 만무하다. 그는 이미 어리바리한 두 눈빛을 간파한 상태였으니까. 발길을 옮기지 못했던 건 우리가 그의 눈빛, 화술, 손놀림 모든 것에 이미 감동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생은 이 분처럼 열정적으로 사는 거라며 나태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했고 다시 한번 우리도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


4. 마지막 고객 관리까지 완벽했다.


 예상컨대 사장님의 감각은 명탐정 코난만큼이나 예리할 것이 틀림없다. 설명하는 중간에도 사장님의 눈동자는 나의 눈빛, 표정, 발의 방향 모든 것을 헤아리고 있었다. 내가 발의 위치를 조금이라도 옮기거나 눈빛을 다른 횟집으로 돌리는 게 포착되면 그는 말의 호흡을 더 길게 끌어갔다. 말이 끊기지 않도록 연결하며 대화 속도를 2배속으로 높였다. 듣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의 고객관리는 마지막에 특히나 방점을 찍는다. 회를 맛있게 다 먹어갈 때쯤 사장님은 퇴근 가방을 들고 2층으로 올라오셨다. 그의 표정은 누가 봐도 행복해 보였다. 눈이 마주친 내게 말씀하셨다.


"어때요? 맛있죠? 내가 기가 막히게 떴어. 마저 맛있게 잘 먹고 가요.(찡긋)"

"네,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그의 영업력에 경탄하여 홀린 듯이 사장님을 다시 바라보는데 또 한 번 저 멀리서 사장님은 능청스러운 미소와 함께 끝인사를 날려주셨다. 구매한 내게 잘했다며 격하게 칭찬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맛있게 식사를 끝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 입구 쪽으로 걷다가 가장 먼저 문 닫은 영도상회를 발견했다. 그 즉시 오늘 하루를 한 줄로 정리했다.


'아, 나는 오늘 영업의 신을 영접했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찐 생활의 달인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라이브커머스 기획/강의를 하다 보니 카피라이팅, 스토리텔링, 디지털 마케팅 등 관련 도서를 주 1권 정도는 읽으려 노력한다. 영도상회 사장님의 영업 비결은 책에서 튀어나온 듯 교과서적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벌고 싶다면 세일즈 역량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역량이라고 많이들 말한다. 모든 건 팔아야 돈이 되니까! 아무리 브랜딩, 스토리, 천부적인 재능, 호감 가는 인상을 잘 만들면 뭘 하나 영도상회 사장님처럼 세일즈가 돼야 꽃 피우는 걸. 앞으로 열정이 죽어갈 때쯤 한 번씩 영도상회에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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