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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Sep 05. 2019

생명과 평화의 섬, 강화 볼음도

현해당의 인문기행 22



자연 속을 거닐며 아름다운 경치도 즐기고 동시에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는 걷기 여행을 나는 스토레킹(storekking)이라고 부른다. 스토리(story)와 트레킹(trekking)을 결합한 이 말은 지난해 내가 북한산 일대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내면서 만든 신조어이다. 아직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앞으로 ‘이야기가 있는 걷기여행이 더욱 활성화 되면 5년, 혹은 10년 후에는 분명 사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걷기 여행을 즐기면서 제주 올레길, 북한산 둘레길, 한양 성곽길 등 걷기를 위한 많은 길들이 만들어졌고, 새로운 길 또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길이라는 것도 그냥 만들어 놓는다고만 해서 무조건 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길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길도 있다.


인천 강화에는 모두 19개의 나들길 코스가 있다. 강화 본섬에 13개 코스 14개 구간 226.4km, 석모도에 2개 코스 26km, 교동도 2개 코스 33.2km, 주문도 11.3km, 볼음도 13.6km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길이는 장장 310.5km이다. 그중 제 13나들길 볼음도 코스를 따라가 봤다.


볼음도는 아차도, 주문도, 말도와 함께 강화군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동쪽으로 석모도와 7㎞, 북으로 황해도 연백과 5.5㎞ 정도 떨어져 있으며, 면적 6.57㎢, 해안선 길이 16.2㎞이다. 인근의 섬들과 마찬가지로 너른 간척지를 가지고 있고 주민은 대략 300명 미만으로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북쪽 해안선이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을 이루는 초접경 지역이지만 남북의 사이가 좋아진 덕분에 군사적 긴장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7월의 마지막 주말, 한창 여름 휴가철인데도 여행객들이 많지 않다. 물론 날씨가 좋지 않은 탓도 있고 또 갯벌 체험장으로 사람들이 몰렸을지 몰라도 나들길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들길은 시작 지점부터 잡초가 무성하고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있어 진행이 쉽지 않다. 바닷길로 접어들자 여기저기 그물, 스티로폼 등의 폐 어구와 각종 생활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심지에는 커다란 LPG가스통까지 나뒹굴고 있다. 물론 주민들의 잘못은 아니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일부러 쓰레기를 해안에 갖다 버릴 일도 없고 어구를 사용할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치워야 할 텐데, 아름다운 노을과 금빛 모래사장, 그리고 그 위를 나는 갈매기 떼를 생각하는 여행객에게 이런 모습은 거의 치명적이다. 애써 조성해 놓은 텐트촌에는 사람의 그림자 보이지 않고, 잠시 피곤한 다리를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벤치에는 물기 젖은 나뭇잎만 어지럽게 쌓여있다. 두 군데 해수욕장이 있지만 해수욕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내내 ‘이 섬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제넘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스토레킹, 이야기가 있는 섬을 만드는 것이다.

볼음도에 와서 여행객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백합 조개를 캐거나, 천연기념물 제304호 ‘볼음도 은행나무’를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러나 사실 볼음도는 상상 외로 우리가 모르는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볼음도(乶音島)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이 배를 타고 명나라로 가다가 풍랑으로 볼음도에서 보름간 머물렀다가 보름달을 봤다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사》, 《세종실록》 등에 ‘파음도(巴音島)’라는 명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이 섬의 이름은 ‘밤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파음(巴音)’은 우리말 ‘밤[栗]’을 소리대로 적은 차자(借字) 표기이다. 실제로 섬 곳곳에 밤나무가 많이 눈에 띈다.


‘볼음도 은행나무’는 수령 8백년 이상으로 그 짝인 암나무가 아직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에 있다고 한다. 남북이 오랜 냉전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빙 무드가 조성되는 지금 이 은행나무는 남북화해의 상징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50년대 까지 매년 정월보름에는 이 나무 앞에서 풍어제를 올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이 은행나무보다 더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은행나무 바로 곁에 서있는 작은 팽나무다. 옛날 풍어제를 올릴 때면 주민들은 은행나무보다 팽나무에 먼저 제를 올리고 한 해의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볼음 2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어르신은 팽나무가 작아서 그렇지 사실은 은행나무보다 더 수령(樹齡)이 높을 거라고 했다.

팽나무. 풍어제 때 가장 먼저 제를 올렸던 신목으로 마을 주민들은 은행나무보다 더 수령이 오래되었다고 믿는다.


은행나무를 끼고 서쪽 해안선을 따라 가다보면 작은 선착장이 보이고 선착장 위에 빨간색 우체통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배 한 척 없는 선착장도 그렇지만 이 무인지경의 바닷가에 우체통은 또 무슨 까닭일까? 알고 보니 이곳은 바로 코앞에 있는 섬, ‘말도(唜島)’로 가는 선착장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십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이곳 선착장과 말도(唜島) 사이를 운항하는 배(평화호)가 있었다고 한다. 우체통은 말도 주민들의 우편물을 보관하는 곳으로 평화호 선장이 우체부 노릇을 대신했다. 말도는 지금도 사전 심사를 받아야만 출입이 허락되는 섬으로 여객선 없이 군청에서 운영하는 행정선이 주에 2~3회 운항한다. 텅 빈 말도 선착장에 서서 빛바랜 빨간 우체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슬픔 같기도 하고 그리움 같기도 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한 가득 밀려든다. 선착장 서쪽으로 말도가 그리고 위쪽으로는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말도는 끝 말 자를 써서 끝점이라고도 하며 비무장지대 푯말 제1호가 이곳에 있다. 휴전선 155마일이 이곳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볼음도에서 서쪽으로 1㎞ 거리에 있으며, 면적 1.449㎢에 해안선 길이 6.1㎞로 5가구, 1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본래 어업을 위주로 하여 인근 바다에서 조기, 새우 등을 잡으며 생활하였으나, 6·25 이후 비무장지대 최서단 섬으로 어로 활동이 중단된 채 지금은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1965년에는 말도 주민 120여명이 인근 북한 땅 함박도로 조개를 캐러갔다가 납북된 일명 ‘함박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육상과 달리 해상에는 NLL(북방한계선)이 명확치 않았다. 납북자들은 대부분 무사히 귀환하였으나 일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또 귀환한 주민들도 이번에는 간첩 혐의로 공안 당국에 끌려가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말도. 바다 건너 조그맣게 말도가 보인다. 볼음도와는 거리는 약 1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말도 선착장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와 은행나무를 지나면 거대한 제방과 함께 볼음저수지가 나타난다. 6·25 전까지 볼음도 사람들은 앞바다에 나가 새우잡이를 했으나 전쟁 이후 접경지역이 되면서 어업이 어려워지자 농사를 짓기 위해 10만평 규모의 저수지를 만들었다. 불음도 저수지는 노랑부리백로, 저어새의 번식지로 20여 종의 새들이 먹이를 찾아 모여드는 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해질 무렵 저수지 둑방길을 걸으며 물위를 적시는 붉은 노을과 새들의 고요한 움직임을 보는 일도 볼음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일 것이다.


볼음도에는 광산(鑛山)도 있었다. 그래서 평양금산(平壤金山), 학무광산(鶴舞鑛山) 등의 지명이 지금껏 남아있다. 평양금산은 금맥이 평양 쪽으로 뻗어 있어 생긴 지명으로 ‘피앙금이산’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볼음도는 천연기념물 205호인 저어새 및 노랑부리저어새의 서식지이기도 하고, 볼음도가 포함된 천연기념물 제419호 강화갯벌은 농어, 돌게, 동죽, 망둥어, 백합, 밴댕이, 병어, 소라, 숭어 등이 한데 어우러져 뛰노는 생명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볼음 2리를 지나 볼음 1리 쪽으로 내려오자 두 개의 학교 건물이 눈에 띈다. 서도중학교와 초등학교의 볼음 분교 건물이다. 지금은 학생이 없어서 폐교된 상태다. 잡초 무성한 운동장 너머로 우두커니 서있는 교사(校舍)가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 어떻게든 활용방안을 찾아야 하건만 그리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선착장을 향해 걸어 나오면서 문득, 비어있는 학교건물을 예술가들의 창작 마을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꿈같은 얘기지만, 오랫동안 분단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이곳에 뜻있는 예술가들이 모여서 마음껏 생명을 노래하고 평화를 노래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볼음도가 그간의 아픔에서 벗어나 진정한 생명과 평화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보다 유쾌하고 신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13. 6㎞의 ‘볼음도 길’을 가득 메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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