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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r 25. 2021

엄마, 애들이 나 싫대

조금 더 의연하게



Part1.

바둑 학원 끝나고 놀이터 잠깐 갔다 온다던 아이가 두 시간이 지나고 들어왔다. 들르기만 한다더니 이게 뭐냐, 친구한테 전화 려서 전화라도 하지 했더니 갑자기 울먹거린다.

"애들이 나 싫대..."

혼내는 타이밍에 이건 또 무슨 저 세상 전개지? 두 시간을 놀다 왔는데 애들이 자길 싫어한다니? 그럼 혼자 놀았다는 얘긴가?

"잡기 놀이 했는데 하고 나서 애들이 나보고 집에 가래. 이 놀이터에서 놀지 말래. 근데 난 놀고 싶었어. 누가 핸드폰을 떨어뜨려서 주워주려 했는데 만지지 말라 그러고. 바둑도 나랑 두기 싫대."

그러니까, 걔네가 안 끼워줘서 혼자 미끄럼틀 타고 돌아다니며 한 시간을 넘게 논 거다. 펑펑 우는 것도 아니고 겨우겨우 참았다가 우듯한 얼굴을 보니 속도 상하는데 사실 무슨 상황인지도 이해가 안 갔다. 학원에서 다투거나 친구가 기분 상할만한 일이 있었냐니 마스크 있어서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 기존 무리 누가 끼는 게 싫은 건가? 핸드폰이 없어서 싫은 건가? 겁이 많아 과격하게 놀지 않아서 싫은 걸까?


엄마 같으면 벌써 울면서 집에 왔을 거라고 말했더니 자기도 그때 울고 싶었는데 엄청 참았단다. 그 눌러 참는 눈물, 알지알지 겪어봤으니 알지. 차마 거기다 대고 같은 아파트 살고 자주 만나던 애들끼리만 놀고 싶은 모양이다 에잇 같이 놀지마!!라고 추측대로 승질대로 말하지는 못했고, 슬펐겠다, 걔들도 고작 아홉 살이라 뭘 알겠니, 놀던 무리에서 놀던 쪼가 있어서 그냥 그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고. 너네도 집에서 그렇잖아. 그래도 여럿이 한 명을 소외시키는 건 좋은 행동은 아니지.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냐 했더니 뭐 별로 놀고 싶지 않단다. 그래 그래, 마음 가는 대로 해. 쿨하게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애는 정작 아무렇지 않은 저녁을 보냈다.


요즘 부쩍 전에 살던 동네 친구들 얘기를 하아이가 맘에 걸리던 차였다. 자기도 '알던 애들'하고 놀고 싶다는 말을 너무 잘 이해하겠어서 대충 뭐라고 둘러대긴 했지만 별로 위로될 거 같지 않단 생각을 했다.

학교 학원을 거기서 그대로 다녔다면 좀 나았을까. 사실 모른다. 친한 애가 같은 반 된다는 보장도 없고 학원도 처음 가는 곳은 어차피 낯설 거고.(그러나 오다가다 마주치는 아는 얼굴이 주는 위안 크다는 걸, 새 학기마다 배가 아팠던 극 I형 애미는 너무 잘 알지) 남편은 부모의 인간관계도 무시 못한다고 우리 애들은 어쩌냐(?)고 했는데, 아니 오빠 그것도 어릴 때지 3학년인데 부모빨로 친구 사귀는 건 이제 아니지 않아?라고 우겨보다가(사실 영 영향이 없을 거 같진 않고...), 에라 이게 다 무슨 의미냐 싶었다.


코로나 탓을 해봤다. 이게 아니었다면 짝이든 분단이든 모둠활동이든 체육이든 여럿이 부대끼고 놀 일이 분명 지금보단 많았을 테니 전학생의 적응에 도움이 됐을 텐데. 다같이 서로서로 못 노니까 차라리 얘한텐 잘 된 건가 하는 생각을 작년에 잠깐 했지만, 3학년이 되면서는 학원 등의 이유로 서로 좀 더 무리가 잘 지어져 있었고 선생님이 서로 떠들지 마! 한다고 합죽이 되는 8, 9세랑은 또 다른 것 같았다.

언제나 마음 읽기보다는 해결책 찾아 길 떠나는 남편은 구기종목 타령을 했다. 무조건 축구를 해야 해! 니 말대로 학교에서 그걸 못 해주니까 축구클럽에 보내야 해!! 축구하면서 친해지는 건데 공찰 줄 몰라서 쓰겠냐는 건데, 아니 근데요... 축구 좋아하는 애라면 모를까 싫어 죽겠다는 애를 축구클럽까지 보내서 모르는 애들을 또 만나게 하는 건 내 기준 너무 지옥 같은데요!! 요즘은 축구보다 핸드폰 없다고, 게임 모른다고 더 소외될 걸? 하면서 우리끼리 이런저런 근심을 주고받은 밤이었다.





Part2.

"아이들 마음은 수시로 바뀌니까요."

바둑 실기 상대를 정하는 문제로 상담하던 중 선생님이 말했다. '수시로 바뀌니까요'라는 말이 유난히 귀에 꽂혔는데 아니나 다를까 놀이터 사건이 있은 다음 날, 아이가 바둑 수업 끝나고 막 뛰어오는데 어제 그 친구랑 같이 있네? 놀이터에서 놀다 오겠단다, 와...


2년 전, 학교 앞 놀이터에첫째네 반 여자애들 몇 명이 투닥거리는 장면을 봤다. 한 명을 좀 몰아붙이는 것 같았고 그 아이는 조금 후에 온 엄마를 발견하곤 서러웠는엉 울며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 엄마는 덤덤히 얘길 듣더니 아일 한 번 안아주곤 속닥속닥 이야기 몇 마디 나누고 편의점으로 갔다. 아이는 거기서 껌과 젤리를 골라온 거 같았는데 그런데! 그걸 아까 자기한테 뭐라고 하던 친구들한테 나눠주면서 되게 자연스럽게 또 같이 그네를 타네?! 아니 내 자식이 그렇게 서럽게 울어도 이렇게 태연하고 의연하문제를 해결한다고? 이것이 첫째 중학교 보낸 셋째 엄마의 관록인가 싶어(가까이 살아 친분이 있었음), "금방 화해하네요?" 더니, 애들이 원래 이렇게 티격태격하다가 금방 같이 놀고 한다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말해 깜짝 놀 적이 있다. 나는 매사 초조하고 이럴 땐 어째야 하나 불안하다고 했더니 자기도 첫째 키울 땐 그랬다고 말하면서 홀연히 떠나는데 오... 멋짐이라는 게 폭발한다!


뜻밖의 순간에 떠올 옆집 모녀 껌 플렉스... 셋째를 막 키워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익히게 되는 노하우, 지혜 같은 게 있는 걸까? 애도 나도 타고난 성격이 있는지라 꼭 저렇게 될 거라곤 장담 못하겠지만. 자식의 상처에 의연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좀 별일 아닌  별일로 만들지 말고, 정작 "별일"은 대강 넘어가지 말고 반복되는지를 지켜보며 세심하게 캐치해내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적어도 제같은 상황에서 아이보다 앞선 걱정은 넣어두어야겠다고, 최 만 하루, 넉넉히 며칠은 좀 아이한테 맡기고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게 "넌 매력 있는 아이라 결국 옆에 좋은 친구들이 생길 거야! 먼저 다가가 봐, 너를 좋아할 거야!"라고 밝고 센스 있는 응원을 전해주고 싶은데 그런 말을 잘하는 사람이 일단 우리 집엔 없는 거 같고... 다른 사람이 해준 그런 말을 전해주는 게 고작이라니 어휴! 그래도 하루를 지내다가 속상했던 걸 말해준 게 고마웠다(망설인 거 같긴 하지만). 더 크면 뭐 나쁜 짓이어서 숨기는 게 아니라 굳이 엄마한텐 말할 필요가 없을 거 같고 엄마가 걱정하는 것도 싫고 하는 등의 이유로 나는 모르고 지나가는 일들이 많을 테니. 눈치채도 꼬치꼬치 캐묻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을 거고. 아직은 아니어서, 얘기 나누고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이틀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자주 변하고 며칠을 지켜보네 어쩌네 해도, 학원 동생 아니고 학교 같은 반 애들 사이에서 나를 싫어하네 어쩌네 말 나오면 나는 또 걱정 굴을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 자리 깔고 앉겠지만...


아싸 재질 부모에게서 인싸 재질 자식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여전히 걱정(x3명)스럽긴 하지만 아이의 자생력을 믿는 수밖에는, 갑자기 낯선 축구클럽에 보내버리는 대신 우리끼리 주말에 자주 공차러 돌아다니는 수밖에는. 그게 지금 내가(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축구보다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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