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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Sep 05. 2019

아차도, 그 섬에 살고 싶다

현해당의 인문기행 23

외포리 선착장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옅은 해무 사이로 주문도와 아차도가 반갑게 얼굴을 내민다. 볼음도를 거쳐 아차도 선착장에 닿자 내리는 사람은 나 혼자 뿐, 어느 시인의 독백처럼 참말 “오오, 눈부신 고립”이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해 찾아온 섬이지만 막상 혼자라고 생각하니 덜컥, 두려움이 앞선다. 텅 빈 선착장에 서서 잠시 방향을 가늠해본다. 아차도에는 관광 안내 표지판이 없다.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섬이어서 그렇겠지만 표지판에 익숙해진 삶이라 문득 어디로 가야할지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섬 동쪽에 있는 ‘꽃지’ 해변 길로 들어서자 황야에 우뚝 선 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끈다. 특이하게 두 개의 바다를 끼고 있는 길은, 지금은 비록 낮은 시멘트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기다란 모래 언덕이 었을 것이다. 사리 때면 두 개의 바다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는, 그 길 끝에 작은 봉우리가 하나 있다. 해변 길을 사이에 두고 갈라졌던 바다는 그 봉우리 끝에서 다시 하나가 된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자 다시 선착장이다. 나를 태우고 왔던 배는 건너편 주문도에 마지막 승객을 내려준 후 오후 항해를 위해 바다 한 가운데 정박해 있다. 주문도와 아차도 사이의 바다는 흡사 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폭이 좁고 물결이 잔잔하다. 한 때는 이 바다에 수많은 고깃배들이 몰려들어 아차도가 흥성스러웠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아차도는 주문도, 볼음도, 말도와 함께 행정구역상으로 강화군 서도면에 속한다. 면적 0.67㎢, 해안선 길이 4.90km, 20여 가구, 4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섬이다. ‘아차’는 ‘아차(阿次)’, 또는 ‘아차(阿此)’로 적으며 ‘소도(少島)’라고 한 옛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디 ‘작다’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이 아니었을까 한다.


선착장을 지나 마을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자 길 오른쪽으로 정갈하게 가꾸어진 작은 밭들이 눈에 띈다. 물이 귀한 섬이라 밭 한 귀퉁이에 놓여있는 물탱크들이 이색적인데 밭에는 주인의 정성이 잔뜩 들어간 고추며 참깨 같은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비록 작지만 아차도 주민들의 부지런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고개를 넘어서자 마침내 고대하던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 멀리 백년 전통의 ‘아차도 교회’가 보이고 마을 앞에는 방파제와 함께 어선 몇 척이 갯벌 위에 몸을 누이고 있다. 집집마다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이채롭다. 집들은 도시처럼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초라하거나 궁색해 보이지도 않는다. 섬사람들은 비록 많지 않은 땅이지만 부지런히 농사짓고 고기 잡으며 욕심 부리지 않고 산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표정에는 육지 사람들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이 깃들어있다. 돈이 있어도 일부러 뭍에 나가지 않는 한 쓸 곳이 없으니 이곳에서는 적어도 돈이 최고가 아니다. 문득 옛날 요순시대의 백성들이 불렀다는 「격양가(擊壤歌)」가 생각난다.


해 뜨면 일어나고(日出而作)

해 지면 쉬면서(日入而食)

우물 파서 물마시고(鑿井而飮)

밭 갈아서 밥 먹으니(耕田而食)

황제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帝力于我何有哉)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향락을 위해 기꺼이 육체와 정신의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나 같은 육지 사람들에게 아차도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구원의 땅인지도 모르겠다. 백년 전통의 아차도 교회와 무인가게, 무인 카페를 구경하고, 땀도 식힐 겸 마을 중앙에 있는 정자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준다. 정자 뒤편은 본래 학교(아차도 분교)가 있던 자리인데 건물은 철거되고 대신 주민 대피 시설이 들어서 있다. 활처럼 휜 마을 전경을 굽어보며 문득 ‘아차도’라는 섬 이름을 다시 떠올려 본다. 국어사전에는 ‘아차’를 감탄사로 “무엇이 잘못된 것을 갑자기 깨달았을 때 하는 말”이라고 적고 있다. ‘아차도’ 역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지금까지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안타까워하는 감탄사 '아차'에서 비롯된 이름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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