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정년 퇴임 모임을 다녀온 뒤
회사 선배의 정년퇴임 모임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선·후배님들과의 인사 속에는 말로 다 담기지 않는 세월의 깊이가 스며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동안의 고생, 함께 보냈던 시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퇴임 인사를 전하시던 선배님의 수십 년간의 회사생활의 끝자락에 서 있는 그 모습은 담담했지만,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얼굴에 번진 미소 뒤에는 해냈다는 안도와 후회 없이 걸어온 길에 대한 뿌듯함이 차곡히 쌓여 있는 듯했다.
퇴임하시는 선배들을 볼 때마다 늘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나도 과연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마치 오래 묵힌 돌처럼 이 질문은 해가 지날수록 더 묵직해진다. 특히 내년이면 어느덧 50대 중반을 넘어서는 시점이기에, 나 또한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나이 듦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회사에서의 ‘나이 듦’은 그 무게가 조금 더 특별하다. 입장은 달라지고,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선배님이 퇴임을 보면서 계속 머리를 맴돌았던 문장이 있다. “회사 생활은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 남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정말 이 말이 선배님을 온전히 설명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맡은 역할을 묵묵히 채워가던 사람. 화려하지 않아도 꾸준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분.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부끄럽지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나도 언젠가 퇴임 인사를 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몇 년 후일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 만큼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동료들에게 “고생 많았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회사생활이 의미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년을 ‘자연스럽게’ 맞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속에는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준비와 인내,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온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회사의 방향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예전 방식으로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다는 현실도 피부로 와닿는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자신을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종종 숨이 차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지치지 않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생활을 하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지만, 선배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결국 끝까지 버티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루틴이 큰 힘이 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나를 다독이고, 스스로의 마음을 매만지는 시간이 필요함을 다시금 되새긴다.
정년퇴임은 단순히 직장을 떠나는 날이 아니다. 한 사람의 긴 회사생활이 완성되는, 하나의 인생 챕터가 닫히는 의미 있는 순간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퇴근길을 걸어 나올까.
나는 바란다. 흔들리고 고민하는 날이 많더라도, 결국은 선배님처럼 마지막 날 웃으며 회사를 나설 수 있기를. 후회 없이 일했고, 회사에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며, 함께 일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좋은 선배'로 남을 수 있기를.
그날을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꾸준히, 끝까지 내 앞에 놓인 하루하루들을 성실하게 채워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