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당의 인문기행
봄은 왔어도 옛날의 그 봄은 아니다. 연일 기승을 부리는 미세 먼지 때문에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물들었고 도시는 활기를 잃었다. “이러다 정말 무슨 일 나는 거 아냐?” 나이 지긋한 중년 여인들의 불안감 섞인 수군거림을 뒤로한 채 수종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우중충한 날씨와는 달리 차안에는 제법 활기가 넘친다. 옛날 삼십여 년 전, 친구들과 엠티 갈 때 웃고 떠들며 노래하던 그런 활기는 아니어도 주말을 맞아 연인끼리, 친구끼리 또 동료끼리 서로 짝을 지어 웃고 이야기하는 승객들의 표정 속에는 분명 어떤 설렘 같은 것이 담겨있다.
용산역을 출발한 용문 행 기차는 청량리, 덕소, 팔당을 거쳐 1시간여 만에 운길산역에 도착했다. 역사를 나와 멀리 운길산을 돌아보니 산 8부 능선쯤에 폭 안겨있는 수종사가 보인다. 진중마을을 지나 등산로로 접어들자 봄의 전령사 산수유나무는 어느새 노란 꽃망울을 머금었다. 옛날 다산도 이 길을 걸어 수종사에 올랐을 것이다. 수종사는 다산 정약용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그는 어렸을 때 이곳 수종사에서 공부했고, 진사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벗들을 이끌고 수종사를 찾았으며, 오랜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 초천(苕川)으로 돌아온 후에도 자주 수종사에 올랐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어디쯤이었을까? 다산은 봄날 수종사에 오르는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다. “배에서 내려 한가로이 거닐며, 골짜기에 들어서니 그윽한 풍취 곱기도 하여라. 바윗가 풀은 아름답게 단장하였고, 산중 버섯은 우쭉우쭉 솟아나왔네.” 다산뿐만 아니라 그의 두 아들 학연, 학유, 그리고 유배지 강진에서 인연을 맺었던 초의선사(草衣禪師)도 이곳 수종사에 올라 차를 마시며 시를 읊었다.
수종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조선 중기 문신 임숙영(1576~1623)의 「유수종사기(遊水鍾寺記)」에, “일찍이 고려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이곳 운길산 아래를 지나다가 멀리 산꼭대기에 서기(瑞氣)가 서린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수색하게 하니 우물 속에서 한 동종(銅鐘)이 나왔다. 이에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수종사라고 했다.”라는 기록이 있고, 또, 조선 세조가 신병치료차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다가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묵었을 때, 수종사의 옛 터를 발견하고 복원했다는 설화가 있는 것을 보면 여러 차례 폐사와 복원을 반복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은 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 하였다.
등산로를 벗어나 수종사로 향하는 차도로 접어들자 생각보다 경사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런지 오가는 차들이 제법 많다. 코끝을 스치는 배기가스 때문에 오롯이 산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나마 길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쉬엄쉬엄 찻길을 오르노라니 어느덧 수종사가 눈앞에 보이는데 문득 길가에 우뚝 선 키 큰 소나무에서 후드득 물방울이 떨어져 등줄기를 적신다. 정신이 번쩍 든다. 아직도 미몽(迷夢)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에게 내리는 노스님의 준엄한 죽비인가? 자동차를 타고 올라왔으면 결코 맛보지 못할 살아있는 부처님의 법문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나지막한 계단을 걸어올라 해탈문을 들어서니 삼정헌, 선불장, 대웅전 등의 건물이 보인다. 역사는 오래 되었으나 수종사는 폐사와 복원을 반복하였고, 그나마 6·25때 건물이 모두 불타버려서 고색창연한 맛은 없다. 그나마 선불장과 대웅전 사이에 모셔져 있는 보물 2013호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1439)과 보물 1808호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1493), 세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만이 오랜 연원을 말해 줄 뿐이다. 선불장(選佛場)의 주련은 초의선사의 시를 집구(集句)한 것이라 하고 삼정헌(三鼎軒)은 차를 마시는 다실인데 사람들이 많아 빈 탁자가 없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삼정헌 옆에 마련된 전망대에 서서 발아래 세상을 굽어보니, 멀리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줄기가 합해지는 두물머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가슴 벅찬 광경이다.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우리 인간의 마음도 저 물과 같아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고 화합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나부터도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비록 차 한 잔은 못 얻어 마셨어도 살아있는 부처님의 법문도 듣고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하였으니 그만하면 됐지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마는 그러나 진정한 수종사 여행의 백미는 다른 데 있으니 위의 「유수종사기(遊水鍾寺記)」에 임숙영은 다음과 같은 멋진 소감을 남겼다.
“이날 밤, 승려들은 모두 잠이 들고, 홀로 깊은 방에 앉아 있으려니 창문에 교교하게 밝은 빛이 어리어 살펴보니 달빛이었다. 이윽고 바람이 먼 곳에서 불어와 산골짜기를 진동하는 것이 바닷가에 울리는 파도소리와 같고, 온 숲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흡사 소낙비가 내리는 듯하였다. 이에 하늘을 날거나, 둥지에 깃들여 있거나,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새들이 일시에 비명을 지르며 호응하니 이에 나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오는 가을, 달 밝은 밤에 수종사를 다시 찾아 하룻밤을 묵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