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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Mar 12. 2018

봄, 관악산 그리고 나비

현해당의 인문기행 8

남자하동계곡. 과천 향교 앞 자하동 골짜기에 봄이 성큼 다가섰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하얀 얼음으로 뒤덮였던 과천 향교 앞 남자하동 계곡에 물소리가 요란하다. 겨우내 바짝 엎드려있던 관악산이 한껏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계곡에서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때 이른 물장난을 치고 있고 주인을 따라 나온 강아지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계곡 좌측으로는 전에 볼 수 없던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있다.  따라가 보니 ‘단하시경(丹霞詩境)’, ‘자하동문(紫霞洞門)’, ‘백운산인 자하동천(白雲山人 紫霞洞天)’,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등의 바위글씨를 볼 수 있도록 최근 과천시에서 조성한 것이다. ‘단하시경(丹霞詩境)’은 추사의 글씨이고, ‘자하동문’, ‘백운산인 자하동천’은 자하 신위의 글씨라 하는데 추정만 할 뿐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자하는 관악산 북쪽 북자하동에 별업(別業)이 있었고, 추사는 청계산 옥녀봉 아래 과지초당(瓜地草堂)에서 말년을 보냈으니 두 분 다 과천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지만 사실 이 글씨들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곳 남자하동 암벽에 새겨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1839년에서 1851년 사이에 이곳을 방문했던 강헌규(姜獻奎)의 「자하동천기(紫霞洞天記)」에 ‘백운산인 자하동천’ 글씨를 보았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운산인 자하동천’을 제외하고는 대개 19세기 중반 이후에 새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치원의 시, ‘제가야산독서당’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를 모각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백운산인 자하동천 바위글씨. 1839년에서 1851년 사이에 이곳을 방문했던 강헌규(姜獻奎)의 「자하동천기(紫霞洞天記)」에 이 글씨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바위 글씨 구경을 마치고 다시 등산로로 들어섰다. 계곡 길을 따라 연주대로 향하면서 나침반을 꺼내 방위를 측정해보니 대체로 계곡은 남쪽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다. 선인들의 유산기에, 혹자는 ‘동자하동’으로, 또 혹자는 ‘남자하동’으로 불러 오늘날 이곳을 동자하동으로 불러야할지 남자하동으로 불러야할지 본의 아니게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얼마 전 발간된 한국등산사연구회 회지 <와운루> 2호에 필자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즉, 관악산 서쪽 불성사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곳은 동자하동이요, 현재의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가 위치한 북자하동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남자하동이 되어서 결국 동자하동과 남자하동은 ‘동일한 곳을 지칭하는 서로 다른 이름[同地異名]’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산길을 오르다보니 어느덧 연주암과 관악사지로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2016년 말부터 관악사 중창불사가 진행 중인데 연주대 포토존에서 몇 번 내려다보기만 했을 뿐 직접 현장을 방문한 적이 없어 관악사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파른 산길을 몇 굽이 돌아 오르니 연주샘이 나오고 그 위쪽으로 한창 불사 중인 관악사의 모습이 보인다. 관악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과천현」 조와 이익의 「관악산유기」(1707), 이만부의 「관악(冠嶽)」(1730) 등에 그 이름이 등장하고,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도자기조각, 기와조각 등의 제작 시기가 15세기 전반에서 18세기까지로 확인됨에 따라 대체로 15C에서 18C까지 존재했던 사찰로 추정된다. 관련 유산기로는 세종 25년(1443)에 쓴 성간(成侃)의 「유관악사북암기(遊冠岳寺北巖記)」가 있다. 복원될 건축물은 1층 규모의 승방(90.34㎡)과 2층 규모의 누각(140.23㎡), 공양간(50.37㎡), 전각(52.56㎡) 등 4개 동인데 아직 공사장 주변에 각종 자재들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것을 보니 완공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대부분의 문화재나 사찰 복원 공사들이 시간 부족, 예산 부족을 핑계 삼아 졸속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그간의 현실인 바, 이번 공사만큼은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작은 축대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쌓았으면 한다. 

관악사지. 중창 불사가 한창인 관악사지를 연주대가 그윽한 눈으로 바라다보고 있다.


관악사를 뒤로하고 다시 데크 로드를 걸어올라 연주대가 훤히 바라다 보이는 포토존에 서니, 모처럼 쾌청한 날씨 때문인지 청계산 아래 과천저수지의 물빛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멀리 성남 쪽으로 롯데타워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꼭 사람의 다섯 손가락을 닮은 것 같은 암벽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연주대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것이 그야말로 자연과 인공의 완벽한 조화다. 암벽 사이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암자를 지어 올린 품은 불가의 암자임에도 왠지 모르게 선가의 풍모를 흠뻑 뿜어내고 있다. 


몇 십 걸음 더 바위 계단을 오르니 마침내 연주대 정상이다. 오르막길에 맛보았던 따사로운 햇살과 보드라운 봄바람과는 달리 정상에는 제법 바람이 매섭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펼쳐진 일망무제의 풍경을 발아래 굽어보며 저도 모르게 치솟는 인간의 교만을 경계하려 함일까? 배낭에 넣어두었던 외투를 다시 꺼내 입으며 정상부 바위 위에 앉아 숨을 고르노라니 언제 나타났는지 고양이 서너 마리가 슬슬 눈치를 보며 곁으로 다가온다. 살이 좀 빠지기는 했지만 영락없는, 작년 겨울에 봤던 그 녀석들이다. 사실, 아침에 갑자기 연주대 행을 결심한 것은 관악산의 봄소식도 소식이지만 지난겨울에 만났던 고양이들의 소식이 궁금해서였다. 

관악산 연주대 정상. 채제공은 그의  「유관악산기」에서 이곳 바위를 '차일암(遮日巖)'이라고 불렀다.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위가 매서웠다. 그 겨울 연주대에 오른 것은 주말도 아닌 어느 평일 날 오후,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였다. 한파로 등산객의 발길이 뚝 끊긴 연주대에는 사정없이 칼바람이 몰아쳤다. 그 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마지막 햇살이 손바닥만큼 남은 바위 위에 앉아 허기진 배를 달래려니 기다렸다는 듯 네 마리의 고양이가 달려들었다. 그 애절한 눈빛, 그 애처로운 목소리에 못 이겨 샌드위치 네 조각을 녀석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고는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이 모진 추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할 텐데....’하며 산을 내려오는 내내 녀석들이 무사히 겨울을 나기만을 빌었었다.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은 한갓 기우에 불과했던 것일까? 준비해 온 사료를 녀석들 앞에 펼쳐놓으며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문득, 어느 공원 한 모퉁이 걸려있던 현수막의 문구가 생각났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마세요. 모이를 주면 비둘기가 숲으로 돌아가지 않는답니다.” 비둘기가 모두 숲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러나 도대체 비둘기들이 돌아갈 숲이 있기는 한 건가?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등산객들이 자꾸 먹이를 주니 고양이들이 산으로 몰려든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 삭막한 도시 어디에 고양이들의 설 자리가 있는가? 긴긴 겨울, 모진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온 고양이들에게 이 봄은 어떤 의미일지? 정신없이 먹이를 흡입하는 녀석들을 보며 문득 뜻 모를 눈물 한 방울 남겨놓은 채 서둘러 산 아래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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