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드리셋 Apr 21. 2021

애 많은 엄마의 하루 한 장면 시리즈 <6>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기록


애 많은 엄마의 하루 한 장면 시리즈 <6>


목차

1. 놈놈놈

2. 비교

3. 후유증

4. 자제와 금지

5. 운동을 위한 준비 운동

6. 아빠

7. 사소한 것들       




              


#1. 놈놈놈

훈제 오리고기, 삶은 계란 얹은 냉면을 저녁으로 내줬더니 한 놈은 면만 남기고, 한 놈은 계란만 남기고, 한 놈은 고기만 남긴다.

복숭아, 씨리얼, 크림치즈 베이글을 아침으로 내놨더니 한 놈은 씨리얼만 남기고, 한 놈은 복숭아만 남기고, 한 놈은 베이글만 남긴다.

뭐냐 이건. 자식 셋 키우면서 다채롭다 못해 파란만장할 내 앞날을 예견이라도 하는 건가!!



#2. 비교

아이들을 키우며 끝없는 블랙홀에 빠질 때가 있다. 주로 '나는 아이를 위해 왜 저렇게 못하지?' 하는 순간들인데, 이건 화를 내고 나서 드는 왜 이거밖에 안 되냐는 자책의 감정과는 또 약간 다르다.

종종 하는 생각 1은 '나는 왜 바지런하게 라이딩하면서 애들 이거 저거(문화센터, 학원 등) 못 시킬까' 하는 거다.

생각 2는 '나는 왜 좀 더 잘 챙겨 먹이지 못하는 걸까' 하는 거다.

생각 3은 '나는 왜 엄마표 무엇에(영어, 글쓰기, 미술 등) 취약할까' 하는 거다.

생각 4는 '나는 왜 바람직한 가족 문화나(영화나 운동 같은) 루틴 이런 걸 만들 의지가 없는 걸까' 하는 거다.

이런 블랙홀은 대부분 남들과의 비교로부터 시작된다. 애가 셋인데도 시간 딱딱 분배해서 필요한 라이딩 해주는 엄마를 보며, 나물 고기 생선 고루고루 신경 써서 밥 차려주는 엄마를 보며, 초등 글쓰기가 중요하다면서 이런저런 양식을 찾아 독후활동 일기 쓰기 열심히 시키는 엄마를 보며, 이런 게 다 추억이 되는 거라고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가족문화를 꾸려가는 엄마를 보며.

내 새끼 다른 아이랑 비교 안 해야지 다짐하면서, 나 스스로는 끊임없이 다른 엄마와 비교한다. 사는 거, 입는 거 비교는 전혀 안 하는데 엄마 노릇은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3. 후유증

평생 해 본 게임이라곤 라이온킹, 고인돌, 테트리스, 애니팡이 전부였던 내가 '카트라이더'에 발을 들였다. 카트를 알게 된 후 마주하는 도로는 이전과는 달랐다.

조수석에서 바라보는 쭉 뻗은 아스팔트 길이 마치 카트 속 맵 같았다. 커브를 틀 때나 신호 바뀌기 전 필사적으로 좌회전을 할 때는 "드리프트!!", 속도를 조금만 내면 "부스터!!" 하고 외치는 나를 남편은 게임중독 취급했는데 그런 취급받은 김에 한마디 더 덧붙였다.

"지금 도로 위에서 게임 켜서 하면 완전 4D 아니냐? 워 씨."

이래서 게임이 무서운 건가. 레벨 좀 올리고 싶다는 욕심을 내고 며칠 더 짬짬이 하다보니(=뜨개질 버림) '오. 레벨은 올리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즐기다 보면 따라오는 것이로구나' 하는 진리까지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레벨이 올라가다 보니, 레벨과 실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게임을 하면서 자꾸 쌍시옷과 험한 추임새를 내뱉고 몇 판 계속 망치고 나면 '아이씨 한 판 더!!' 하면서 스타트를 우다다 눌러대는 스스로를 보며, 이래서 게임과 전쟁하는 부모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가 싶기도 했다.(머지않은 내 미래인가)



#4. 자제와 금지

자제: 자기의 감정이나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다

금지: 법이나 규칙이나 명령 따위로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함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재난알림문자에서 '자제'라는 단어를 보며(때는 2020년 8월) 이런 생각을 했다. '자제'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자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거 같은데, 스스로 안 하는 걸 선택하면 더 좋겠지만, 상황에 따라 해도 뭐 크게 잘못은 아닌 거 같은. 기왕이면 '금지'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에 자제가 잘 되면 좋겠지만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예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생일 답례품에 대한 논의가 오갔던 적이 있다. 생일 주인공 아이는 답례품을 '가급적' 안 들고 오기를, 답례품 준비를 '자제'해 주기를 바란다는 몇 번의 공지에도 한 두 부모가 계속 답례품을 돌려버리니 이게 끊어지질 않는 거다. 나를 포함한 몇몇 엄마가 원장님께 건의를 했다. 그냥 딱 '금지'합니다 라고 해달라고. 원장님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아니 애들도 아니고 다 어른들인데 굳이 그렇게 '금지'라고 적어야 하나요?"

두쪽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만큼 '자제' 단계에서 편하게 끝나는 게 어렵다는 거다.

이번 추석에 지역 간 이동을 자제해달라, 가족 친지 간의 만남을 자제해 달라면 잘 지켜질까? 임시공휴일 지정한 것처럼 임시로 추석을 없애버려야 하지는 않을까? 그럴 수는 또 절대로 없겠지만 문득 추석 걱정이 되었다.



#5. 운동을 위한 준비운동

홈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나 같은 운동젬병은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거쳐야 할 몇 가지 단계들이 있다.

자주 가는 카페에 유튜브 홈트 채널 후기글이 보이면 꼼꼼히 읽고 마치 이 글을 꼭 다시 볼 것처럼 비장한 각오로 하트를 눌러둔다. 그리고 채널을 직접 검색해 '나는 반드시 이걸 따라 할 테다, 하루 20분 어렵지 않지' 라며 구독을 꾸욱 누른다. '요가소년', '땅끄부부'의 채널을 둘러보며 '뭉친 어깨 풀어주는 요가' '초보자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코어 근육 단련법' 등등 제목만 들어도 솔깃한 영상들에 잔뜩 좋아요를 누른다.

영상뿐이면 다행이다. 본격 뽐뿌를 받기 위해선 책을 봐야 한다며 '여자는 체력', '난생처음 킥복싱' 책 리뷰를 찾아 읽는다. '어머 리뷰만 읽어도 운동을 시작하고 싶어져' 하며 예스24 장바구니에 책들을 담는다.(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요가매트나 레깅스 같은 걸 담게 되는데....)

그렇게 요가소년, 땅끄부부, 여자는 체력, 난생처음 킥복싱을 손가락과 마음으로만 담아둔지 반년이 다 돼간다. 준비 운동만 하다가 볼장 다 봤다. 그럴 시간에 동작 몇 개만 꾸준히 따라 했어도 저질 몸뚱이에 근육 한 줄 정도는 생겼겠다. 정말 40세가 되어야 운동이 우선순위에 오를까? 지금은 아무래도 운동 말고도 우선순위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6. 아빠

고속도로 두세 시간을 달려 친정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빠가 나와계셨다. 곧 도착할 거라는 문자를 보고 진작부터 내려와 계셨나 보다. 문득 아빠가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손주 본 지 9년 차이니 이미 사전적 외할아버지는 되어 있었지만, 뭐랄까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류의 CF에 나오는 진짜 할아버지 말이다. 집에 들어가니 둘째가 갖고 싶다 노래를 불렀던 헤드셋 장난감이 포장도 안 뜯긴 채 놓여있었다. 절대 사지 말라고 내가 알아보고 애 생일 선물로 사겠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생일까지를 못 기다리고 비싼 토이저러스에 가서 이걸 사놓고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린 아빠. 퇴직 후 시간도 많고 할 일도 없고 손주 갖고 싶다는 장난감을 이리저리 사러가는, 영락없는 진짜 할아버지가 다 된 거 같았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엄마는 장조림이며 김치며 이거 저거 챙겨야 할 것들을 말했다. 아빠는 어디서 특대 사이즈 보냉백을 꺼내더니 이거 처음 개시한다며 테트리스 하듯 차곡차곡 엄마가 읊은 음식들을 챙겨 넣었다. 자주 볼 수 없었던 모습이 낯설었다. 마치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아빠가 아기를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던 그런 느낌.   

조금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빠의 나이 듦과 사랑이 더욱 선명해진다. 특별히 안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친밀하게 바뀌기에는 너무 늦은, 언젠가 후회할 게 보이지만 그렇다고 어색함이 쉽게 허물어지진 않을, 언제나 생각하면 아쉬운 나의 아빠.



#7. 사소한 것들

주름진 기분을 펴주는 건 의외로 생활 속의 작은 일들과 장면들이다.

2만 원짜리 식탁보로 집 분위기가 확 달라졌을 때,

책에서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

그걸 누군가와 공유할 때.

라디오에서 우연히 만난 좋아하는 옛날 노래 하나,

목요일 아침마다 '주말권 아침입니다' 라고 하는 이현우의 멘트.

내 포스팅을 보고 일기를 써보고 싶어 졌다고 말하는 누군가를 볼 때,

내가 먹을 한 그릇 요리를 예쁘게 차려냈을 때,

화장실 바닥에 락스 희석시킨 물을 쫘악 뿌려놨을 때.

신박한정리 보다가 급하게 정리한 현관 신발장,

아침에 내려 마시는 캡슐 커피의 시원한 첫 모금,

집콕하면서 바라보는 먼지 없는 하늘.

아이들 접시에 내어준 요구르트와 머랭 쿠키.

자칫하면 그냥 흘러갈 만큼 사소하고 흔한 것들. 하루를 통째로 버티게 하는 힘을 주는 건 아니지만 짧은 순간순간 모아도 좋을 괜찮은 에너지를 준다.



남자라면 자두 헤드셋


매거진의 이전글 애 많은 엄마의 하루 한 장면 시리즈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