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처럼 우아하게 살고 싶어. 돈 걱정 없이 한 명만 돈 벌고 집에서 책도 읽고 글쓰기도 하고 머리핀도 예쁘게 만들고. 너처럼 사는 게 내 꿈이야.
오랜만에 전화한 친구가 나한테 그랬다. 일찍부터 알바 가는 길이라길래 부지런하다, 대단하다 했더니 나한테 그랬다. 내가 부럽단다. 우아하단다. 돈걱정 없이 살아서 좋겠단다.
아... 애들 커가며 돈 걱정에, 자존감까지 팍팍 떨어지는 요즘이라 심란한 마음에 친구한테 안부 물을 겸 전화했다가 뜻밖의 어퍼컷을 처맞았다.....
친구는 많이 우울했었다. 지금은 아이가 여섯 살이 되었지만 그전엔 어린 아기랑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괴롭다고 했다. 우울감이 커서 먹여야 할 이유식도 제대로 해먹이지도 사 먹이지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는 나가고 싶어 했다. 뭐라도 나가서 사회를 만나야 자기가 살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기관에 갔고 친구는 알바자리를 구해서 일을 하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그걸 유지하고 있는 것도, 추운 아침에 늦지 않게 알바 장소에 가고 있는 것도 너무 대단해 보였다. 친구는 대답했다. 대단하긴 뭘.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거지. 난 너처럼 우아하게 사는 게 꿈이야.
우아. '우아한'의 비슷한 말로는 '팔자 좋은' 정도가 있겠다. 외벌이 전업주부에게 종종 아니 흔하게 붙는 수식어. 말이 좋아 '우아하게 책도 읽고'지, 막말로 '팔자 좋게 집에서 논다' 정도로도 치환될 수 있겠다. 물론 친구가 그런 의미를 담아 한 말이 아니란 건 안다. 돈 걱정 없어서 좋겠다고 한 걸로 보아 내 생활을 잘 모르고 있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건 우리가 꾸준히 연락한 게 아니라 꽤 오랜만에 했기 때문에 그럴 수있는 거고. 미취학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엄마가 예비중학생을 포함한 초등 아이 셋을 키우는 집의 식비와 교육비를 다 알 수 없는 것도 맞으니까. 친구한텐 편하게 '야 전혀 아니야. 내가 요즘 이러이러해서 얼마나 궁한데...' 하고 잠깐 수다 떨면 그만일 일이다.
저 말이 유독 마음에 남는 이유는 사람들이 외벌이 전업주부를 또는 나를 쉽게 저렇게 생각 하겠구나 싶어 졌기 때문이다.(뭐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나는 정말 돈 걱정 없이 우아한 삶을 즐기고 있는가? 풍족하고 넉넉해서 돈 벌러 나가지 않는 건가?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용기는 없지만 언제 어떻게가 될 지를 생각한다. 돈 없다 해도 아직 살만하니 저러지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살만하지. 쌀 못 사고 배곯지는 않으니까. 조금의 품위유지와 삶의 윤택함, 양질의 교육은 당장 없어도 또는 줄여도 살 수는 있으니까. 그렇게 덜 쓰기를 선택하면서 나는 우아함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다. 궁상이 아니면 다행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드는 돈이 많아 요즘 들어 더 '돈, 돈' 하는 내 모습이 좀 꺼려질 때가 있다. 집착하면 더 떠나가는 법이랬는데... 학원 하나 더 보내기가 부담스러워서(부담스럽단 말은 정말 순화된 거고 정말로 돈 나올 주머니가 없어서) 예비중 아이의 수학학원도, 초4 되는 둘째의 영어학원도 전부 보류한다. 오늘도 EBS를 열심히 뒤져보는 나 자신 화이팅...
사람을 사귀지 않아 브런치로 나갈 돈도 굳는다.(오히려 좋아.....?) 혼자 가끔 카페에 갔지만 그나마도 가끔씩만 갔는데 이제는 더 아껴보려고 카페에도 거의 가지 않는다.
이 지겨운 악성 곱슬머리는 마흔이 될 때까지 모질에 변화 하나도 없이 여전히 굽실거리며 파도치고 있지만 이거라도 아껴보기 위해 거의 탈매직 선언을 한 지 1년이다.(못생김을 얻었다.)품위유지비는 아끼기가 제일 쉽다. 참고 참다가 못생김이 과해져서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현금용돈 조금씩 주신 거 다람쥐 도토리처럼 모아둔 거에서 조금 꺼내 어제 뿌리염색을 했다.(미용실 원장님이 이 정도면 뿌리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나마 아이들 어릴 때 저축해 놓은 예비자금 계좌에서 모자라는 돈을 야금야금 꺼내 쓴다. 돈 모으는 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쓰는 건 어쩜 그렇게 게눈 감추듯 사라지는지 매번 놀란다.
잘 안 먹는 아이들 어릴 땐 빌었었다. 나중에 돈 많이 들어도 되니까 제발 좀 많이 먹어라. 애들이 좀 큰 지금, 다른 집 애들보단 여전히 적게 먹는 편인데도 기본값이란 게 있어서 간식비, 식비가 감당이 안 된다. 쟤네들한테 내가 먹는 거 아껴서 줄 줄은 몰랐지....
한 달에 30만 원이 들어와도 모자랄 마당에 1년에 고작 30만 원 남짓 되는 커피값 치킨값 간식값 따위를, '땅을 파봐라 30만 원이 나오나'라며 그거라도 벌어보려고 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글과 사진을 구성해 기사를 작성하고...
우아라기 보단 궁상에 가깝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누가 강요하지 않는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에 나가고 뭐라도 취미를 이어나가려 하는 건 우아한 문화생활이어서가 아니다. 물론 좋아하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 그게 너무 싫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돈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과 자괴감을 발 밑에 항상 두고 물갈퀴질을 한다.
그림책 문해력 수업을 듣고 영어 그림책 지도사 수업을 듣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방과후 교사라는 걸 해볼 수도 있고 지역 도서관 수업에서 뭐라도 맡아볼 날이 올지 모르니까. 이런 따기 쉬운 민간자격증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결정하고 하나라도 관심 있는 게 있으면 들어두려고 한다.
어쩌면 우아해 보일지 모르겠다. 그것도 다 상황이 되니까 듣는 거란 것도 맞는 말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이것도 사치일 테니. 그러나 우아에도좋은 팔자에도 그 이면엔 나름의 부담과 애씀이 있다. 외벌이의 노고가 담긴 이 소중한 수입을 아껴 아껴 소중히 다루며 재정을 관리할 의무를 안는다. 못 버는 대신 안 쓰기를 택하며 안 버는 만큼 아끼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사소한 시도를 해보면서. 잘하지도 못하는 살림과 교육의 부담을 근근이 끌어안으며 오늘도 도서관으로 아이들 책을 빌려다 나른다. 세일 문자를 받고 선착순 계란 3,600원의 은혜를 입으러 하나로 마트로 출동한다. 아. 뜻밖의 소재로 '우아한' 글쓰기 하나도 해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