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게 담배를 권했다. 코드 1. 병원에서 이탈한 조현병 환자였다. 비틀거리며 느릿느릿 말하는 그녀는 결코 약 기운이나 술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출신 대학을 묻고, 결혼 여부를 묻고, 입원하기 싫은 이유를, 퇴원 후의 계획을 말하던 그녀는 가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격렬한 호응의 몸짓이었다. 가끔 핸드폰 충전을 위해 일어섰고, 앉아서는 다리를 긁었다. 다리에 위태롭게 꽂힌 주사 바늘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저보고 덩어리래요, 민폐 덩어리.
나돈데. 나 병원 안 가. 나 지금 병원 들어가면 뒈진다고.
그럼 어떡하죠? 아 담배나 한 대 피우러 가야겠다. 같이 가요.
갑시다. 온갖 욕구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환자의 자유의지, 보호자의 의무와 권리, 환자를 24시간 보호하기 힘든 현실과 병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이 치밀하게 얽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경찰관의 개입은 새로운 변수다.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반응하여 튀어 오르거나 소멸한다. 경찰관은 덮쳐오는 우연의 불길에 몸을 던진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열꽃이 되어 빨갛게 타오른다.
인간은 원래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나로 태어나 나의 욕구를 위해 울다가 양육자를 통해 안전한 세계를 확인한다. 천진하게 솔직한 그 세계에서 육체의 경계를 인식하고 점차 양육자와 나를 분리하면 울어도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 드리운다. 그때부터 인간은 내가 떨어져 나온 타자의 세계에서 얼마만큼이 나의 것인지를 확인하는 데 대부분의 기력을 소비한다. 별 의미 없는 거창한 말도 해보고, 내키는 대로 세계를 해석하며 그 해석을 끝내 고수한다. 타자로 분열된 세계의 파편들 속에 원래의 세계는 구름처럼 떠다닌다.
존재의 시원에 누렸던 안전한 세계를 회복하려고 인간은 자주 불화한다. 만남은 안전한 세계를 확인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고통의 열매를 맺는 가시넝쿨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고통 없는 사회」에서 ‘고통은 완전한 타자가 들어오는 균열‘(p16)이라고 말했다. 다른 존재와 내가 결속할 때 내 세계를 기꺼이 해체하여 타자를 수용하는 경험이 고통이라는 뜻이다. 숭고하고 고차원적인 만남은 고통을 동반한다. 만족과 긍정의 진통제로 고통을 제거한 개인들은 권태와 자극을 왕복하며 외따로 병존할 뿐, '진정한 공존만이 고통을 줄 수 있다.(p51)'
경찰관은 인간의 공존을 수호한다. 현장에서 완전한 타자의 세계에 몸을 던져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고, 소외된 사람을 다시 사회와 연결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통은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낯설고 당황스럽고 숨 막히는 투신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 말해지지 않은 것,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경찰관의 몸을 무수히 관통한다. 응축되고 구멍 난 세월을 돌아보면 늙었거나, 자랐거나, 떠났거나, 곁에 남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지켜야 한다.
투신했던 타자의 세계에서 나를 지키려면 타인과 나의 경계를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잘 헤어져야 한다. 이해의 문을 열되, 기대하지 않는다. 역시나 병원을 뛰쳐나가지 않을까, 속단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희망을 걸지 않는다. 내 희망은 내 안에서만 유효하다. 희망 없이 희망적일 수 있는 건 망가진 채로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모두 망가져 본 적이 있거나, 망가졌거나, 앞으로 망가질 운명 공동체라는 것. 낡고 병들고 아프고 무너지는 길에 만나서 남은 것이 시간의 파도에 부서지는 기억의 모래성뿐이라도, 우리의 만남은 크나큰 사건이라는 것. 그러니 이제, 헤어지자.
앉아서 갈래요, 누워서 갈래요?
구급차에서 건장한 구급차 요원이 내리고, 팔뚝만큼 굵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녀는 순순히 구급차에 올라타 의료용 침대에 누웠다. 그녀 위로 벨트 버클이 채워졌고 갑자기, 몸이 비틀리더니 손 하나가 빠져나왔다. 그녀는 구급차 안에 누운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입가에 빙그르르 미소가 돌았다.
오늘 즐거웠어요.
잘 가요.
무기력해지지 않는 희망으로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회한도 없고, 기대도 없이 그녀의 기적을 빌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와 함께 간다고 목숨이 보장되는 건 아니야, 지나. 이들에겐 이들의 기적이 있어.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